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했다. 조리사 자격을 가진 아버지가 부엌에서 식재료 손질과 주된 음식 조리를 맡았고, 어머니는 밑반찬을 만들고 홀에서 계산을 담당했다. 손님에게 음식을 내어 주는 일과 설거지는 성이 조씨여서 부모님이 ‘조양’이라 부르는 이모가 맡았다. 조양 이모는 우리 집 방 한 칸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부모님과 생활을 같이했다.
본래 조양 이모는 동생을 돌보기 위해 고용한 가사노동자였다. 식당에서 아침 손님맞이로 부모님이 분주했기에 등굣길에 도시락을 챙기지 못했는데 점심때면 조양 이모가 도시락을 가져다줬다. 집 청소며 어린 내 동생 밥을 먹이는 일도 조양 이모의 몫이었다. 그러나 조양 이모는 동생 돌봄을 넘어 부모님의 식당 보조 일을 무시로 맡아 했고 휴일이라고는 한 달에 한 번 우리 식당이 쉴 때뿐이었다.
그렇게 한 가족 같았던 조양 이모는 결혼하며 우리 집을 떠났다. 부모님은 조양 이모에게 매월 보수를 지급했지만, 본인들이 생각하기에도 조양 이모의 노동에 대한 대가에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조양 이모가 결혼할 때 부모님이 부조금을 크게 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조양 이모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인 부모님과 근로계약을 체결했는지, 월급은 최저임금 이상 지급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사장에게 종속돼 노동하는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며 마련된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이래 70년이 넘도록 조양 이모와 같은 가사사용인은 그 보호의 범위에서 제외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법무부는 2024년 하반기부터 국내 외국인 유학생이나 졸업생, 전문인력으로 비자를 받은 외국 이주노동자의 배우자, 결혼이민자의 가족을 대상으로 가사․육아 활동을 확대 허용하는 시범사업을 준비해 왔다. 법무부는 이들이 필수교육 10시간과 온라인으로 가사 교육 3시간, 육아 대면 교육 30시간을 이수하면 체류자격 외 활동인 가사와 육아 관련 취업 활동을 허가하기로 했다. 아이를 기르고 돌보는 “가사 육아 분야에서 이들 외국인을 고용해 부모들(수요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외국인들에게는 활동 범위를 확대해 안정적인 국내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이유 때문이라 했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는 지난달 23일 법무부의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사업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필리핀 가사관리사 사업으로 논란을 빚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렇게 양산된 가사 노동자는 아마도 내 유년 시절의 조양 이모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근로기준법 11조1항에 따라 가사노동자 소개 플랫폼이나 인력소개업체를 통해 사용자와 매칭된 가사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도, 1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의 근로시간 상한을 초과해도 조양 이모처럼 한 달에 한 번 쉬게 하더라도 불법이 아니다.
오세훈 시장이 가사노동자 착취 시범사업에 참여하기로 한 경제사상적 배경은 자유주의를 가장한 반민주주의자 윤석열과 닮았다. 윤석열은 평소 불량식품이라도 과도하게 규제하면 배고픈 빈곤층이 먹고살기 어려우니 국가가 너무 과도하게 규제하면 안 된다고 한 밀턴 프리드먼의 이른바 ‘선택할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오세훈 시장은 여기에 서울시민의 안정적 양육과 돌봄을 위해 이주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비자와 취업 혜택을 미끼로 값싼 이주노동자를 돌봄 시장으로 유인해 서울시민에게 효용을 주겠다는 것인데, 돌봄 노동 전반이 열악한 저임금 노동으로 전락하면 애초 목표인 안정적 양육과 돌봄이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진짜 가족이 아닌 다음에야 가족처럼 월급을 주고 가족처럼 기준 없이 일을 시키면 안 된다. 노동과 착취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나 가사사용인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를 좁히자는 마당에 오세훈 시장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