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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차고도 처연한 <아노라>의 조용한 엔딩 크레딧

<아노라Anora>(2024)

등록일 2025년04월01일 10시3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채희숙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아노라Anora>(2024)가 지난 3월에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5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이 작품은 2024년 칸영화제에서도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아 2024년 개봉작 중 최고의 갈채를 받은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감독 숀 베이커는 30여 년간 성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를 담아왔는데, 그것은 소수자의 삶을 극단적이고 자극적으로 재현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배제하고 주변화하는 영상 및 우리 관념 속 상투적 이미지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번 영화의 경우 한 인터뷰에서 감독은 영화의 주인공 ‘아노라’가 스트립 댄서이자 성노동자로 근무하는 클럽의 모습을 보여주는 초반부 시퀀스가 “노동 영화”이길 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성매매를 노동으로 주장할 때 성노동자라는 용어는 성매매의 합법화나 관련 종사자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주장의 스펙트럼은 노동력과 화폐의 교환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노동을 예외적인 것으로 괄호 치는 사회적 무의식과 논리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데서부터, 성산업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음성화되어 있는 까닭에 나쁘고 부당한 환경에 더 무력하게 노출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현실적인 비판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많은 주류 사회가 성매매를 노동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소위 ‘외설스러운’ 일에 종사하는 성노동자들은 강한 사회적 편견의 장벽과 맞서있으면서 제도적인 지원의 바깥에 있다.

 

베이커는 그러한 삶의 “모든 측면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려는” 노력으로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며,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로 크게 주목을 받기 전이나 후나 변함없이 저예산 독립영화로 제작을 이어오면서 그 노력을 지켜내고 있다.

 

그는 자신을 “독립영화 평생 종사자(indie film lifer)”라고 부르며 여러 독립영화 평생 종사자들의, “유명해질 기회를 얻거나 메이저 프로젝트에 발탁되는 것과 달리 대형 스튜디오가 허락하지 않을 자신만의 소재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독려하고 그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기도 했다.

 

숀 베이커표 영화에서 드러나는 ‘모든 측면을 담는 객관적인 태도’는 무엇보다도 삶을 영위하는 이들의 활력을 놓치지 않는 것이며 오직 그 속에서 사회 환경과 조건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영화를 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식으로 다루는 것은 매우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나 ‘희망’이라고 말할 때 작동하는 지배적 사회의 기준보다 앞선 것, 다만 자기 앞에 놓인 것을 제힘으로 받아 안고 돌파하는 삶이란 것의 측면들을 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들은 주류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있지만 절대로 자신을 그 기준에 맞춰 소외시키지 않는 활력 넘치는 소수자 공동체의 드라마다.

 


 

노동 영화로 구상된 오프닝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상반신을 거의 노출하고 고객 앞에서 농염하게 춤을 추는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슬로우 수평 트래킹으로 이동하면서 아노라에게 도착한다.

 

카메라는 노골적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지만, 그녀의 움직임과 표정 위로 ‘아노라’라는 제목이 뜨는 그 짧은 시간에 우리는 이미 외설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당당히 빛나는 아노라를 목격하는 중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아노라는 자신의 환경과 일에 일말의 숨김도 꾸밈도 없이 살아가는 당찬 힘을 잃지 않는다.

 

다름 아닌 이 점에서 아노라는 그 이름 뜻처럼 “밝게” “빛” 난다. 클럽은 극단적인 범죄와 폭력이 난무하는 배경이라기보다는 분주하게 고객을 찾고 상대하며 육체와 감정을 소진하는 고단한 일터다. 아노라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에서 눈을 감고 앉아있는 모습을 그 대표적인 장면으로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전개상 셋으로 나뉘는 짜임에서 1부는 아노라가 클럽의 고객으로 만난 러시아 대부호의 아들 이반과 결혼하게 되는 일종의 신데렐라 스토리라면, 2부는 결혼을 없던 일로 하기 위해 이반 부모로부터 파견된 무리와 아노라가 도시를 배회하는 갱과 탐정의 영화고 아노라로 하여금 자신이 선 도시의 실체를 확인하게 하는 누아르이자 블랙코미디다.

