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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합병 판결에 대한 단상

노종화 변호사(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

등록일 2025년03월20일 10시3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삼성물산 합병의 주된 목적이 이재용 회장의 그룹 지배권 승계 및 강화에 있었다는 것은 국내외 투자자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반이 공유하는 인식이었다. 무엇보다 동 합병을 통해 완성된 삼성그룹 소유지배구조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쉽고 간명한 사실마저도 우리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 회장 등에 대한 형사 판결에서 1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2. 5. 선고 2020고합718 판결)은 지배권 강화라는 목적이 '수반' 됐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회사가 내세웠던 사업적 필요성도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그룹 차원의 지배력 강화 및 경영권 안정화는 회사와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다. 이번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25. 2. 3. 선고 2024노635 판결) 역시 1심과 유사한 취지로 판단하면서, 합병의 사업상 목적과 이 회장의 지배력 강화가 회사에 모두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취지에 따르면, 둘 중 어느 목적이 더 핵심적인지까지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제일모직은 당시 주로 의류사업을 영위했고, 약 46% 지분을 가지고 있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로직스’)가 바이오산업에 착수했다. 반면, 구 삼성물산은 건설업과 무역업을 주로 영위했다. 따라서 사업 관련성이 거의 없었고, 합병을 통한 사업적 시너지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됐다. 반면, 합병이 추진된 시기나 소유지분도 변경 효과를 고려할 때, 이 회장이 얻는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은 명확했다. 그렇기에 국내외 투자자 대부분이 합병의 주된 목적이 지배력 강화에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은 아닐 수 있고, 합병의 긍정적 효과가 전혀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정도로 엄격한 기준이라면, 부당한 목적의 합병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한테 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기준이 너무나 다르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단체행동권이 적법하려면 절차와 수단뿐만 아니라, 그 목적부터 정당해야 한다. 즉, 근로조건 유지·개선이 주된 목적일 때만 정당성이 인정된다. 법원은 그간 많은 사건에서, 노동조합이 내세우는 정당한 목적이 실상은 주된 목적이 아니라면서 파업의 정당성을 부인해왔다. 쌍용자동차 등 사건에서는 정리해고와 같은 기업 구조조정은 경영권에 속하므로, 원칙적으로 정당한 파업 목적이 될 수 없다고도 판단했다.

 

법원이든 누구든 파업의 주된 목적을 판단할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의문이지만, 파업에도 삼성물산 합병과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목적이 정당하지 않은 파업은 없을 것이다. 근로조건 개선과 전혀 상관없는 다른 목적만을 유일하게 가지고 진행되는 파업은 조합원 동의조차 얻기가 어렵다.

 

한편, 이 회장으로의 지배력 강화가 회사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판단에 대해서는 법원이 지분 소유 및 지배권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은 물론이고, 현실에 만연한 후진적 소유지배구조의 병폐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배주주가 직접 경영에 나서는 형태가 더 유리하다는 견해는 대체로 지배주주가 회사 지분을 충분히 소유함을 전제한다. 그래야 지배주주와 회사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반면, 지배주주가 소유지분이 적으면서도 회사를 지배한다면, 이해 상충 및 지배주주의 전횡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삼성물산 합병은 국내 대기업집단의 현실이 가장 분명히 드러난 사건이다. 이 회장은 구 삼성물산 주식을 전혀 소유하지 않았고, 제일모직만 약 23.2% 소유했다. 이 회장이 합병 회사 중 1개에 대해서만 지분을 소유한 만큼, 전형적으로 지배주주를 위한 거래가 이루어질 위험이 높았다.

