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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차별금지법 논의가 출발점인 이유 (1)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등록일 2022년06월23일 17시40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국회 앞이나 거리에서 쉽게 마주하는 원색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주장은 과장을 넘어선 허위다. 차별금지법의 목표는 고용·교육·일상서비스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지 성소수자 인권 침해만 문제 삼지 않는다. 법 제정은 시민들이 다양한 이들의 존엄한 가치를 제고하는 데 의미가 있다. 차별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입법만으로 장애인 이동권이 개선되거나 일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질 리 없다.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멸시에 가까운 노동 차별이 줄어들거나 여성이 가정과 노동시장에서 겪는 이중고가 해소되기도 쉽지 않다.

 

더욱이 차별을 금지한다 한들 동성혼이 가능해지지 않으며 자신의 지향을 표현하지 않던 평범한 이들이 갑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드러낼 리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 여러 차별을 개선하려는 입법 시도가 유독 타인의 사랑과 성적 지향만 이슈화되고 공격 대상이 될까. 나는 가짜뉴스에 가까운 피켓을 든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차별 개선’ 그 자체보다 나와 낯선 ‘존재’ 자체로, 이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사실, 우리는 공적 관계든 사적 관계든 나와 이질적 존재가 불편하다. 돌쟁이 무렵 아기가 자신을 귀여워하는 눈길조차 울음을 터뜨리는 낯가림 시기를 보면 인간이 익숙지 않은 상대에 불편해하는 반응은 본능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어른이 될수록 상대와 차이에 거북하단 반응을 다 드러낼 필요는 없으며, 그게 사회적 예의임을 배운다.

 

인류는 지난 수세기 동안 인종과 종교·사상·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적대하며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인권’이란 인간이 타자를 존중하지 않으며 수없이 흘린 피의 대가로 깨닫게 된 매우 실천적인 개념이고 공존을 지향한다. 차별금지법이 고민하는 내용은 나에게 낯선 자에 대한 사회적 예의 수준을 좀 높이자는 시작점에 가깝다. 다소 차이가 있다 해 그들이 교육받고 일하며 취미생활을 하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생활을 하는 데 불편과 고통을 겪을 이유는 없다.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자유지만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차별하거나 상처 주지 않는 선에서 허용한다는 점이 우리 사회가 지키고자 한 ‘자유주의’의 대원칙이기도 하다.

 

가끔 성 정체성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나 자유도가 올라갈수록 혹시 우리 사회의 가족질서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지 불안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부모 된 자일수록 아이와 후속세대를 위해 더 나은 사회란 어떤 곳일까 생각해 봤으면 한다. 나에겐 꽤 깊은 대화를 나누며 때로 단짝 같다고 느낀 친구가 있는데 수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말해 줬다. 그는 스스로를 인정하는 데 3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바람에 이제야 가까운 이에게만 오픈한다 말했다. 친구의 여성스러운 외모나 내 눈엔 부럽던 싹싹한 성격은 혹시라도 남에게 이질적 상대로 보일까 봐 항상 조심하고 노력한 결과라고 했다.

 

나는 다양한 존재를 상상할 수 없는 사회가 그 개인 마음 속 그림자와 고통의 시간을 늘리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어느 부모든 자녀가 사회적 어려움을 겪는 소수자이길 바라는 경우는 없을 것이며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우리 아이들이 다소 사회 주류와 차이가 있어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 조심하느라 고민과 번뇌로 아름다운 청춘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 아이와 그의 친구들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함께 있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적어도 일하고 평범한 생활을 살아가며 자신을 극도로 감출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된다면 자녀의 어떤 선택에도 불안할 이유도 줄지 않을까.

 

가족이란 때로 누군가에게 그 구성원과 사회 질서를 위해 희생을 강요해 왔기에 숨 막히는 굴레의 단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 가족 형태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인생의 기쁨과 괴로움을 나누는 작은 공동체다. 내가 그랬듯 나와 좀 다른 친구도, 누군가와 열정적 사랑이 끝난 후에도 가족이란 이름으로 달콤한 순간뿐 아니라 그 지난한 일상을 함께 겪어 내는 게 이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동반자가 이성이 아니라도 부모나 친지의 죽음과 같은 고통의 시간조차 공식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싶다. 차별금지법은 나와 약간 낯선 이들이 그 정도 평범함은 괜찮지 않냐는 존재 인정에서 출발하는 논의가 아닐까 싶다.

 

나는 차별금지법이 인권 개선을 위한 중요 시작점임을 부인하지 않으나, 동시에 규범과 도덕의 문제까지 공적 제재 대상으로 삼는 게 과연 현실 변화에 유의미한지 물음표도 품고 있다. 기회가 되면 추후 그 고민을 담고자 한다. 그래서 더욱 우리 공동체가 좋은 답안을 만들도록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보다 공적으로 논의해 주길 희망한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넌 어때?' 코너에 공동 연재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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