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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제도를 무력화하는 반도체특별법상 노동시간 적용제외 움직임

이상윤 한국노총 정책2본부 부장

등록일 2025년02월10일 13시22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대통령 비상계엄선포 사태에 이은 국회 대통령 탄핵 의결과 사상 초유의 대통령 구속까지, 정치지형이 들썩이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 여부로 쏠리고 있는 가운데,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직접 좌장을 맡아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법 적용제외’를 주제로 정책간담회(민주당 정책 디베이트)를 진행했다. 폭동이 판치고 온 국민이 헌법학자가 될 판인 요지경 세상 속에서 굳이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법 적용제외’를 쏘아 올린 민주당. 난데없이 이게 무슨 일일까?

 


▲ 2월 3일 오전 9시 30분 국회 앞에서 열린 '반도체 특별법 노동시간 시도 규탄 및 논의 중단 촉구 양대 노총 기자회견'

 

반도체 노동자를 노동시간법 적용에서 제외하자?

 

사정은 이렇다. 작년 11월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이「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의안번호 5453, 이하 ‘반도체특별법’이라고 함)을 대표 발의했다.

 

동 법안은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유지와 확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제34조에서 ‘근로시간 등에 대한 특례’ 조항을 두고 “반도체산업에 종사하는 자로서 신상품 또는 신기술의 연구개발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 중 근로소득 수준, 업무 수행방법 등을 고려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근로기준법」등 관련 법령에도 불구하고 당사자 간 서면 합의로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 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에 관하여 별도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반도체산업 연구‧개발직 노동자를 근기법상 노동시간 규율에서 적용 제외하는 규정이다. 고소득 전문직 노동자에게 연장노동수당 등을 적용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의 변종이라고 할 수 있다.

 

십 수년간 사용자단체의 요구사항이자 보수정당이 주요 노동정책으로서 추진을 시도했던 사안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 역시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이 전국민적 여론의 역풍을 맞은 이후 업종별 연장 노동시간 관리단위 개편이 필요하다는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같은 맥락이다.

 

이재명 대표, 기업활동 장애 최소화를 위한 노동자 희생이 실용주의?

 

여기까지는 “국힘이 또 국힘했네”라는 뻔한 스토리일 수 있다. 문제는 향후 조기 대선이 실시될 경우 유력한 대권 주자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이 문제에 대해 호의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월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관련된 질문에 대해 기본적 입장은 실용적 판단이라며 첨단 분야에 대한 네거티브 규제 전환 등 기업활동 장애를 최소화해야 한다라고 답변했다.

 

사실상 법안 찬성 입장을 기정 사실화한 셈이다. 이재명 대표의 말처럼 노동시간 문제가 우리 노동자들에게 ‘실용적’으로 판단할 문제였던가? 결코 아니다. 노동시간 문제는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우리 노동자들의 생명‧안전과 같은 건강권과 맞닿아 있는 ‘실존적’인 문제이다.

 

기업들 줄줄이 노동시간 적용제외 요구할 것

 

만약, 반도체 특별법이 시행되어 반도체산업 연구‧개발 노동자에게 노동시간이 적용제외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 뚝방 터진 강물처럼 다른 업종에서도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유로 노동시간 적용제외 요구가 터져 나올 것이다.

 

당장 조선업 같은 경우에도 1주 52시간 제한 준수의 어려움을 호소해 왔고, 이에 대해 정부는 특별연장근로 인가확대로 화답한 바 있다. IT 업종은 또 어떠한가? ‘밤새 꺼지지 않는 오징어잡이 배’는 이제 특정 지역을 넘어 온 사방으로 등불을 밝히게 될 것이다.

 

2023년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실태조사’ 결과를 보자. 연장 노동 관리단위 개편이 어느 업종에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제조업, 건설업, 숙박‧음식업 순으로, 어느 직종에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는 설치‧정비‧생산직, 연구‧공학기술직, 보건‧의료직 순으로 나타났다.

 

정부 발표의 공식 통계자료도 있는 마당에 이들 업종‧직군에서 노동시간 적용제외를 요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역대 최대의 줄폐업 사태를 맞고 있는 자영업 등 중소‧영세 사업장 역시 노동시간 적용제외를 넘어 최저임금 차별적용까지 요구할 명분을 만들어줄 수 있다.

