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통상임금’이 화제다. 작년말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통상임금 판단지표중 ‘고정성’을 폐기함으로써, 통상임금은 2025년 노사관계를 관통하는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노동수당 등 산정의 기초가 되는 기준임금이다. 통상임금이 상승할 경우 당연히 이러한 수당도 동반상승하게 되므로, 지금까지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게 하려고 기본급 이외에 각종 수당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임금체계를 왜곡해 왔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서 노동자에게 당연히 지급해야 할 임금을 은폐하고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이유로 착취해 온 것이다. 산업현장 저변에 뿌리박혀 있는 고질적인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관행’의 기저에는 바로 이러한 통상임금 문제가 있다. 최근에는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된 결과,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하여 지급해야 하는 연장 노동 수당이 최저임금에 미달해도 법 위반이 아니게 되는 상식 밖의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법원[이미지투데이]
저임금-장시간노동의 주범, 사법농단사건의 거래대상이 되었던 통상임금 판단기준
자본은 노동자들을 싼값에 맘껏 부려먹기 위해 통상임금을 가지고 집요하게 장난질을 해왔고 자본을 등에 업은 정부는 이에 동조해 왔다. 2012년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판결 이후 자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고용노동부 역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이에 노동자들이 자본과 정부를 상대로 법정투쟁을 했고, 2013년 문제의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었다. 통상임금 판단지표로서 정기성‧일률성 외에 고정성을 포함하면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만, 민법상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노사합의로 이미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했던 과거분에 대해서는 소급적용을 제한할 수 있다”라는 황당한 판결이 선고된 것이다. 노동자의 임금 조항들은 강행규정임에도 불구하고 노사 간 합의를 이유로 민법상 일반원칙인 신의칙을 들어 과거 임금 청구를 제한했다.
2013년 통상임금 판결 이면에는 바로 사법 농단, 즉 재판거래 의혹이 존재했다.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GM 회장은 통상임금 문제가 해결되는 조건으로 5년간 80조를 투자하겠다는 제안을 했고, 이에 박 대통령은 통상임금 문제를 확실히 풀겠다고 화답했다.
이후 법원행정처는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시 경제적 영향분석’을 작성했고, ‘통상임금 판결 후 각계동향’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통상임금 판결이 청와대와 자본의 의중에 따라 결정되고 삼권분립을 농락한 것이다. ‘고정성’을 폐기한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향후 비용상승에 따른 부담을 어떠한 식으로든 상쇄시키기 위한 자본의 거센 반격이 예상된다. 노동자들이 이번 통상임금 판결내용을 정확히 알고 향후 대응방안 마련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임금구성 항목 단순화‧안정화를 위한 한국노총 방침
이번 통상임금 판례변경에 따른 한국노총의 대응방침은 ① 임금체계‧구조의 단순화 등 개편 및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 저지, ② 통상임금 소송 관련 법률자문‧지원 체계 구축, ③ 통상임금 관련 법개정 투쟁 전개, ④ 장시간 노동 해소 및 좋은 일자리 창출 계기 마련이다.
임금구성항목의 단순화 및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통상임금 범위를 조정하고, 기본급(고정급)이 차지하는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임금체계를 단순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향후 자본은 직무‧성과급 등 변동급의 비중을 늘리는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할 것이다. 따라서 임금체계를 단순화해서 연공급적 성격을 배제함으로써 성과연동적인 방향으로 임금체계가 개편되지 않도록 하고, 직무급 도입으로 사업장 내부 조직 뿐만 아니라 고용형태별‧직종별 차별을 조장하는 것을 저지할 방침이다.
참고로,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변동급의 일종인 성과급을 ① 노동의 질에 대한 관리가 쉽고, ② 노동 강도에 대한 관리가 쉬우며, ③ 기업의 입장에서 노동의 질이나 강도에 신경을 쓸 필요가 줄어드니 감독을 할 필요가 줄어 하도급을 양산할 수 있고, ④ 임금이 생산량에 따라 지급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임금을 더 받기 위해 스스로 노동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고, ⑤ 노동자들의 개인 차이가 부각되니 경쟁구도가 심회된다고 하면서, 성과급제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가장 적합한 임금형태”라고 평가한 바 있다.
통상임금 관련 각종 분쟁이 발생한 가장 근본적 원인은 통상임금에 대한 정의 또는 판단기준이 시행령 등에 규정되어 있을 뿐, 근로기준법 등 ‘법률상’ 통상임금에 대한 명확한 정의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관련 시행령‧예규‧행정해석 등은 기본급은 낮고 상여성 금품과 각종 수당 비율이 높은 기형적 임금구조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통상임금 입법 취지를 반영하지 못했다.
이번 대법원판결은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억제하려는 근로기준법 정책 목표에 부합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정성 개념은 통상임금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하여 연장근로 등을 억제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려는 근로기준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하여 통상임금 입법 취지 확인했다.
통상임금 정상화를 통해 초과 노동수당 등을 편법으로 착취함으로써, 기업이 신규고용을 회피하고 장시간 노동을 조장해왔던 관행을 타파하고 정규직 일자리 창출로 이어가 고질적인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를 해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노총은 이번 통상임금 판례변경을 계기로 법률자문‧지원 활동을 전개할 것이다. 즉, 소송 진행 여부와 상관없이 판결내용을 기초로 하여 해당 사업장의 임금 항목 중 어떤 부분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 분석을 지원한다.
또한, 한국노총 산하조직 뿐만 아니라 미가입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통상임금 해당 여부 분석 및 소송 실익을 검토하여 소송대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노동조합이 조직되지 않은 사업장과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않는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금원을 비(非)통상임금성으로 바꾸어 노동조건을 저하하는 행위에 대한 신고접수 및 감시활동 역시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다.
현장대응방안으로는 먼저, 근로계약서, 취업규칙 등 임금체계‧구성 관련 사내규정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관련 규정 확인 후 사측의 일방적인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도를 감시하고저지할 것이 요구된다.
현재 사측에서 209시간, 243시간 등 월 통상임금 산정 기준수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인건비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려 한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으므로 관련 조항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번 판결내용에 따라 임금항목을 분석하고, 재직‧근무 일수 기준 지급 임금 항목에 대한 통상임금 재산정‧지급을 요구해야 한다. 통상임금 상승으로 사측은 연장‧야간‧휴일 노동 가산수당을 축소하기 위해 재량‧선택근로제 등 유연근무제를 악용할 것이 우려되고 있다.
인건비 등 비용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인력감축 및 외주화, 자동화설비 도입 등을 추진하며 노조를 압박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측의 일방적 근무환경‧조건 변경 추진에 대응한 주요 경영정보에 대한 정보공개권과 노조와의 사전합의권을 사전에 확보해 놓을 필요가 있다.
※ 현장대응지침의 자세한 내용은「2025년 한국노총 공동임단투지침」상“제1장. 통상임금 판단기준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변경에 따른 대응”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