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난 30여 년간 사회정책 전반의 확대가 이루어지면서 복지국가의 틀을 갖춰왔다. 공공부조 제도와 사회보험, 사회서비스와 지자체 차원의 복지제도까지 더하여 복지국가가 시민에게 제공해야 할 권리로서 전체적 형태는 만들어낸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빠른 시간안에 성공한 한국이 가진 또 하나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빠르게 형성된 제도들은 충분하지 못한 수준과 넓은 사각지대 등 문제점을 끌어안게 되었다.
한국 복지국가 모델은 향후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가능성이 매우 제한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개별 프로그램을 조금씩 개선해나가면 이 상황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서도 매우 회의적이다.
더 나은 멤버를 영입하거나 개인 기량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올린다고 무조건 우승을 장담할 수 없는 스포츠와 같이, 복지국가도 개별 프로그램을 개혁 또는 개선한다고 해서 더 좋은 복지국가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복지국가는 지금 좌표를 잃고 있다. 더 나은 복지국가를 추동하기 위한 전반적 비전을 본지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복지 분야 전문가들도 어떤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주장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기후 전환, 디지털 전환, 인구구조 전환이라는 메가트렌드가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와중에 복지국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핵심적 이슈로 다루지 않는다.
코로나 19 이후 많은 사람은 금융, 정확히는 금융시장을 이용한 수익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듯이,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기꺼이 외면하고 선뜻 자신이 갖고있는 상당한 자산을 투자의 영역으로 더 깊숙이 옮겨왔다.
부동산에 대한 열병은 아직도 멈출 줄 모르고 있고, 주식뿐만 아니라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가 근 십 년간 자신의 미래를 안전하게 해 줄 백신처럼 여기며 스마트폰 화면 속의 차트를 수시로 들여다본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축복이라며 실생활에 얼마든지 활용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반대로 인공지능에 제공될 나의 정보가 어디로 흘러가고 누구의 수익이 되는지는 그 보이지 않는 도도한 흐름을 마주할 기회가 없어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대인관계를 기반으로 제공하는 사회서비스조차 플랫폼 기업을 통해 사람을 구한다는 편리함에만 매몰되어 정작 나와 내 가족, 내 사람들의 행복이 담보되고 있는지 사회적 행간을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눈뜬 장님이 되어가고 있다.
▲ 2024년 11월 5일 오전 10시,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부자감세 그만! 민생·복지예산 확충 기자회견’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복지국가 모델이 필요
다행히 정치적 기회는 열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초한 내란에 대해 탄핵이 결정되면 그 이후는 대선이다. 대선은 대통령 하나를 뽑는 행위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그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는 상당한 행정적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 나아가 대통령이라는 표상을 중심으로 모이는 정파적 움직임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들이 국가정책의 수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대선이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대선 이후 각 주요 포스트에 사람이 서게 된다. 대통령실의 수석비서관이나 장관, 공공기관 이사장 등 뉴스에 자주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대통령실 행정관, 장관의 정책보좌관, 공공기관의 상임이사와 감사, 부처 산하의 협회 및 각종 센터의 기관장 등 실제로 배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책이 하나의 방향으로 가려면 언뜻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매우 중요하다. 결국, 그들이 실제 자료를 생성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현장과 소통하며 개선점을 도출하고 언론에 배포될 메시지를 점검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정책은 마치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정교하게 설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의 정책영역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창작물에 불과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권력자 한둘 정도 포섭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시민의 관점에서 다수를 설득하고 사회적 지지를 형성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새로운 복지국가 모델을 수립하고 이를 운동의 목표로 삼고 연대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전진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이런 거대한 작업은 한두 명이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최근 노동·시민사회진영에서 이러한 흐름을 노동계가 주도해야 한다고 제언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것처럼 대안을 만들고, 시민과 호흡하고, 정부의 정책형성 및 실행에 영향을 미치고, 국회의 입법을 감시하고 잘못된 방향을 수정케 하는 그 힘을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어내고 우리가 주도하여 만들어내길, 아니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이다.
가칭 ‘복지국가 4.0’ 모델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여기서부터는 순전히 한국 복지국가 역사에 대한 개인적 생각이다. 고용보험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되고 직장-지역의료보험이 통합되던 현대적 복지국가 태동으로서 ‘복지국가 1.0’이 존재했고,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됐지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대폭 삭감되어 노후준비가 원천적으로 불안해진 2007년부터 장기요양제도 도입, 무상보육 시행, 무상급식 논쟁을 거치면서 복지에 대한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인식되어간 이른바 ‘복지국가 2.0’ 시기가 존재했다.
아동수당의 도입과 적극적 노동 시장정책의 강화, 돌봄에 대한 가치가 중요시되면서 각종 사회서비스가 정교화되고 지자체가 별도로 제공하는 복지제도가 다양화되는 와중에 코로나 19위기를 통해 국가가 복지의 영역에서만큼은 더 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된 최근까지 우리는 ‘복지국가 3.0’이란 시간을 걸어왔다.
2025년 대선을 기점으로 우리는 가칭 ‘복지국가 4.0’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복지국가가 제도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주체에 의한 실천적 구성물이라는 점을 감안해, 기술적으로는 국제적 사회보장기준의 최저 및 적정선에 부합하는 개별정책의 발전들이 수반될 필요가 있겠지만, 더 나아가 경제 및 산업정책에 대한 고민을 함께 담은 전체 복지국가 ‘체제’에 대한 모델이 담겨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 규범적이고 실제적인 차원 그리고 실천적 차원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해 설계와 전략, 실행에 대해 고민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해야 한다.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활동가들과 각 분야의 전문가들, 평범한 시민이 할 수 있는 사업들이 일상에서 전개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이러한 작업을 함께 한 사람들이 실제 정책의 영역에 진입하고 외부에서 함께 싸워줄 수 있어야 한다. 정치나 행정에 우리가 직접 뛰어드는 것이 맞냐는 오래된 논쟁은 이제 사치이다.
함께 고민하고 역량을 보여준 사람이 주요한 사회적 임무를 갖고 싸움터에 나가는 것이 터부시될 필요는 없다. 문재인 정부에 시민사회진영 사람들이 많이 들어갔다고 했지만, 실제 면면히 뜯어보면 언론에 보도될 소수의 높은 자리였을 뿐, 실제 실무단위는 여전히 관료들이 지배했기 때문에 개혁이 지체됐다. 노동·시민사회의 인적 네트워크가 같이 대안적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갖고 함께 자기 위치에서 역할을 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진지전에 가장 필요한 전략·전술일 것이다.
얼마 전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길에는 “사회적 합의와 계급 간 타협이라는 좁은 회랑만 남겨져” 있다는 글귀를 읽었다. 복지국가라는 좁은 회랑은 같이 손잡고 어깨 걸고 함께 노래부르며 걸어갈 때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을 수 있다. 이 시점에 긴 호흡으로 복지국가를 같이 꿈꿀 수 있는 노동·시민사회 공동의 움직임이 한국 복지국가가 지금 맞이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