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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사논문 표절 논란, 논의의 한 단계 진전을 희망하며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등록일 2022년09월12일 19시26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나는 이제 우리 학문 수준이 ‘연구윤리 준수’를 가볍게 여기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수준 이하 내용에도 학위를 수여하고, 이를 바로잡지 못한 국민대 결정에 비판이 사그라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대통령 부인의 다양한 비위 혐의를 둘러싼 논란으로 확대되니, ‘유지(yuji)’ 논문이 계속 생성되는 우리 교육의 구조적 현실에 대한 논의로 깊어지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표절에 가까운 출처 미표기, 점집이나 사주팔자 블로그를 무단 사용한 글로도 박사 타이틀을 얻는 데 큰 문제가 없었던 데에는 1997년 대학원 인원 자율화 이후 이른바 학위장사에 가까운 온갖 명목의 대학원과 학과 설립이 급증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2009년부터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만 1만명을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1만6천명을 넘었다. 물론 사회가 고도화되며 전문 인력에 대한 노동수요가 증가해 특수전문대학원이 설립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수요 대비 공급이 폭증하며 양자 간 불균형은 점점 심화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장광남·최현식의 지난 5년간 교육부 자료 및 실태조사 분석에 의하면 학업전념 박사 취득자의 절반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졸업 후 진로가 정해지는 비율도 급감했다. 반면 전체 박사학위 취득자 중 직장을 병행하는 이의 비율은 더 높을 뿐 아니라 그 숫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이제 학령인구가 줄어들며 입학 목적이 배움인지 학위취득만인지 구분하지 않고 대학원 정원을 채우지 않으면 학교 운영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다. 애초 대학원 설립 취지가 연구자나 전문가로 훈련시키는 데 있지 않으니 논문 지도나 심사도 형식적으로 끝나기 쉽다. 직장을 병행하며 훌륭한 학업 성취를 이룬 경우도 있으나 상당수 대학은 지원 시스템을 만들기보다는 학생 개인 역량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현재 대학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 중 정도 차만 있을 뿐 이런 고민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학생 등록금에만 의존하는 우리 고등교육의 현실, 행정 권력의 지원을 명목으로 대학 길들이기가 만연한 구조에서 일정한 수준의 학문 생태계를 만드는 길은 점점 요원한 일이 되고 있다.

 

나아가 사회의 온갖 분야를 막론하고 석·박사 취득이 중요 경력으로 여겨지는 우리 현실도 기형적이다.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지자체 후보들의 공보물을 읽다 보면 직업과 경력 불문 석박사 숫자가 상당하다. 시민의 이해를 대표하고 조정해 공익에 헌신할 사람이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 경력보다 특정 학문의 전문가임을 강조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사실 대학은 특정 영역에서 이론과 방법론을 익히고 논증 방법을 훈련하는 곳이다.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고 사고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구체적 현실을 파악해 이들 이해를 대표하거나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 간 설득과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을 키워 주는 공간은 아니다.

 

즉 지역에서 부녀회나 동문회를 이끄는 대표보다 유수 대학 박사가 시민들의 온갖 민원을 듣고 갈등 조정에 유능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오랜 시간 한 분야 공부만 몰두해야 해 다른 분야에 대한 판단 수준이나 사람들의 온갖 이야기를 겸허히 청취하거나 해결할 능력은 평균의 보통 사람보다 못할 수 있다. 미국 독립선언문에 참여한 토머스 제퍼슨은 전문가와 달리 농부가 인위적인 규칙에 의해 혼란에 빠지는 일이 없기에 도덕적 사안을 더 훌륭하게 말할 수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전문가 능력이 정치의 능력과 무관한 측면을 지적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크든 작든 뭐라도 학위가 있는 편이 공천부터 작은 회의체 자리라도 제공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니 대학은 학위 장사에 열을 올릴 수 있고 사람들은 배움보다 타이틀을 얻기 위해 진학을 결정한다. 학문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무색해지며 학력 인플레는 점점 과해진다.

 

나는 우리가 대학원이란 고등교육 현실에 좀 더 마주하길 희망한다. 오직 대학 재정 기여를 위해 남발된 학위가 전체 고등교육에서 얼마나 비율을 차지하는지 알려 줬으면 한다. 이것이 학문공동체의 황폐화로 이어지는 맥락, 해당 풍토가 정치권을 비롯한 공적 영역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 메커니즘을 밝힐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불의함을 지탄하는 것만으로 정치 본연의 역할을 다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고 제도개선을 꾀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길 희망한다. 정치는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새로운 방향을 설계하는 것이지 상대편의 부조리를 파헤쳐 나의 정당성을 밝히는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정혜윤의 통념 비판' 코너에 공동 연재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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