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자인 저자가 5년간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원고를 묶어 책으로 출간했다. 책 제목은 <연루됨>. 연결도 아니고 닿음도 아니고 지켜보는 것도 아닌 ‘남이 저지른 범죄에 연관됨’이라는 뜻이 담긴 제목이다.
저자는 출간 전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제목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연루連累’는 다른 시간, 다른 환경에서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쓰인 글들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관점으로, 타자에 대한 이해와 비판 사이에서 길을 내어보자는 제안이다. 범죄와 접착된 이 단어의 불온함이 불편한 독자도 있겠지만, 우리가 묶여 있으면서(累), 동시에 맞닿은(連) 존재임을 상기하며 우리 대부분이 혼탁한 세계에서 바둥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싶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국과 중국에서 물리적, 실존적 빈곤을 연구해 온 저자는 형제복지원, 용산 참사, 코로나19 팬데믹, 빈곤과 불평등, 소외와 배제, 기후위기 등을 다루며 우리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인류학자의 세상 읽기
총 11부 64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빈곤, 노동, 청년 등 인류학자로서 저자가 살아가면서 고민한 주제와 일상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부 감각하기, 2부 대면하기, 3부 관찰하기, 4부 연루되기, 5부 삶-노동하기, 6부 정치하기, 7부 돌보기, 8부 자리하기, 9부 공부하기, 10부 읽기, 11부 지구-생활하기로 나누어진 책은 인류학자가 보는 세계의 반목과 충돌, 새로운 세계의 출현, 나이 듦과 돌봄, 빈곤과 기본소득, 배움의 중요함과 자신이 읽었던 책에 대한 사유, 그리고 위기와 공존을 통해 모색하는 미래를 담고 있다.
저자는 아주 잠깐 누군가의 가난, 죽음, 사회 문제에 잠깐 관심을 두고 안타까워할지언정 이렇게 살도록 정해진 사회 시스템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오늘날의 현실을 냉정하게 고찰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부동산과 주식과 자본의 논리 속에 묻히는 수많은 소중한 것들을 다루면서도 우리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희망을 말하지는 않는다. 코로나19와 기후변화라는 공통의 경험으로 이룩한 반성을 통해 공동의 미래를 구상할 수 있으리라 섣불리 말하지도 않는다. 감염병과 기후변화가 지구상의 모든 인간에게 닥친 재난이라 해도, 이에 대한 인식과 감각이 균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뜨거운 지구를 함께 살아가는 내 옆의 동료가 있기에 여전히 함께하는 미래에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