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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름의 저항과 나아감의 투쟁이 내는 풍미

<바튼 아카데미>(2024)

등록일 2024년12월05일 14시2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채희숙 한국독립영화 비평분과

 

<바튼 아카데미>의 원제목 ‘유임자들Holdovers’에서 유임이란 ‘개편이나 임기 만료 때에 그 자리나 직위에 그대로 머무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세 명의 주요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세상의 흐름에 무난히 편승하지를 못하고 멈춰 있는데, 크리스마스 방학 2주간 학교에 유임되어 자신을 멈춰 세우고 있는 진정한 유임을 마주하게 된다.

 

그 며칠에 각자 그리고 서로 유임의 시간, 그 머무름의 의미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우리는 더불어 그 머무름의 미덕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세상 앞에 꼿꼿이 서서 있는 힘껏 주변을 대하지만 정작은 큰 상처에 짓눌려 있는 선생, 혈기 왕성하고 똑똑하지만, 기성세대에 억눌려 있는 학생이 서로 삶의 배움과 동력을 얻는 관계 맺음은 <죽은 시인의 사회>, <굿 윌 헌팅> 등의 앞선 영화들과 함께 연말 영화 리스트로 묶이는 데 손색이 없는 훈훈함을 전한다.

 

또 <나 홀로 집에>까지는 아니더라도 크리스마스 때마다 특별 편성되는 영화 방영 작품으로 다시 돌아와도 될 코미디도 있다. 그런데 이처럼 이미 있는 익숙한 영화들과 겹쳐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영화만의 고유한 정서도 충분히 감돈다.

 

그것은 또 다른 유임된 인물 메리를 포함할 때 더욱 빛이 나는 것이고, 세 인물이 보내는 1970년의 미국이 전하는 시대감, 그리고 그 유임된 시간을 대하는 영화의 리듬감이 환기하는 것이다.

 


 

유임의 시간을 보내는 주요 인물은 세 명이다. 명문 사립학교의 고대사 교사인 폴 허넘은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타협이 없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성격으로 주변으로부터 다소 비호감을 사는 인물이다.

 

예를 들면 그는 학교에 입김을 가하는 거물 학부모의 자식이라도 중요한 시험에서 F를 주는 데 거침이 없다. 그는 특별히 갈 곳이나 어울릴 사람이 없으며 크리스마스 방학 기간에도 학교에 남을 예정이긴 했지만, 교장의 눈 밖에 나버린 탓에 학교에 남는 학생들의 지도 역할을 맡게 되어 소중한 휴가를 빼앗긴다.

 

앵거스 털리는 가혹한 점수를 가차 없이 날리는 허넘에게도 반에서 최고 점수인 B+을 받아낼 정도로 통찰력이 있지만, 다소 제멋대로 구는 반항기 가득한 학생이다. 앵거스는 집에 돌아가길 손꼽아 기다렸으나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와 이혼한 후 만나 재혼한 새 남편과 여행을 가게 되자 마치 버려지듯 학교에 남게 된다.

 

메리 램은 오래도록 바튼 학교의 급식을 맡은 요리사로 그의 아들 커티스 역시 이 학교를 졸업한 인재였다. 하지만 커티스는 베트남의 전장에서 전사했고 메리는 커티스와 마지막으로 함께 보냈던 바튼 학교에 방중에도 머물러 있기로 한다.

 

그들이 학교에 유임된 상황은 그들의 삶 각각에 쌓여있는 진짜 유임의 사연들을 서로에게 보이고 자신도 마주하게 하는 배경이 된다.

 

허넘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아버지를 둔 상류층 동기와 대학 졸업논문을 두고 분쟁이 생겨 억울하게 기회를 잃었고 외부의 침투를 애초에 차단하는 장벽을 세워 그 안에 멈춰 있다.

 

앵거스는 자신의 마음과 능력을 읽고 보듬어 줄 어른 없이 내몰린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에서 내면에 두려움과 고독을 쌓아간다.

 

메리는 이들에게 작용하고 있는 부당하고 가혹한 세상을 1970년대의 미국, 나아가 불합리한 사회 앞에 선 이들의 문제로 좀 더 명확하게 확장하도록 해준다.

