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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조작 논란'에 가려진 진실 혹은 거짓

등록일 2018년09월03일 10시3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이미지=pixabay.com>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럴 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영국 빅토리아 시대 정치가 벤자민 디즈레일리가 한 말이자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자서전에 인용되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통계의 과학적 허구성을 꼬집을 때 자주 인용된다. 통계의 오류와 착시에 대한 지적이다.

 

우리 사회가 ‘통계 논쟁’에 휩싸였다. 발단은 통계청이 지난달 23일 발표한 ‘2분기 소득부문 가계동향조사’다. 소득상위 20%인 5분위 소득은 한해 전보다 10.3% 늘고, 소득하위 20%인 1분위 소득은 한해 전보다 7.6% 줄어들면서 계층 간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내용이다.

 

통계청 발표 직후 정치권은 정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성패를 놓고 공방을 이어갔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 현 사태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패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폐기하라는 요구다. 반면 정부 여당은“최근 조사 표본을 늘리면서 생긴 착시효과”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번 조사 결과를 과거 조사 결과와 단순 비교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여기서 정부의 경제정책을 두고 정치권이 벌이는 공방 자체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이야말로 정치권 본연의 직무이기 때문이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논의 방향이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가계동향조사 결과 발표와 맞물며 통계청장이 교체되면서 ‘통계 논쟁’이 ‘통계 조작 논란’으로 변질되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황수경 통계청장을 교체한 데 대해 “통계를 조작하려고 작정했다”며 “국가 경제에 불이 났는데 불낸 사람이 아니라 불이 났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을 나무란 꼴”이라고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통계청의 소득부문 가계동향조사가 대체 뭐 길래 이런 소동이 벌어진 것일까.

 

 

통계청 가계동향조사가 뭐 길래

 

 

가계동향조사는 일제 말기인 1942년 처음 시작됐다. 그 뒤 전쟁 시기 국민의 소비수준을 측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1951~1962년 한국은행이 조사를 진행했다. 1963년에 이르러서야 당시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현 통계청)으로 조사업무가 이관됐다.

 

통계청은 가구의 생활수준 실태와 변동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전국에 거주하는 일반 가구를 조사한다. 지난해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통계와 지출통계가 분리됐는데, 소득통계는 분기별로 지출통계는 연간주기로 작성·공표된다. 이번에 논란이 된 통계는 전자에 해당한다.

 

소득부문에 국한하면 월간 9천180여가구가 조사 대상이다. 통계청이 지난 27일 발표한 ‘2017년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가구수는 2016만8000가구다. 이를 감안하면, 소득통계를 위해 대략 2천200가구 중 한 가구가 표본으로 추출되는 셈이다.

 

그동안 가계동향조사 결과가 널리 사용된 이유는 조사방식 때문이다. 통계청은 75년부터 ‘가계부 기장방식’을 사용해 왔다. 조사 대상자가 3개월에 걸쳐 매일매일 가계부를 적어서 제출하면, 이를 토대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가계의 지출내역을 확인하기에 적합하다. 다만 이런 방식은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고소득자의 경우 소득정보 노출을 줄이기 위해 응답내용을 임의로 조정하거나 아예 조사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확한 소득수준을 확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통계청은 소득과 지출을 모두 포함한 가 계동향조사 결과를 2017년까지만 발표하고, 2018년부터 소득통계는 통계청·한국은행·금융감독원이 1년에 한 번 공동으로 발표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로 일원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바 있다.

 

그런데 가계동향조사를 중단하지 말아달라는 각계의 요구가 빗발쳤다.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 시절부터 따져도 50년이 넘은 주요 국가통계조사를 하루아침에 없애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통계청은 조사를 유지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통계청이 공론화 과정 없이 국가통계조사를 없애려다가 입장을 선회한 것인데, 이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통계 조작 논란’ 자초한 통계청

 

 

당초 가계동향조사를 중단할 계획이었던 통계청은 2017년 신규표본을 표집(sampling)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17년 조사는 매우 적은 수의 표본을 가진 간이조사에 그쳤다. 그런데 2018년 가계동향조사가 복원되면서 전체 표본의 60% 정도가 신규표본으로 대체됐다. 2016년 1분기 7천여개였던 표본이 2017년 1분기 4천여개로 줄었다가 2018년 1분기 6천600여개로 늘었다. 연도별 차이가 크기 때문에 시계열적 분석이 어려워졌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전년도 동기 대비 ○% 인상, 또는 ○% 하락” 같은 결과로 표시하기 곤란해졌다는 얘기다.

