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상황이 지속된다면, 당장 서민 노동자 가구 생활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 역시 지금과 같은 고물가 상황에서 사용자와 임금교섭을 진행 할 경우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노조는 임금교섭에서 소비자 물가상승률 + 경제성장률 등의 거시경제지표를 하나의 인상 근거로 제시하지만, 올해와 같은 고물가 상황에선 사용자가 이를 수용해줄 리 만무하다.
측에서는 물가상승을 반영해 임금인상이 이루어진다면 이듬해 또다시 물가가 상승해 더 높은 임금인상률을 요구할 것이라고 경계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임금인상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재화의 가격 인상 등을 통해 임금인상 비용을 보전하려 하는데 이는 추후 또다시 물가상승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측의 주장을 경제학에서는 나선 효과(spiral effect)라고 하는데, 임금과 물가가 마치 나선형의 소용돌이처럼 서로 뒤엉킨 모습을 빗댄 용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논리는 증명된 것이 아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지난 10여 년간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평균 1.7% 정도 수준이다. 이에 반해 협약임금인상률은 평균 4% 정도 수준이다. 나선 효과 이론이 증명되려면 그 이후부터는 물가 상승률이 최소 4% 이상으로 올라야 했지만, 1% 초반 수준에 그쳤다. 해외 통계 역시 마찬가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상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OECD 국가들의 임금은 평균 6.3%로 나타났고, 같은 기간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2.53% 그쳤다. 또, 2011~2020년엔 임금이 8.7%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1.86%에 그쳤다.
이를 이론적으로 증명한 국내외 연구도 존재한다. 노동연구원이 발간한 자료1)에서도 최저임금의 10% 인상 상황을 가정한 뒤 물가상승률을 파악해 본 결과, 전체 노동자 임금은 약 1% 정도 상승하며, 이에 따라 물가는 약 0.2~0.4% 상승률에 그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반론 연구도 존재한다. 한국은행이 올해 발간한 자료2)에서는 1990년대를 대상으로 분석해 본 결과, 물가상승과 임금인상이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물가와 임금간의 여러 연구가 존재하지만, 사실 임금이 물가 한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올해 상반기 임금 결정 현황3)은 평균 5.3% 인상률로 나타났다. 특히, 인상률이 가장 높았던, 정보통신, 건설, 제조, 도매 및 소매업 분야에 임금인상 결정요인을 물어본 결과 ‘기업실적 및 성과’를 주요요인으로 응답한 것만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개별 기업별 생산성 차이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는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기존의 해외 선행 연구 검토에서도 소속 기업의 시장지배력, 기업의 노동자 투자 비용 규모, 기업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권, 기업 성과에 대한 노동자의 기여도, 노동자 대체가능 유무 등 수많은 요인에 의해서 임금이 결정된다고 밝히고 있다.4)
서두에 언급했듯이, 지금은 임금인상과 물가인상과의 상관관계보다 취약계층,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및 플랫폼 노동자 등 회색지대 노동자를 위한 임금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직된 1, 2차로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로 인해 임금 불평등이 점차 심화하고 있다. 특히, 전체 기업 대비 극소수에 불과한 재벌 대기업의 영업이익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구조는 결국 노동자의 임금은 기업의 생산성 및 경제 상황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는 연쇄적인 악순환을 유발한다. 생산성이 높은 기업은 임금상승을 단행해도 이를 감내할 여력이 되지만, 생산성이 낮은 기업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사는 기업의 생산성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과 동시에 초기업 산별임금체계 도입, 공동임금협상 방식 등의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될 시점이다.
<미주>
1)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산업연관표를 활용한 분석(한국노동연구원, 2015)
2) 우리나라의 물가-임금 관계 점검(한국은행, 22.7.25)
3) 임금결정현황조사, 고용노동부(2022.8.4)
4) Tilly, Chris and Charles (1998), Work under Capital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