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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중심의 페이스 찾기

오나영

등록일 2025년04월01일 10시2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3월 어느 날 비가 갠 흐린 아침, 서울 도심은 42.195km를 달리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얼떨결에 추가 접수에 당첨되어 두 번째 풀마라톤을 뛰게 된 터라 나의 목표는 단순했다. 적당히 즐기면서,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완주하는 것.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만의 페이스를 찾는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빠르게 달리면 중반 이후 체력이 고갈되어 완주조차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보수적으로 출발해,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온 구간을 제외하고는 점진적으로 페이스를 올리면서 안정적으로 완주할 수 있었다(자랑하자면 4시간 11분 53초 기록!).

 


 

이 경험은 곱씹어볼수록 단순한 달리기를 넘어 삶의 중요한 메타포가 되었다. 현대 사회는 ‘더 빠르게’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속력이 곧 성공의 척도로 여겨지지만, 마라톤을 뛰면서 깨닫게 되는 것처럼 무조건 빠른 것이 최선은 아니다.

 

마라톤 코스를 따라 달리며,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배달 오토바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속도에 집착하는지 다시금 실감했다. 쿠팡의 ‘로켓배송’, 마켓컬리의 ‘새벽 배송’과 같은 서비스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네이버나 CJ대한통운 등의 기업들은 쿠팡을 따라잡고자 더 빠른 배송 시스템 구축에 여념이 없다. 이를 위해 노동 강도는 극한까지 올라가고 배달 기사들은 생명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빠름'의 이면에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희생이 존재한다.

 

속도 경쟁은 배달 산업뿐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 만연하다. 최근에는 IT 기술 분야에서 유독 도드라진다. IT 기술 발전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 영향 역시 상당하다. AI와 같은 최첨단 기술은 몇 년 사이 예술을 창작하고, 언론 기사를 작성하며, 인간의 업무를 대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는 이 변화의 속도와 발맞춰 가고 있을까? AI 자동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는 변화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턱없이 부족하다. 딥페이크 및 생성형 인공지능의 발전은 거짓된 정보를 기하급수적으로 만들어내고 있지만, 이를 규제할 법과 윤리 역시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마라톤에서 무리하게 스퍼트를 올렸다가 부상을 입은 이들을 보며, 지나치게 빠른 기술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 ‘부상’을 떠올렸다. 속도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 속도가 누구를 위한 것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가 더 중요한 이유다.

 

마라톤의 마지막 10km는 정신력을 시험하는 구간이다. 내가 끝까지 달릴 수 있던 건 다른 주자들과의 경쟁보다는, 내 페이스를 지키려는 의지였다. 힘든 순간에는 속도를 늦추고, 깊게 호흡하며, 나만의 리듬을 찾으며 페이스를 맞춰갔다.

 

자신만의 속도를 찾는 것은 단순한 속도 조절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결정이다. 기술 발전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더 빠른’ 기술이 아니라 ‘더 좋은’ 기술, ‘더 많은’ 기능이 아니라 ‘더 필요한' 기능’, ‘더 효율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더 인간적인’ 시스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마라톤에서 내 몸의 페이스를 존중했듯이, 우리 사회도 기술 발전 속에서 인간의 리듬을 고려해야 한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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