 

문제는 표본수와 표본구성이 크게 달라지는 과정에서 소득 하위 20% 가구인 1분위에만 새로운 표본이 65%나 들어왔다는 점이다. 빈곤층이 많은 1인 가구와 고령층이 주로 유입됐다. 이는 올해 1분위 가계소득이 1분기에 8%나 급감했다는 결과로 도출됐다. 다만 이 같은 결과가 최하위 소득이 대폭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인지 아닌지는 명백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표본의 변화로 비교 대상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표본 추출은 통계의 핵심이다. 추출한 표본의 크기가 충분히 크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표본을 추출해 적절한 가중치를 적용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그 표본은 모집단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대로 표본 크기가 지나치게 작거나 표본 추출방법이 잘못됐을 경우, 이에 기반한 조사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 따라서 왜곡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을 제거한 표본만이 모집단 전체를 대표할 수 있다.

 

결국 이번 통계 조작 논란의 책임은 일정 부분 통계청에 있다. 이번 가계동향조사 결과 중 유의해서 봐야 할 대목을 정확하게 언급했더라면 ‘통계 조작’이라는 황당한 주장은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새빨간 거짓말, 통계>의 저자 대럴 허프는 “통계용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정직하게 사용하는 발표자와, 사용된 용어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대중들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황당한 말장난에 불과할 것이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언론과 ‘통계 조작 프레임’

 

 

따지고 보면 이번 통계 조작 논란은 통계청의 미숙한 일처리에서 비롯된 해프닝에 가깝다. 그런데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은 지난 8월30일자 조선일보 기사 <통계방식 바꾼 일자리委…‘정규직 부풀리기’ 나서나> 중 일부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내년 8월부터 임신·육아 등의 사유로 일시적인 시간제 근로를 사용하는 정규직은 시간제 근로자 통계에서 따로 집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은 줄고 정규직으로 파악되는 근로자 규모는 늘게 될 전망이다. 야권에선 황수경 전 통계청장 경질에 이어 ‘코드 통계’로 통계 실적을 부풀리기 위한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기사 말미에 기사 내용과 무관한 강신욱 신임 통계청장이 과거 연구원 신분으로 청와대에 소득통계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아울러 “(황 전 통계청장이) 아무런 이유 없이 경질됐다”는 내용의 통계청공무원노조 성명을 갖다 붙였다. 기사에 등장하는 세 가지 팩트, 비정규직통계방식·신임통계청장·통계청공무원노조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도 없다. ‘통계’라는 공통의 키워드를 억지로 끼워 맞춰 정부를 비판하고자 애쓴 티가 역력하다.

 

다음은 같은날 <특수고용직 통계조사, 비임금노동자로 확대>라는 제목으로 실린 한겨레 기사 중 일부다. 비정규직통계 방식을 바꾸기로 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일자리위원회는 내년 8월부터 시간제 노동자 가운데 정규직 성격이 강한 경우를 따로 조사하기로 했다. 지금은 임신·질병 등의 이유로 잠시 시간제 노동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도 모두 비정규직으로 분류한다. 파견·기간제·시간제 등 비정규직 유형이 중복집계되어 실제 비정규직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도 노사정은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두 기사가 다루고 있는 일자리위원회의 비정규직통계 방식 전환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통계 조작 논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노사정이 오랜 논의 끝에 비정규직 집계 방식을 합리적으로 바꾼 것뿐이다. 기존 집계방식으로는 그 규모를 가늠하기 힘든 특수고용직 등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관련 정책을 정교하게 다듬자는 취지다. 그런데도 이날 대부분 언론이 조선일보 식 ‘맹공’을 펼쳤다.

