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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적선의 조선 침략

등록일 2018년03월13일 00시00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1866년 8월 19일 평양 대동강 입구에 역사에서 제너럴 셔먼(the General Sherman) 호라 불리는 미국 해적선이 나타났다. 선주는 미국인 W.B. 프레스턴으로 상인인 영국인 G. 호가드를 통해 노략질을 일삼던 영국의 메도우즈 회사와 선박 사용 계약을 맺고 있었고, 선장은 덴마크인 페이지였다.   

 

항해 이유를 확인하러 온 조선 관리에게 이들은 섬유와 금속 제품을 조선의 종이와 인삼과 교환하러 왔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싣고 온 물자를 보자는 조선 측 요구는 한사코 거절하였다. 배 좌우에 대포가 하나씩 배치되고, 선원들은 장총과 조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약탈선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으나, 조선 관리들은 “먼 나라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라는 도리”에 따라 생필품을 공급했다. 

 

비가 내려 수량이 풍부했던 터라 해적선은 어려움 없이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으로 올라왔다. 조선 정부가 허가하지 않은 영토 침범이었다. 해적선은 8월 20일 평양 경내에 진입했다. 조선 정부는 돌아갈 것을 권고하면서 식량과 땔감을 제공하며 우호적인 태도로 대우했다. 하지만 8월 25일 일방적인 육지 상륙이 감행되었고, 제지하던 조선군을 구금하여 해적선에 감금하였다. 이에 항의하여 조선 군민이 강변에서 돌팔매와 활, 소총으로 대항하면서 충돌이 생겼다. 해적선은 대포를 발사해 평양 사람 7명이 죽고 5명이 다쳤고, 해적선의 범죄 행위에 맞서 평양감사 박규수의 지휘 하에 조선군은 대동강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고 포격을 가해 9월 2일 해적선을 불태웠다. 

 

이 사건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서구 제국주의 열강과의 충돌이었다. 미국 해적선과의 충돌이 있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1866년 9월에는 프랑스 군함이 한강을 침범해 양화진까지 올라왔고, 10월에는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해 점령했다. 이즈음 미국 해군성은 거문도 점령 계획을 입안했다. 1868년 5월에는 프랑스인, 미국인, 독일인 등으로 이뤄진 다국적 해적단이 조선 국왕 고종의 할아버지 묘소를 도굴했다. 1870년 미국 정부는 4월 조선 침략을 결정한 훈령을 베이징 주재 미국 공사에게 발송했다. 조선 침략 문제를 조율하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정부는 긴밀하게 교신했다. 

 

1871년 5월 16일 조선 침략을 임무로 한 미국 함대가 일본 나사가키를 출발했고, 5월 26일 인천 앞바다 제부도에 도착했다. 침공 부대는 기함 콜로라도 호를 비롯해 군함 5척, 대포 80문, 해병 1,230명으로 구성된 대병력이었다. 침략군 다수는 링컨의 남북전쟁 참전 경험자였다. 미국군은 6월 10일부터 12일까지 이틀 동안 강화도에 대한 침공을 개시해 초지진, 광성진, 덕진진을 함락시키고 조선군 350명을 죽였다. 이로써 조선의 몰락과 식민지화의 지옥문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 사진은 신미양요 때 미국군 콜로라도 호에 약탈된 ‘어재연 장군기’. 2007년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10년 임대를 받는 형식으로 한국으로 되돌아왔지만, 소유권은 여전히 미국 정부가 갖고 있다.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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