 

이반의 부모는 뉴욕에서 이반의 보모이자 비서이며 경호원처럼 붙여둔 토로스에게 이반과 아노라의 결혼을 무효로 하는 절차를 준비할 것을 명령하는 한편 러시아에서 전용기로 뉴욕까지 오는 중이고, 이반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아노라를 남겨두고 도주한다. 토로스와 그의 동생 그리고 힘을 써줄 젊은 일꾼 이고르까지 세 일당은 결혼 무효화를 목적으로, 아노라는 이반이 그 요구를 거부하도록 하는 목적으로 이반을 찾아 나선다.

 

보통 위와 같이 고용된 이들의 등장은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전개로 이어지지만, 갑의 호출에 안절부절하고 일을 그르쳐 화를 입을까 전전긍긍하는 토로스와 아노라의 저항에 코가 부러진 동생은 어딘지 안쓰럽고 코믹하다.

 

구글을 검색하면 나오는 거물인 이반의 부모들까지 말하자면 아노라의 결혼을 삭제하려는 이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돈벌이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무례하고 비겁하지만, 그 위계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이 영화가 사람을 산 채로 매장하거나 신체를 훼손하는 것과 같은 폭력을 보여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결국, 잡힌 이반과 모두가 결혼 무효 절차를 밟기 위한 장소로 이동할 때 토로스가 일을 마치고 고단한 몸을 의자에 기대고 눈을 붙이는 장면이 있다. 그 모습은 이반이 거의 인사불성으로 취해 잠든 모습을 향했던 카메라가 그 초점을 토로스로 이동하면서 잡힌다. 이와 함께 우리는 일을 마친 이의 고단함을 볼 줄 아는 시선으로 이반의 잠과 토로스의 잠을 대조할 수 있을 것이다.

 

늘 술에 취해 모든 것이 몽롱해도 부모의 힘만은 또렷이 아는 이반과 달리 아노라는 그 힘에 좌절할지라도 끝까지 그 관계를 체득하거나 그에 굴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노라의 곁에는 그녀의 면모를 볼 줄 아는 이고르가 있다.

 

숀 베이커의 영화에는 늘 느슨한 소수자 공동체를 느끼게 하는 우정이 중요한데 여기서는 마지막에 이고르가 그 자리에 서고, 3부는 이고르의 품 안에서 터뜨리는 아노라의 울음을 위한 시간이다. 결혼 이야기가 끝나고 다시 이전 집에 도착한 아노라에게 이고르는 몰래 챙긴 결혼반지를 건넨다. 이에 아노라는 이고르의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아노라가 끝내 큰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암전되고 나면 오직 그 장면이 남긴 차 소리 외에는 어떤 다른 소리도 덧붙지 않는 고요한 엔딩 크레딧이 오른다.

 

그렇게 마지막 장면이 멈추지 않고 오롯이 관객에게 남아 이어진다. 이고르가 돌려준 다이아몬드 반지는, 아노라의 여정에 보내는 가능한 가장 큰 지지인 동시에, 여정에서 확인한 현실을 환기하는 물건일까? 이런 두 말만으로 당당하게 빛나는 아노라의 처연한 울음을 말하기는 부족할 것 같다.

 


 

시상식의 화려하고 거침없는 박수가 어쩐지 아노라의 울음에 값하기에는 부족한 반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감독과 여배우는 고맙게도 마치 이러한 관객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이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찬사에 취하는 데 멈추기보다는 각각 성숙한 영화 문화를 지켜내는 일의 중요성, 성노동자들을 향한 지지와 존경의 메시지를 전했고, 그렇게 그들이 부여한 고요한 엔딩 크레딧의 시간을 다시 받아 지속해 주었다. 부디 우리의 찬사가 이고르의 품과 같은 것으로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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