 

반도체산업의 노동시간 적용제외 시도, 너무 위험해

 

한 번 내어주면 그것을 되찾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노동시간 적용제외 문제도 그렇다. 국가경쟁력 강화,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이유로 특정 산업이 뚫리기 시작하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가령, 5인 미만 사업장 근기법 전면 적용 문제는 중소‧영세 사업장의 노동시간 적용제외 요구에 공염불이 될 공산이 커지고, 노동법‧제도상 사각지대에 방치된 비전형 노동자의 보편적 노동권 보장을 위한 ‘일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법’ 제정 문제 역시 설 땅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번 반도체산업의 노동시간 적용제외 시도를 우리가 가볍게 생각하면 안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 반도체 재벌기업은 국가의 비호 아래 이윤을 독식해 왔지만, 노동자를 산업재해로 몰아넣어 왔다. 지금도 반도체 노동자들은 극심한 초과 연장 노동으로 유산, 불임, 백혈병, 암 등 직업병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반도체 연구원, 핵심 엔지니어들은 12시간 주야 맞교대, 1일 14시간 이상 초장시간 노동 속에 우울증에 시달리며 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2022년 우원식 민주당 의원실이 304개 반도체 기업을 전수조사한 결과, 2017년 175건이던 산업재해 신청건 수가 2021년에는 356건으로 5년 새 두배로 증가했으며, 산재 사망자중 질병이 무려 7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19~39세 청년층의 산재 피해자는 58.9%이고, 암‧희귀질환 10명 중 7명이 2030세대로 나타났다. 이처럼 유해 화학물질을 다량 사용하는 반도체산업의 특수성을 반영해 산업안전 보호조치를 강화하고 노동환경 개선에 더 많은 관리 감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렇게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데 노동시간을 아예 적용 제외하자? 반도체 사업장을 아예 공포의 일터로 만들고 반도체 노동자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일이다. 자본이 그렇게 강조하는 국가 경쟁력에도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국회, 반도체 특별법 등 노동시간 적용제외 논의 즉각 폐기하라

 

자본가들은 항상 자신들의 무능과 실패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 노동자를 제물로 삼는다.

 

반도체산업은 그동안 적지 않은 국가적 재정지원과 혜택을 받아왔고, 이러한 전폭적인 국가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일부 반도체 기업에서 경영실패를 이유로 국가경쟁력 강화 핑계를 대며 애꿎은 노동시간 발목을 잡고 있다.

 

반도체산업이 어려워진 것이 우리 노동자들이 일을 덜 하고 게으른 탓일까? 반도체산업이 어려워진 것이 진정 노동자들에게 사장 마음대로 장시간 노동을 못 시킨 탓일까? 이제라도 반도체산업에 노동시간을 적용 제외하면 없던 국가경쟁력이 되살아날까?

 

노동시간을 늘리면 국가경쟁력이 강화된다는 그 발상 자체가 너무나 후진적이고, 너무나 반인권, 반노동적인 발상이다. 이런 천박하고 전근대적인 인식에 빠져 있으니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재명 대표는 성남시장 재직 시절 성남미화원 휴일 연장노동 중복할증 여부가 쟁점이 된 대법원 공개변론을 앞두고, “초과노동이나 휴일 노동 시키지 말고 상시 필요 노동은 신규고용으로 해결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는 임금을 50% 더 주라는 것이 노동법 정신”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에서는 법정노동시간을 초과하여 일하는 노동자가 200만 명을 넘고 법정노동시간만 준수하게 해도 33만 개 일자리가 즉시 생겨난다”며 실노동시간 단축의 원칙적 방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구체적 효과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제1야당 대표로서 이대로만 해주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에서 장시간노동이 증가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이재명 대표의 지적대로 초과노동이 더 싸게 먹히니 고용을 늘리지 않고 노동시간을 늘리므로 점점 일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조기 대선이 확정될 경우 누가 되든 이러한 이재명 대표의 관점과 생각이 그대로 공약화되고 이에 입각한 구체적 실행방안들이 국정과제로 반영되었으면 한다.

 

지금 우리가 머리 맞대고 치열하게 논의해야 할 것은 반도체 노동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생명‧안전을 확보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문제이다. 국회에서 반도체 특별법 등 노동시간 적용제외 논의는 즉각 폐기하고, 노동시간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고 실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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