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밤 23시 30분경, 다음 날 강의 내용 정리는 뒷전에 놓고 유튜브 라이브 뉴스만 쳐다보고 있는데 지인의 연락이 왔다.
계엄 휴교령이 내리면 자기 아이가 내일 유치원에 못 가고 그럼 자신이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할 텐데 당장 내일 아침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 그렇구나. 곧 겨울방학 기간으로 이미 모두 아르바이트다 여행이다 자기계발이다 계획이 있을 텐데 어떻게 40명이 만날 날짜를 잡지? 거의 진행이 불가능할 보충 강의 생각에 두통이 밀려왔고 그것이 계엄의 실질적인 영향력을 어깨를 누른 첫 순간이었다.
이후 만난 다른 지인은 그날 연말 모임을 급히 마무리하고 집에 가면서 들었던 당시 대리기사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코인에 투자를 했는데 계엄 선포 후 한 시간 지났을 뿐인데도 6000만 원의 손해가 났다면서 자신이 이렇게 일하고 있는 시간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언니는 얼마 후 일이 손에 안 잡혀서 도저히 원고를 마무리할 수 없다고 예정된 원고 제출을 취소했고, 한 후배는 내 속은 이렇게 답답한데 세상은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여서 이중 삼중의 고립감이 너무 힘들다고 고백했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행사한 것뿐이라고 주장된 행위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너무나 실질적이고 선명한 해를 입혔다.
대한민국의 시민이 맞이한 2025년은 그저 말싸움에 불과한 주장과 권리 다툼의 시간이 아녀야 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몸과 마음을 좌우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을 결정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이들 중 하나로 20대 여성들이 꼽힌다고 한다. 인터뷰 중에는 무협지에서 본 정의로운 세상 만들기의 현장을 보고 싶고 그에 동참하고 싶어서 시위현장에 나왔다는 말도 있었다.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편안함만 추구하며 공동체는 안중에 없다고 세대 비판을 받던 젊은이들이, 자신들에게 혀를 차던 어른들 보란 듯이 이 캄캄한 시국을 뚫고 나오는 강렬한 빛이 되고 있다.
다큐멘터리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디 온택트>(박윤진, 2020. 이하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게임을 즐기는 젊은이들을 통해 지금 거리로 뛰쳐나오는 새로운 활력의 성격을 이해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공동체를 움직이고 바꿔내는 힘은 대의나 영웅주의와 같이 세상을 구하겠다는 대단한 구원의식 대신 자신의 사회적 공간을 사랑하는 이들의 소위 ‘덕력’에서 나온다.
‘내언니전지현’은 박윤진 감독의 ‘일렌시아’라는 롤플레잉게임(RPG) 속 별칭이다. RPG란 주어진 가상세계 안에서 캐릭터를 육성하고 역할 수행하는 게임으로, 게임 이용자들은 캐릭터로서 또 하나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내언니전지현이 살아가는 일렌시아는 한국 대표 망겜(망한 게임)이다. 개발회사는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한 이 게임을 오래도록 방치해 이용자들은 그들이 올 때가 일렌시아 서비스가 중지되는 때일 거라고 자조적인 말을 하기도 하고 그러니 차라리 이렇게 버려둔 채로 두고 운영자 따위 오지 말라고도 한다.
자고로 게임이란 운영자가 계속 관리하면서 버그를 고치는 의사 역할을 하거나 플레이를 교란하는 불법적 행위를 단속하는 경찰 역할을 해줘야 하거늘 일렌시아는 그런 안전망을 갖지 못한 세계다. 그리고 이용자들은 그 세계에 나름 적응해 있다.
감독은 카메라를 대동하여 자신과 같은 일렌시아 이용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이 게임에 계속 남아 있는 이유를 묻는다.
영화의 물음은 우리 사회의 불안정한 구조와 닿는 한편 또한 그런 구조에 적응하는 이용자들의 모습에도 닿는데 내언니전지현과 박윤진 감독 모두, 다시 말해 가상현실의 캐릭터와 실제 세상의 이용자 모두 아무도 고치지 않고 누구도 돌보지 않는 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처지가 비슷하다.
반면 이용자들이 그 세계에 적응하는 모습은 단순하지 않다. 거기에는 체념과 자조를 동반한 적응도 있지만, 주어진 환경을 이용하여 저마다 재미와 의미를 찾는 방식의 적응도 있기 때문이다.
1997년에 출시된 일렌시아는 레벨을 올려야 하는 미션이 없고 이용자의 자유도가 매우 높은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바쁘게 소화하고 정복해야 하는 미션에 좌우될 필요가 없으니 이거저거 마음대로 하면서 지낼 여지도 많아지고 미션에 맞춰 그때그때 모였다
흩어지기를 넘어 이런저런 커뮤니티가 지속할 만한 여유도 있다. 일렌시아는 공교롭게도 IMF 체제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쟁 시스템이 밀려들게 되는 시점에 출시되었고, 이를 느슨하게 엮어놓은 영화의 전개를 따르다 보면 이 게임은 망겜의 운명을 지고 태어난 것도 같다.
일렌시아의 세계관은 재편된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는 힘든 것이었지만, 반대로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으라고 닦달하는 사회에 발맞춰 살아가는 게 힘들었던 이용자들에게는 위로의 공간이 되어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게임에 몰두하는 일은 시간 때우기로 여겨지거나,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무시하는 분위기를 흔히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진지한 현실이란 어떠한 모습인가? 주어진 구조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눈 돌릴 새도 없이 허덕이며 단계별 스펙을 쌓아야 하지만 동시에 위계질서는 점점 공고해져서 급기야 금수저·흙수저와 같은 말이 두루 이해되는 불합리한 구조가 21세기 젊은 세대에게 주어져 있는 현실이 아닌가.
내언니전지현과 일군의 일렌시아 이용자들은 그런 현실의 높은 장벽 앞에서 부질없이 자신의 열정을 부딪치기보다는, 뒤돌아서서 자기들만의 규칙과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 (가상)현실에 열정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뒤돌아선 곳에는 경쟁에서 밀려나 돌봐지지 않는 게임 세계의 낙후된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체념도 깃들어 있다.
그러니 짧고 단선적인 말로 <내언니전지현과 나>에서 드러나는 현실과 욕망의 행위들을 정리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 영화에는 자주 캡처된 게임 화면이 그대로 등장하는데 그 장면 속 대화들은 여느 스크린처럼 아래로 잘 정렬된 자막이 아니라 게임 화면에서 캐릭터 옆에 붙어 있는 채로 그대로여서 다소 산만하게 도착하고, 저용량 게임의 화면은 쨍하고 세련된 그림체와는 거리가 먼 저화질로 도착한다.
지금 자기만의 취향의 공간과 비대면 문화에 익숙한 이들이 넓디넓은 광장으로 나와 민주적인 공동체를 위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버려진 땅 또는 도피 공간은 역설적으로 자율적으로 규칙을 만들어 살아갈 힘을 훈련하는 대지였을까.
덕력은 그러한 힘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자기 공동체를 찾고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이들에게 일방적이고 위압적인 명령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2025년 신년이 환하고 밝게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