 

무언가 증명하고 싶어도 증명할 수 없는 경우, 다른 엉뚱한 것을 하나 끄집어내 증명한 뒤 마치 그 두 사실이 같은 것처럼 슬쩍 넘어가는 것은 언론이 자주 사용하는 수법이다. 아전인수(我田引水)다. 언론이 공격하고자 하는 대상은 문재인 정부다. ‘통계 조작’ 프레임으로 엮어 정부에 도덕적 타격을 입히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언론의 이런 흐름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비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미디어오늘이 2017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국내 9개 종합지와 5개 경제지를 분석한 결과, ‘최저임금 인상’이 언급된 기사가 무려 7천684건에 달했다. 가장 많은 기사를 쓴 매체는 한국경제다. 지난 1년간 무려 1천98건의 기사를 냈으니, 매일 3건 이상 최저임금 관련 기사를 쓴 셈이다. 이 중에는 최근 오보 논란 끝에 삭제된 <‘최저임금 부담’ 식당서 해고된 50대 여성 숨져>라는 기사도 포함돼 있다. 정부가 표방한 소득주도성장의 대표상품 격인 최저임금 인상이 우리경제를 늪에 빠뜨린 주범이라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 통계조작 프레임이 가세한 형국이다.

 

 

‘서민 배제적 성장’이 문제다

 

 

사실 ‘2분기 소득부문 가계동향조사’ 결과에서 언론이 집중했어야 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지난달 30일 정의당이 주최한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소득불평등 추이의 구조적 특징에 주목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하위분위의 소득은 정체를 거듭한 반면, 상위분위 소득은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해 왔다는 것이다. 이른바 ‘서민 배제적 성장’이다. 실제 2016~2018년 사이 분기별 자료를 전체표본으로 살펴보면 지난 25년간의 추세와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지난 25년간 성장의 낙수효과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서민 배제적 성장 패턴이 고착화된 병리현상으로 지속돼 왔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부 정책의 방향은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제적 약자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쪽에 맞춰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로 다가가는 길도 여기에 있다.

 

이런 차원에서 정부가 내년도 예산을 늘려 잡은 건 환영할 일이다. 지난달 28일 정부가 내놓은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보다 9.7% 늘어난 470조5천억원 규모다. 정부는 양호한 세수여건 속에 일자리와 양극화·저출산·저성장 등 당면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응을 본격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를 포함한 진보진영은 무엇을 해야 할까. 여론 동향에 우왕좌왕하는 정부가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견인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럴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노동계로 시야를 좁히면,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논의과정은 물론이고 최근의 사회적대화 국면에서 조직적 이해에 매몰되거나 그도 아니면 발언 주도권을 정치권에 빼앗기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과 여성·청년·노인·장애인 등 노동시장 내 취약집단에 일정정도 거리를 두는 관행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 전개될 미래노동사회에 대한 비전과 전망 역시 부재하다. 자기혁신의 노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의 힘으로 태어난 ‘촛불정부’다. 재벌개혁과 부자증세, 노동권 보장, 주거·교육·의료 서비스 확충, 지역균형 발전 등 촛불시민들이 제기했던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구가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정부를 추동해야 한다. 노동계의 대정부 전략도 이러한 맥락에서 모색돼야 한다.<끝>

 

 

❙참고문헌

 

- 대럴 허프,(1954) ‘새빨간 거짓말, 통계’, 더불어책, 2004.04.12
- 통계청 통계설명자료,
kostat.go.kr
- 조선일보, ‘통계방식 바꾼 일자리委…‘정규직 부풀리기’ 나서나’, 2018.08.30
- 한겨레, ‘특수고용직 통계조사, 비임금노동자로 확대’, 2018.08.30
- 미디어오늘, ‘분석은 없는 ‘기승전 최저임금’ 보도의 진실,’ 2018.08.31
- 정의당 주최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자료집, 2018.08.30

구은회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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