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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게 사직합니다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leeseyha@naver.com)

등록일 2022년10월20일 14시54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처음에는 주변 동료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일터를 떠나는 것으로 이해했다. 최근 ‘조용한 사직’이라는 신조어를 언론에서 자주 접한다. 실제로 회사에서 이직한 것은 아니지만 일터에서 마음이 떠나 최소한의 업무만을 처리하고 더 이상의 열정을 발휘하지 않으려는 직장인의 태도를 말한다.

최근 자신의 사업장 노동자가 일을 똑바로 하지 않는다는 사업주의 불만과 근로계약상 약정한 업무를 넘어 과도한 열정을 요구한다는 노동자들의 상담을 자주 접한다. 우리 노동법에 따르면 근로계약상 약정한 업무를 약속한 시간만큼 제공한다면 노동의 질을 따지지 않고 약속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노동자가 내적으로 조금 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직무교육을 실시하고 인센티브를 요구하며 협상해 보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었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기업이 돈을 버는 원리는 단순하다. 투입한 자본에 노동력을 결합해 초과이윤을 뽑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는 그동안 부지런한 직장인이 사회적으로 옳다는 합의를 만들고 이를 노동자들에게 강요했다.

그 대신 기업은 일정 나이까지 직업 안정을 보장하고 생애주기에 따른 임금인상과 자녀 학자금 등 복지를 책임졌다. 휴일도 없이 회사에 복무하다 보면 부장도 되고 이사도 되고, 중년에 이르러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사회적으로 중산층이 돼 삶의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기업은 노동자에게 직장 이상의 사회경제적 울타리가 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대다수 노동자에게 직장은 그런 곳이 아니다.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일부 재벌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1차 노동시장과 필요할 때만 노동자를 쓰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쉽게 고용관계를 끝낼 수 있는 유연한 2차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로 재편됐다. 이러한 노동환경을 막아내지 못한 책임이 있는 노동조합 주체로서 반성을 하게 된다.

사용자들은 고용이 경직돼 기업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하지만 노동법상 해고 요건에 맞춰 대응할 수 있는 노동자는 소수다. 5명 미만 사업장에는 부당해고 구제신청 제도가 적용되지 않아 사실상 해고 자유가 보장돼 있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 더해 저성장 속 기업활동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신규채용 기회 자체가 줄어들고 입직 후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되던 기업복지는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기업이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면서 최소한 보장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도 내버려 두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관계 속에서 노동자에게 요구하는 직무에 대한 설명이나 직무능력 개발을 위한 교육, 회사의 사업 방침에 대한 설명과 회사 조직의 구성원으로 노동자를 포괄하려는 다양한 조직사회학적 노력은 이제 일터에서 너무나 먼 이야기다. 저성장이 일반화되고 잘나가는 일부 대기업만 돈을 버는 시대에 지급능력이 부족한 영세 사업주나 자영업자들은 노동자를 채용하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도록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제 우리 주변에서 회사를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노동자가 다수가 됐다. 이제는 회사를 나의 가치를 실현하는 공간, 나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노동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업이 노동자에게 월급을 넘어서는 헌신과 열정을 기대하는 것은 과한 욕심이다.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노동조합과 사회단체에서도 조용한 사직의 경향성이 짙어지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사회단체나 노동조합은 일하는 이들의 창조성과 열정이 조직의 성과를 좌우한다. 활동가들 스스로가 자기 일의 가치를 돌아보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자신의 활동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재충전의 시간을 보장하는 일부 단체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어진 사업을 꾸려 내는 데 버거운 실정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힐링을 위한 여행산업만 남고 대다수 사업의 생산성은 바닥을 칠지 모른다. 최근 일터의 세태를 반영하는 문학작품이나 드라마 속에서 고객과 상사에게 당하는 갑질과 모욕의 대가로 받은 월급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표를 발권할 때 자유를 느끼는 직장인들을 자주 접한다.

역설적으로 일과 나를 분리함으로써 고단한 회사생활을 버티는 것이다. 가까운 일본에서 홍콩, 그리고 스칸디나비아까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주는 설렘만으로 일터에서의 모욕과 인간관계의 긴장을 계속 견딜 수 있을까? 홍콩을 넘어 유럽, 마지막엔 어디에 가야 일터에서 긁힌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까?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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