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7일, 바람만 살짝 닿아도 볼이 꽁꽁 얼어버릴 것 같은 추운 거리에 기업은행 노동자 8천 명이 모였다.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앞은 8천 대오의 열정과 투지로 가득 찼다.
기업은행 노동조합 창립 52년 역사상 처음으로 단행된 단독 총파업이었다. 무려 95%의 조합원이 파업에 찬성했고, 80%가 넘는 조합원이 실제 파업에 참여했다. 동일한 노동을 하는 시중은행보다 30%나 낮은 임금, 1인당 시간외근무 수당이 6백만 원씩 미지급 상태로 쌓여있는 현실에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최후의 수단을 동원한 것이다.
▲ 2024년 12월 27일 기업은행 본점 및 금융위원회 앞, ‘기업은행지부 임단협 총파업’
“넌 공공기관이라 참 편하겠다.”
우리 국책은행원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다. 많은 부모님도 공공기관 기업은행에 들어간 자녀를 기특해한다. 그분들은 우리가 편하고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겠거니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현실은 따뜻한 일터가 아닌 차가운 바닥에 앉아 투쟁의 함성을 높이고 있다.
영업점에서 본점에서, 서울에서 제주에서 그렇게 삼삼오오 모인 직원들이 자기의 손을 호호 불어가며, 서로의 어깨를 다독여가며 우리가 처한 부조리하고 불공정한 상황에 맞서고 있는 것이 지금 기업은행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잠이라도 푹 자면 좋겠다.’
지난해 12월, 노동조합의 부위원장이 되기 얼마 전까지는 나는 현장의 노동자였다. 내가 일한 부서는 티몬·위메프 사태, 서천특화시장 화재, 코로나19 등 크고 작은 사고에서 발생한 소상공인 피해자 구제를 위한 긴급 지원책을 만들어내, 전국 680개의 영업점을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일이 많았다. 정시 퇴근은 고사하고 잠만 좀 더 잘 수 있었으면... 매일 같이 바랬다. 쉼 없이 일했지만, 시간외근무 수당조차 받을 수 없었다. 은행은 기획재정부의 ‘총액인건비제도’ 탓이라고 책임을 회피한다. 임금 체불이라니, 2025년 문명시대에 가능한 말인가?
“휴가 좀 다녀오겠습니다.”
총액인건비제도, 이 제도 때문에 기업은행을 포함한 공공부문 조직은 매년 정부가 정한 예산 범위 내에서 급여도 주고, 인력 충원도 한다. 그러나 예산은 늘 빠듯하다.
어느 순간 기업은행 총인원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예산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 할 시간외수당까지 받지 못하는 것이다.
혹자는 보상 휴가로 대체하면 되지 않느냐 물어온다. 아침부터 밤까지 가족보다 더 긴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의 눈에 터진 핏줄을 위로하는 동료들에게, 휴가 좀 다녀온다는 말은 미안해 꺼낼 수조차 없는 나름의 금기어이다.
“기업은행을 그만두겠습니다.”
더구나 기업은행 노동자들은 임금도 정부가 정해 잘 올리지 못한다. 매년 공무원 임금인상률을 기준으로 기재부가 임금 가이드라인을 주고, 금융위가 최종 결정을 하고 은행이 이를 수용하는 구조다.
노동자가 끼어들 틈은 전혀 없다. 임금 결정에 노동자가 참여할 수 없다니, 명백한 단체교섭권 위반이고 위헌이다. 이런 구조 덕분에 기업은행 노동자들의 임금은 날이 갈수록 시중은행과 격차가 커지고 있다. 자부심은 점점 추락해 지난 5년간 직원 이직률은 5배가 늘었고, 신입 공채 경쟁률은 50%가 줄었다.
“기업은행 노동자의 단체교섭을 보장하라!”
기업은행은 사상 최고의 실적을 매년 갱신했고, 지난해 2조 7천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최대 주주인 기재부는 배당금 및 법인세로 1조 이상의 수익을 거두었다. 하지만 ‘공노비’(정부의 노예) 신세가 되어버린 기업은행 직원이 받은 성과 보상은 0원이다.
남들 다 받는 P.S라는 특별성과급은 받아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은행은 이 문제를 기재부와 금융위를 탓한다. 정부 때문에 주고 싶어도 돈을 못 준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금융위에게 책임을 미룬다. 금융기관의 예산 결정은 금융위 몫이라는 것이다.
정작 금융위는 기재부에게 결정을 미룬다. 기업은행은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공공기관 감독기관인 기재부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 무책임한 삼자들의 핑퐁 게임 속에서 기업은행 직원들만 차가운 거리에서 외롭게 떨고 있다.
“노동조합 간부가 되어야겠다!”
나는 지난 11월 노동조합 간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구조적인 불합리를 불평만 할 수 없었다. 내가 나가 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고통받고 있는 동료들을 다독이고, 고통에 공감하고, 투쟁에 참여시키고, 결국 승리하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었다.
러닝메이트이자 부위원장으로 직전 선거에 출마했다. 내가 택한 선거 전략은 홀로 조합원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어색하고 부끄러웠지만 나는 혼자 각 부점을 돌며 조합원 한분 한분에게 부족한 연설로 호소했다.
기업은행이 처한 부조리를 극복하려면 싸워야 한다고, 내가 앞장서 싸우겠다고, 함께 싸워달라고,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그렇게 결국 조합원의 선택을 받았고 내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배부른 투쟁인 줄 오해했습니다.”
12.27 총파업 날, 함께한 국회의원이 말했다. “기업은행 직원들의 배부른 투쟁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차별과 불법에 맞선 정의로운 투쟁이었다.” 맞다. 기업은행 노조가 벌이는 ‘차별 임금’과 ‘체불 임금’에 맞선 투쟁은 ‘평등’과 ‘경제 정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어기는 정부를 바로 잡고자 하는 정의로운 투쟁이다.
공공기관 노동자에게 단체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ILO의 권고도 무시하며 지난 2년간 공공기관의 임금 격차, 노동 시간을 줄이지 못하는 정부, 이에 맞선 기업은행 노조의 투쟁은 어쩌면 모든 공공기관을 대표한 싸움이다. 그래서 우리의 승리가 모든 공공기관 노동자의 승리이고,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승리가 될 것이고 믿는다.
“어떤 투사로 기억될 것인가?”
노동조합 간부가 되자마자 하루하루가 투쟁의 연속이다. 바쁜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되묻는다. 어떤 간부로 기억될 것인가? 우선 나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듣는 간부가 되고 싶다.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 불만, 그리고 작은 희망의 목소리들까지 놓치지 않고 들을 것이다. 또한, 나는 결과로 보여주는 간부가 되고 싶다. 단순히 주장하는 데서 끝나는 투쟁이 아닌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부조리한 현실이 개선하는데 힘쓰고 싶다.
이를 위해 치밀한 전략과 냉철한 판단력,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다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간부가 되고 싶다.
싸움을 두려워하거나 멀리하는 동료들에게 함께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우리의 투쟁이 노동자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되찾는 과정임을 말하고 싶다. 그렇게 3년 후 모두에게 열정 가득한 남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