 

실제로 이 회장이 아주 적은 비용으로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때 이 회장이 얻은 이익은 합병으로 생긴 새로운 부가가치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기업가치가 낮게 평가된 구 삼성물산과 그 주주들이 입은 손해에서 창출된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또 다른 큰 혐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로직스’) 분식회계였다. 수사가 시작되자, 로직스는 공장 바닥을 뜯어내 서버와 노트북을 숨기기까지 해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회사가 그렇게 숨기고자 했던 자료는 대부분 이번 재판에서 증거로 쓰이지 못했다. 증거수집 절차가 위법했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판결문만으로는 구체적 판단이 어렵지만, 이 사건에서 수사기관은 방대한 양의 컴퓨터 파일을 증거로 수집했고, 피의자가 적극적으로 증거수집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사건에 대해서까지 법원이 적법한 증거수집을 위한 ‘관련성’을 지나치게 엄격히 요구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상고심에서 다시 한번 중요하게 판단해야 할 법률적 쟁점이다.

 

내용상으로는 로직스가 미국 제약업체인 바이오젠과 합작해 설립한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의 회계 처리가 문제됐다, 로직스는 에피스를 줄곧 종속회사로 분류해 오다가, 삼성물산 합병 직후인 2015년 말 관계회사로 회계 처리를 변경했다.

 

종속회사는 단순히 취득금액으로 회계 처리하는 반면, 관계회사는 지분법 회계를 통해 지분율만큼 관계회사 손익을 인식한다. 회계 처리를 변경한 근거는 바이오젠이 합작 주체로서 갖고 있던 에피스 지분을 매입할 권리(콜옵션)를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져, 로직스가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는 것이었다.

 

비전문가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핵심은 삼성물산 합병 직후 로직스가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할 만한 경제적 사건이 발생했느냐에 있다. 회계 정보는 어떠한 경제적 사건을 투자자나 이해관계자에게 충실히 보여줄 목적으로 작성한다. 따라서 당연히 회계 정보를 작성할 대상인 경제적 사건이 먼저 발생해야 한다.

 

분식회계를 다룬 또 다른 재판인 서울행정법원 2024. 8. 14. 선고 2018구합86719 판결은 로직스가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할 만한 경제적 사건이 없었지만, 자본잠식을 피할 목적으로 회계 처리를 변경했다고 판단했다.

 

당시 로직스와 감사인이었던 삼정회계법인, 삼성물산, 나아가 미전실이 주고받았던 메일이나 문서를 보면, 삼성물산 합병으로 인해 콜옵션에 관한 대규모 부채 인식 및 자본잠식문제가 된 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아가 로직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대안을 고민하다가,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및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을 근거로 지배력 상실 회계 처리를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바이오젠은 당시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았고,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도 무산됐다.

 

그러자 로직스는 회계 처리 변경의 주된 논거를 바꿨다. 즉, 개발 중이던 일부 의약품이 판매승인을 얻었으므로,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새롭게 제시했다. 이러한 회계 처리는 목적과 과정, 나아가 결과까지 신뢰성과 일관성을 크게 잃었다고 보아야 한다. 어떠한 경제적 사건이 발생한 후 그에 대한 회계 처리를 하지 않고, 답을 먼저 정해둔 후에 사후적으로 경제적 사건을 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항소심은 특정한 의도를 드러내거나 문서를 조작하는 등의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지만, 그 처리 결과는 로직스의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이라는 경제적 실질에 부합했고, ‘최소한의 합리성’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회계 처리 작성 목적이나 과정이 일부 부적절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회계 처리가 경제적 실질에 부합한다면 회계 분식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회계 정보의 작성 목적이나 과정이 정당해야만 경제적 실질을 반영하는 회계 처리가 이루어질 수 있다. 회계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부당한 의도와 목적, 여러 회계 처리 방안과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이벤트를 사후적으로 찾았던 과정이 드러났음에도, 결과적으로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는 회계 처리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이번 판결을 지켜본 국내외 투자자의 눈에 한국은 여전히 정경유착이 유효하게 작동하고, 지배주주에 의해 부당한 손해를 입더라도 피해구제가 매우 어려운 후진적 자본시장으로 보일 것이다. 결국, 이번 판결은 자본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경제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상고심에서는 법률적으로나 실체적으로 온당한 판단이 내려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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