요즘은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면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AI 활용’. 코딩, 디자인, 글쓰기, 심지어 상담까지. 이제는 AI를 쓰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이 밀려온다. 나 역시 이런 흐름에 올라타 이것저것 시도해보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에 남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는다. “편하긴 한데, 정말 이게 더 좋은 세상으로 가는 길일까?”
기술 발전의 이면에 숨겨진 불평등
AI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이 낙관적인 미래를 그렸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은 기계가 대신하고, 인간은 더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현실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30년까지 약 9,2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약 1억 7,0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고 예측했다. 수치상으로는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새로 생기는 일자리 대부분이 고급 기술과 높은 교육 수준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또한,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와 새로 생기는 속도가 달라 과도기적인 실업과 불안정성 문제도 발생한다. 기술 변화를 따라잡을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한 사회적 대책은 미흡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AI와 자동화에 노출된 직업군에서 실질 임금이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수록, 인간 노동의 가치는 더 낮게 평가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는 거다.
맥킨지는 AI로 창출되는 부가가치의 70% 이상이 상위 1% 기업에 집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부의 편중만이 아니다. 기술을 소유한 이들은 데이터, 연산 능력,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운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즉, 기술 시스템 설계 권한과 사회 규칙을 좌우하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점점 더 ‘AI 계급사회’로 들어서고 있다.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받는 필수 노동자들
기술이 발전하면서 드러나는 가장 큰 모순 중 하나는 '필수 노동'의 위치다. 돌봄 노동자, 청소 노동자, 배달원, 요양 보호사, 콜센터 직원과 같이 사회 유지에 꼭 필요한 직업은 첨단 기술 시대에도 인간의 몫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들은 AI 기술에 의해 더욱 정교하게 통제받으면서, 더 빠르게, 더 쉼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배달 노동자들은 플랫폼이 정한 배달 시간을 맞추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달린다. 신호를 무시하고, 제한속도를 넘어야만 다음 배차를 받을 수 있다. 콜센터 직원들은 대화 내용과 감정까지 분석 당한다. 웃음소리 하나, 말끝에 담긴 짜증 하나까지 점수화된다.
더 큰 문제는 사회 유지에 가장 필수적인 이 노동들이 가장 저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AI가 논문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상담도 해주는 시대에, 사람을 돌보고 음식을 나르고 환경을 청소하는 일은 기술 혁신의 혜택에서 소외된 채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없어서는 안 될 노동’과 ‘쉽게 교체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모순이 반복된다.
챗GTP생성이미지
AI가 노동환경을 개선한 긍정적 사례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AI 기술의 혜택은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있다. 기술을 소유하고 개발하는 소수와 기술에 의해 평가받고 통제되는 다수 사이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AI 발전을 온전히 환영할 수 없는 이유는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기술이 어떻게 활용될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안전하게 일할 권리, 존엄을 보장받을 권리, 미래를 설계할 권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AI 발전 방향은 위험과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효율과 이윤은 기술을 소유한 소수에게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기술은 누구를 위해 쓰이는가?”,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한 기술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