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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는 장시간 노동에서부터 시작된다

이현재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차장

등록일 2023년04월06일 08시1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최근 우리나라는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현실은 ‘과로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장시간 노동은 국가적으로 취업, 결혼, 출산율 제고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과로’는 과중한 업무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어 발생하며 장시간 노동, 높은 업무 강도, 휴식 부족, 업무로 인한 과도한 육체적 부담과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포괄한다.

 

‘과로사’는 업무에 의한 과중한 업무 부담이 원인이 되어 뇌혈관이나 심장 등에 있던 질병을 악화시켜 뇌출혈, 지주막하출혈, 뇌경색 등의 뇌혈관질환이나 심근경색과 협심증 등 심장질환의 발병에 의한 사망을 말한다. 과로사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엄밀하게 말하면 과로사란 용어 자체가 원인 또는 상황적 요인을 강조하기 때문에 의학적 용어라기보다는 사회적 용어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과로’ 또는 ‘과로사’에 대한 법률적인 정의나 기준이 따로 없으나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등으로 과로를 판단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자는 직장에서 1일 평균 7~8시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우리나라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1,915시간으로 독일의 1,349시간과 비교하면 566시간을 더 직장에서 일한다고 볼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1주일에 55시간 이상 근무했을 때 40시간 이하로 근무했을 때보다 허혈성 심장질환의 위험이 1.17배 높아지고, 뇌졸중의 위험이 1.35배 높아진다고 밝혔다. 또한, 장시간 노동에 의한 뇌심혈관계질환 발병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 13시간 이상 근무했을 때 뇌졸중 발생률이 무려 94% 이상이었다. 근무 강도와도 비례해 격한 노동을 1시간만 줄이면 그 위험도는 30%나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통상적으로 주당 근무시간이 55시간을 넘으면 주당 40시간 근무 때보다 심장질환이나 사망 위험이 2배 가까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장시간 노동에 의한 산업재해 발생에 관한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40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노동자와 비교해 52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에게 발생하는 산업재해 발생률이 4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핀란드 국립산업보건원 연구에 따르면 노동자가 하루 8시간 근무할 때보다 10시간 근무할 때 15%, 12시간 근무할 때 38%, 12시간 초과 시 147% 산업재해 발생률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이처럼 노동시간이 많으면 누적되는 피로를 회복할 시간이 짧다. 또한, 피로가 쌓이고 업무에 대한 부담 등의 스트레스가 함께 쌓이게 되면 그만큼 뇌심혈관계질병 발생 확률도 높아진다.

 

뇌심혈관계질병 산재보상 현황

 

뇌심혈관계질병은 산재 인정기준이 매우 엄격해 업무상 질병 중 산재 승인율이 가장 낮다. 연도별 뇌심혈관계질병 산재신청 및 승인 현황을 살펴보면, 뇌심혈관계질병 산재 승인율은 매년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뇌심혈관계질병 산재신청 건수 또한 매년 감소하고 있으나, 특고·플랫폼 노동자 등 산재보험 적용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이 포함되지 않은 수치라 실제로 뇌심혈관계질환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뇌심혈관계질병 산재 인정기준

 

뇌심혈관계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기준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 3]에서 규정하고 있다. 뇌심혈관계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은 고용노동부장관이 정해 고시하고 있다(고용노동부고시 제2022-40호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고시에서는 과로의 유형을 크게 급성 과로, 단기 과로, 만성 과로로 구분한다. 먼저 급성 과로는 돌발적이고 갑작스러운 사건의 경험 혹은 업무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뇌심혈관계질환이 발생 또는 악화되는 것을 말한다.

 

단기 과로는 발병 전 1주일 이내 업무시간이 이전 12주(발병 전 1주일 제외) 평균보다 30% 이상 늘거나 업무 강도 및 업무환경 등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상태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만성 과로는 발병 전 12주 동안 주당 노동시간이 60시간(발병 전 4주간 주당 평균 64시간)을 초과해 연속적으로 과중한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발생시켰다고 확인되는 경우를 말한다. 또한, 고시에서 규정하는 노동시간을 초과하지 않더라도 직종이나 근무 형태 등을 감안해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된다면 뇌심혈관계질병으로 인정한다.

 

2021년 기준 주당 노동시간에 따른 뇌심혈관계질병 산재 승인 현황을 살펴보면, 노동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 이상일 경우 뇌심혈관계질병 산재 승인율은 92.4%로 매우 높다. 노동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 미만일 경우, 특히 52시간 미만일 경우 산재 승인율은 17.6%로 매우 낮다. 이는 근로복지공단(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뇌심혈관계질병 산재 판단 시 고용노동부고시에서 규정하는 노동시간에 대한 초과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어 엄격하게 뇌심혈관계질병에 대한 산재 승인 여부를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시간 중심의 불합리한 판단 방식에서 벗어나 불규칙한 형태의 누적된 과로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평가해 산재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시대착오적 장시간 압축노동·과로사 조장

 

정부는 3월 6일 노동개혁을 명목으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현행 주 최대 52시간인 연장노동시간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만일 정부안대로라면 노동자는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일을 몰아서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시대착오적 장시간 압축노동이며, 과로사를 조장하는 정책이라 할 만큼 노동자의 건강권과 노동권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내용과 같이 근로복지공단은 과로 산재를 판단할 때 고용노동부고시를 참고한다. 정부가 제시한 노동시간 개편방안이 현장에 적용되면 유연해지는 연장노동시간에 따른 시대착오적 장시간 압축노동으로 인해 업무상 재해 발생 빈도가 증가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노동시간 증가와 산업재해 예방 및 감축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며 연장노동시간 관리 단위 확대는 곧 장시간 노동, 단기간 과로 발생으로 이어져 과로사로 인한 노동자의 사망이 급증할 것이 분명하다.

 

끝으로 일본은 2014년 「과로사 등 방지 대책 추진법」을 제정해 과로사 예방을 위한 국가의 책무와 역할을 구체화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과로사 예방 정책은 사실상 정부의 방치하에 사업주의 자율적 노력에 의존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장시간 노동 관행을 규제하고 과로사 등을 적극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체계 또한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장시간 노동은 더 이상 노동자와 기업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사회적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과로 및 장시간 노동에 따른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법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노동시간 중심의 뇌심혈관계질병 산재 인정기준을 개선하고, 산재보험의 역할도 강화해 과로사 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감소시킬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사실상 과로사, 뇌심혈관계질병 등 업무상 질병을 방치·방임·권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과로사를 조장하는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방안은 완전 폐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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