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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동 문제, 속도전이 통하지 않는 이유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등록일 2022년07월19일 08시5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인간의 체제에서 그 어떤 법과 제도라도 완전한 것은 없으며, 나라마다 사회 상태가 다른데 제도만 이식해서 같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장기 이식하듯 ‘제도 이전’을 할 수 없기에 긴 논의 과정이 변화를 이끈다. 가령 일본은 저출산-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나라로, 우리와 노동시장·노사관계·정치세력에 비슷한 점이 있어 종종 소개되는데 그 속도와 방식에 생각할 부분이 있다.

한일 모두 법적 정년은 60세지만 가장 큰 차이는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이다. 일본 정년제는 정년까지 고용보장을 의미한다. 일본도 종신고용 시대가 끝났다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고용불안과 격차가 있다. 일본 노동정책·연수기구가 2020년 발표한 조사에 의하면 60대 중 취업자는 59%로, 60~64세 남성노동자 중 80% 이상이 취업상태다. 그런데 이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평균 20.7년으로 31년 이상 일한 노동자도 31.4%를 차지할 정도로 장기근속자가 많다. 60세 정년은 물론 65세까지 희망자 전원이 일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춘 기업도 99.9%에 이르며, 70세 이상 일할 수 있는 경우도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많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반면 2019년 한국 사업체 노동력조사에 의하면 300명 미만 사업장은 80% 이상이 정년제도 자체가 없다. 300명 이상 사업장도 제도만 도입했지 40대부터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2020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노동자의 ‘주된 일자리’ 퇴직연령은 평균 49.4세로 60세 정년은 규범이 되지 못했다. 더욱이 주된 일자리 퇴직 후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연령은 평균 72.3세다. 대다수 노동자가 자녀 양육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20~30년을 열악한 고령 노동시장이나 종속적 자영업자로 일한다는 의미다.

 

물론 양국 간 고령 노동시장의 차이는 산업구조 및 기업의 인력시스템, 경영가의 규범 등 구조적 원인도 크다. 그럼에도 일본이 특별히 새로운 제도나 정교한 프로그램을 도입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다. 우리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했으나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천천히 제도를 수용해 구성원에게 수용성이 있다. 일본은 60세 정년을 20~30년에 걸쳐 노력의무-의무 등으로 단계적으로 제도를 도입했다. 장기간이 걸렸기에 법적 의무화 이전 기업의 99%가 고용연장을 실시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60세 정년제’가 2013년 국회를 통과하고 3년 후 바로 실시했으나 기업의 노동력 관리방향이 되지 못했다. 또한 ‘60세 정년제’를 추진하며 사측 요구대로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이 가능했지만 폐해도 크다. 공공기관은 사업장 상황과 무관하게 60세 정년제와 임금피크제를 전면 실시했고 청년채용 비율도 할당받았다. 결과적으로 상당수 공공기관이 실무인력 부족, 수당 삭감으로 노사뿐 아닌 노노 간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청년채용의 효과도 기대만 못했다. 일본은 사업장 상황에 따라 정년제 폐지, 정년연장, 재고용 등 선택지 중 노사가 20여년에 걸쳐 상호 수용 가능한 선택지를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인건비 부담을 느끼는 대기업은 재고용을 택한 비율이 높지만,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은 정년을 연장한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은 속도가 빠른 사회로, 혁신과 창조적 파괴가 필요한 기술 차원에서 강점이다. 그러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하고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고도의 합의와 조정이 필요할 영역에서 속도전은 장점이 되지 못한다. 더욱이 현장에 일하는 사람의 구체적 이야기는 외면하고, ‘기득권’ ‘적폐’ 등 개혁 대상으로 삼아 공중과 적대자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방식은 구성원 간 적대만 부추긴다. 국회조차 이해관계자 간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고 다수파의 힘으로 빠르게 법제화하거나, 행정지침을 수정해 초법적 방침을 강요하니 현장은 행정부가 바뀔 때마다 혼란스럽다.

 

특히 5년 임기 내, 정권 초 성과를 내겠다며 공공부문부터 일방적 지침을 강제하니 본래 정책 취지나 목적은 희미해지고 앙상한 형식만 남는다. 한때 공공기관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도하고자 했으나, 구성원 간 수용성 있는 합리적 기준 마련에 미흡해 조직 내 갈등을 겪어야 했다. 정부 하달 비율을 기계적으로 맞추느라 계약직을 아예 내보내거나 필요 인력조차 채용하지 못했다. 더욱이 정부 정책에 따라 인력을 늘렸는데, 정권이 바뀌니 방만운영을 했다며 인력감축이나 민영화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새 행정부가 등장할 때마다 공공부문은 개혁의 시작점이었으나 오히려 민간보다 부작용과 진통을 겪어야 했고, 시장에 파급력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나는 윤석열 행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에 나름 선한 의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개선하려면 연공임금제 완화란 방향에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업종·규모·인력 등 조직 특성과 개별 상황에 맞는 해법을 노사가 천천히 만들지 않으면 갈등만 부추길 뿐 좋은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최선을 만드는 느린 조정 과정에 미덕이 있음을 고려하길 희망한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정혜윤의 통념 비판' 코너에 공동 연재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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