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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녀가 남남에게 들려준 이야기

임승수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저자

등록일 2025년03월12일 10시41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분단국가 남한에서 사회주의자로 활동한다는 건 주지하다시피 만만치 않은 일이다. 사회주의 얘기를 꺼내면 대뜸 돌아오는 반응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아니, 그러면 북한처럼 되자는 거예요?”

 

김대중 정부 시절 남과 북이 6·15 남북공동선언을 하고 잠시 화해와 교류, 협력의 분위기가 있었지만 이를 반기지 않았던 미국과 국내 수구 세력들의 노골적인 방해로 분위기가 역전되어 여전히 남한과 북한 정권 사이에는 냉전 시절 못지않은 한랭 전선이 형성되어 있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많은 사람은 한결같이 있는 그대로의 북한의 모습을 보지 못할뿐더러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정치적인 입장에 분석과 해석이 천양지차다.

 


 

북한 경제난의 원인에 대해서도 미국이 북한의 무역과 외환 거래를 철저하게 막고 있는 제재 상황 때문이라는 주장부터, 북한이 추구하는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 자체의 문제라는 주장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북한의 핵과 대륙간 탄도탄 개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확연하게 갈린다. 미치광이 전쟁광 세력의 정신 나간 모험적 행보라는 주장부터, 미국의 침공 가능성을 차단하고 협상을 통해 경제제재를 풀어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려는 정치적·군사적 카드라는 분석이 동시에 있다.

 

좌파 운동 진영 안에서도 북한의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가 크게 갈린다. 겉으로는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김정은을 중심으로 조선노동당의 고위 간부가 권력을 독점하며 인민을 착취하는 관료주의 국가라는 평가에서부터, 미국의 제국주의적 압박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현실에 맞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내걸고 민주적이고 평등한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평가하는 쪽도 있다.

 

그래서 나보고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일단 나는 양극단의 편향을 경계하는 편이라고 답하련다. 내가 보기에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북한에 과도한 환상을 지닌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위대한 수령이 이끄는 조선노동당의 모든 행보는 옳고 정당하며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종교 수준의 열광인데, 나는 일단 이것이 그동안 자행되었던 북한에 대한 과도한 악마화의 반작용이라고 본다.

 

한번은 SNS에서 북한 정권에 대한 맹목적인 시각의 글을 만났다. 평소에는 그냥 넘어가는 편이지만 그날은 뭐가 불편했는지 대략 다음과 같은 취지의 댓글을 남겼다.

 

‘조선노동당의 핵심 간부이자 김정일의 매제였던 장성택이 반당 반혁명 종파 행위로 처형당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모든 일에 완벽한 조선노동당이라면 오래전부터 전복을 꾀했다는 장성택을 진작 걸러냈어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장성택은 오랫동안 북한 최고위층 간부였으니 그 자체로 상당히 문제 아닌가? 사정이 이러한데 어떻게 조선노동당이, 북한이 하는 일에 오류가 없을 수 있을까? 북한이나 남한이나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일 뿐이다.’

 

솔직히 말해 이런 맹신도 수준의 편향을 가진 사람은 그 수가 많지도 않고 사회적 영향력도 미약해서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쪽 편향은 더욱 심각하다. 수가 상당히 많은 데다가 국가 기구와 제도권 언론이 나서서 조장하기 때문이다.

 

바로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악마화다. 무슨 정치범에게 쇳물을 부어서 죽였다는 둥, 누가 숙청되어 총살당했다는 둥 출처도 불확실한 가짜 뉴스들이 공중파를 타고 뉴스로 전달되는데, 총살됐다는 사람이 얼마 후 버젓이 살아서 활동하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반복된다.

 

이미 남한이 북한보다 경제력으로 훨씬 우위에 있음에도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북한을 보는 시각에 한해서는 여전히 수십 년 전 냉전 시대에 머물러 있다.