 

메리의 아들 커티스는 흑인 한부모 가정의 자식으로 훌륭한 성적과 성품에도 불구하고 같은 학교의 여느 학생들처럼 부유하지 못했고, 이 가난한 흑인 학생은 학부모의 입김을 기대하기는커녕 자신의 앞날을 준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메리는 깊은 슬픔 속에 홀로 고요히 침잠해 있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복원하려고 했던 1970년대의 영화 속 TV에서 1970년을 보내고 1971년을 맞이하는 카운트다운 영상을 보여줄 때, 그 숫자는 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억압적인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던 역사적 국면을 환기한다.

 

말하자면 그들의 유임은 그들 각자의 사정과 개개인의 성장기만이 아니라 1970년대를 지나 지금도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는 계급, 세대, 인종, 정체성 등에 결부된 사회적 무지와 차별과 편견 등의 문제를 환기한다.

 

그들의 고통은 어쩔 수 없이 누구나가 마주하며 그러기에 일어서야 하는 각각의 사연을 넘어서 해당 사회 모순과의 직간접적인 대면에 기인한다. 상류층 사립학교 바튼은 사회적 위계를 목도하며 반짝이는 능력과 사려 깊은 마음이 돈과 체면과 권력 아래 사장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1960년대에 서구사회는 젊은이들과 소수자들의 저항과 그들이 이끈 사회변혁의 분위기로 활력이 넘쳤고 미국의 저항하는 시민들은 자국의 베트남 전쟁을 강하게 비판했다.

 

1970년 전후로 이미 미국은 그 전쟁의 명분을 국민에게 설득할 수 없었다. 이 영화의 인물들이 보내고 있는 유임의 시간은 사회적 의제들이 강하게 서로 겨루어 들끓는 시대를 증거하고 있다.

 

그들이 학교 밖으로 차를 몰고 나와 각자의 의미 있는 공간을 방문하고, 이어 맞이한 1971년은 그들이 스스로 유임된 시간을 벗어나 용기를 내어 바깥으로 한 발 다시 딛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은 그들이 머물렀던 유임의 시간의 가치, 즉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죽음에 눈물 흘리고, 사회적 위계가 개개인의 경험을 결정하는 시대의 흐름에 반하는 존재였기에 유임된 자들의 시간의 가치를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배움은 엄청난 드라마나 압도감과는 다른 이 영화만의 리듬감에서 도달한다. 방학을 따라 전개되는 2주간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대단히 중요한 국면일지라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숙성되어 그 맛을 낼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감독이 처음 자신을 크게 알린 영화인 <사이드웨이> 역시 그런 리듬감을 보여줬다. 더구나 그 영화는 대놓고 와인에 매혹된 인물들이 오크통에서 서서히 숙성되어 가듯이 좌절을 극복하고 다음 길로 나아가는 중년의 이야기가 아닌가.

 

중년의 시기를 넘어가는 이야기를 자주 해온 감독의 이번 영화에는 두 명의 소중한 청년이 존재한다. 사라진 가난한 청년은 위계질서가 부과하는 계급의 자리에 희생되었다. 가려진 부유한 청년은 기성세대의 상속을 부과하는 훈육에 잠식될 위험에 처한다.

 

고대사 교사 폴 허넘은 청년들의 삶을 책임지는 중년의 위치에 서서, 더는 자신이 위와 같은 사회 모순을 인지하는 자리에만 머물 수 없음을 깨닫는다. 앵거스가 사관학교로 보내질 위기에 직면하자, 허넘은 앵거스를 억제하는 세상과 부딪쳐 뚫고 나아가는 용기를 낸다. 넉넉한 마음의 메리가 앵거스에게 손을 내밀고 허넘에게 담대한 인사를 전한다.

 


 


 

<바튼 아카데미>는 머무는 시간이 지닌 저항을 보듬고 나아가는 시간이 지닌 투쟁을 북돋우며 1970년대를 소화하고 있으며, 허넘이 박물관에서 했던 말을 통해 역사를 배우는 일은 “현재의 답을 찾는 공부”라고 한다.

 

나아감 속에 머무름의 가치를 버리지 않고, 격렬한 정신이 천천히 익어가는 숙성의 시간 속에서 나아감을 잊지 않는 영화적 리듬은, 부디 우리 모두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휩쓸리지 말고 버텨내어 숙성된 맛을 내라고 기원하는 멋진 연말 덕담을 전하며 그 끝에는 씁쓸하면서도 풍부한 와인의 풍미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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