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로 기업이 부도나고 노동자가 일터에서 쫓겨나던 1997년. 절망적이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삼성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TV 광고를 내놨다. 음울한 경제 위기 속 뭐 하나 되는 것이 없어 우울한 가장이 퇴근길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으로 심기를 달래려는 순간에 딸이 휴대전화 화면으로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며 자랑한다. 그 모습에 가장은 희망을 얻는다. ‘디지털이 이어 주는 세상’을 슬로건으로 삼성은 기술로 가족과 세상을 따듯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7년 삼성은 휴대전화와 반도체를 비롯해 첨단기술로 초국적 기업이 됐지만 황상기씨는 딸을 잃었다. 황씨의 딸 유미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반도체라인에서 일하던 생산직 노동자였다. 2003년 딸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전자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황씨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고 했다.
유미씨가 하던 일은 반도체 웨이퍼를 화학물질에 반응시키는 작업이었다. 유해 물질에 노출되는 작업을 하다 2005년 유미씨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유미씨에 앞서 일하던 동료들도 유산이 되거나 골수성백혈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구토와 두통이 일상이 된 고된 투병 생활 끝에 유미씨는 고향인 속초로 돌아오는 아버지 황상기씨의 택시 뒷좌석에서 숨을 거뒀다고 한다.
평범했던 택시기사 황상기씨는 유미씨의 죽음이 개인적 질병이 아닌 산업재해라 직감했다. 그런데 유미씨가 일하던 삼성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고 했다. 황씨는 삼성이 금전을 통해 보상하는 데만 집중하고 딸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데 지원을 꺼렸다고 여러 언론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후 황상기씨는 거리로 나섰다. 딸의 죽음의 원인이 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위험한 노동환경을 알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활동에 나선 것이다. 당시만 해도 무노조 경영으로 노동조합의 불모지인 삼성전자이기에 노동단체의 지원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황씨의 억울함에 공감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와 공인노무사 등 전문가들이 피해 노동자의 산재신청을 도왔고 피해자 유족들이 직접 나서 삼성전자 반도체의 작업환경 개선을 촉구하며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를 사회운동의 주요 이슈로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이들을 우리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라 부른다.
그로부터 10여 년간 반올림은 노동자들을 갈아 넣으며 몸집을 불리고 부를 축적한 재벌 대기업의 탐욕을 폭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보편적 권리를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삼성을 상대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노동자들의 직업병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활동을 통해 2017년 대법원에서 첨단산업 산재 판단기준을 끌어냈다.
이들의 선도적 활동과 국민들의 호응 속에서 사회적 비난에 직면한 삼성전자는 결국 2018년 중재협약을 통해 피해자와 유족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이후 피해 노동자의 신청을 받아 보상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하고, 재발방지책을 다짐했다.
여전히 반올림은 반도체 전자산업의 직업병 피해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인정 활동과 함께 기업의 영업비밀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유해화학 물질에 대한 노동자들의 알권리를 제약하는 산업기술보호법 등의 개정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정보의 비대칭 속에 노동자에게 과도한 증명을 요구하는 모순된 산업재해 인정 제도의 개선은 이들의 끈질긴 문제 제기 끝에 얻어진 결실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발 관세전쟁으로 다시금 거대한 경제위기론이 제기되는 지금 삼성은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노동자들이 일하는 시간이 부족해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노동시간을 기업의 마음대로 유연하게 사용하게 해달라고 하고 있다. 또다시 황유미씨와 같은 억울한 죽음을 만들 셈인지 묻고 싶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