 

대략 20년 전쯤 마르크스 《자본론》 학습 모임을 만들어서 운영할 때 참가자 중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여학생이 있었다. 원래 한양대학교 의대를 다니다가 뒤늦게 사회학에 관심이 생겨 학교를 옮긴 친구인데 하루는 학교 친구를 데려오고 싶다는 게다. 어떤 친구냐고 물어봤더니 탈북자란다. 다음 모임에 그 탈북 여성도 참가했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흘렀지만 《자본론》을 공부하는 모임이다 보니 대체로 사회주의나 북한에 대해 오해와 편견이 적은 사람들이라 어느덧 서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지하철을 같이 타게 되어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북한에서 살다가 이제는 남한에 와서 살고 있는데 어떤 점이 다르던가요?”

“음, 병원에 갔을 때 사람들이 돈 내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아! 그럴 수 있겠네요. 북한은 무상 의료니까.”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건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사회주의 국가는 무상 의료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살다가 온 사람한테 직접 얘기를 들으니 뭔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그래, 병원에 가서 돈 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이상한 장면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땅에 보이지 않는 금을 그어 네 것 내 것 나누는 게 이해가 안 됐어요. 토지는 누가 만든 게 아니고 자연의 선물인데 공공재를 그렇게 개인이 소유하다니요.”

 

우리에게는 공기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생소하고 어색한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것은 사고의 지평을 한층 넓혀주는 흔치 않은 경험이다. 역시 익숙해진 것을 낯설게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물속에서만 사는 물고기가 물이 없는 공간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겠지. 아무래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사회라 남한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에 적응하는 게 어렵지는 않나요?”

“저는 아직 학생이라서 괜찮은데 오빠가 회사 생활 적응을 어려워해요.”

 

“어떤 점이 어렵다고 하나요?”

“회사를 여러 군데 옮겼는데 계속 상사와 충돌하는 것 같더라고요. 북한에서는 자기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도 잘못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직언하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인데 남한에 와서 북한처럼 하다가 회사에서 계속 잘린 모양이더라고요.”

 

북한은 대부분 공기업인 데다가 남한의 상명하복식 기업 문화와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특히 ‘생활총화’라는 독특한 비판 문화가 있어서 말 그대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계급장 떼고 공적 및 사적 생활에 대해 자아비판 및 상호 비판을 수행한다.

 

비판이라는 단어의 어감 때문에 뭔가 헐뜯는 것으로 여기기 쉬운데, 그런 건 아니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일종의 ‘반성회’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요컨대 생활총화 문화가 체화된 사람이 남한에 와서도 윗사람한테 대놓고 지적하다 속절없이 잘렸다는 이야기다.

 

북한에서 생활총화를 정기적으로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북한 사람이 남한에 건너와 생활할 때 이런 식의 어려움을 겪으리라고는 미처 예상할 수 없었다. 제일 흥미로운 얘기는 영화를 관람한 경험담이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데 저는 여느 때처럼 ‘오늘은 어떤 교훈을 얻을까?’ 하는 마음으로 관람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내내 사람 죽이고 차 부수고 건물 폭파하다가 끝나버리더라고요.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어요.”

 

북한에서는 영화 역시 공공재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을 담기보단 관객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한다(오해가 있을까 봐 부연하는데 이것이 꼭 바람직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영화라고 하면 으레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얻는 것이라 여겼는데 남한에서 때려 부수기만 하는 영화를 접하고는 문화 충격을 받은 것이다.

 

당시 나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생한 남북한 비교 체험담을 들으니 사회마다 추구하는 가치관 및 이를 토대로 한 운영 방식에 차이가 나며 그로 인해 구성원의 사고방식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음을 새삼 절감했다. 역시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구나.

 

노동조합이나 진보적 사회단체 같은 곳에서 강의하다가 종종 탈북자와 나눴던 대화 내용을 들려주면 열린 시각을 지닌 통일 지향의 운동권 젊은이들조차 이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 신기해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언론이나 방송에 등장하는 탈북자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천편일률적이고 낯 뜨거운 북한 까대기로만 일관하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은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들 본다는데 오히려 우리는 북한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고 폐쇄적인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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