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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의 아파트(2020)

터전, 공존, 돌봄의 물음

등록일 2022년03월31일 13시3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고양이들의 아파트. 단일 단지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였고, 한때 아시아 최대 대단지였던 둔촌주공아파트의 재건축 과정,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대 이주가 결정된 2017년 이후 단지 내 거주 고양이의 안전한 이주를 위해 시민들이 결성한 모임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는 영화의 제목은 왜 ‘아파트의 고양이들’이 아니라 ‘고양이들의 아파트’인가? 이 표현에 대한 질문은 영화를 이해하는 길목의 시작이 될 것이다. ‘아파트의 고양이들’과 달리 ‘고양이들의 아파트’에서 ‘고양이’는 딱히 어떤 단어로도 수식되지 않는다. 누구의 고양이, 어디의 고양이가 아니라 그저 고양이인 것이다. 그리고 한편에 그런 고양이들의 터전인 아파트가 있다.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제목에서부터 관습적인 소유 관념을 슬쩍 뒤흔든다. 물론 이는 무척 사소한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소유란 꽤 넓고 은밀하고 강력한 개념이어서,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타자를 대상으로 만들어 우리 자신의 시선과 입장 안에 쉽게 가두곤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눈앞의 고양이를 불쌍한 고양이, 방해되는 고양이가 아닌 그저 고양이, 독립된 하나의 개체로 보는 것은 기존의 선입견을 거두는 별도의 훈련을 요하는 일이다.

 

영화는 전반에 걸쳐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카메라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그들의 시간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면들은 정말 타자로서의 고양이를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는 그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 당연히 적용되는 이 간명한 명제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공존이란 우선 타자를 타자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출처 : 다음 영화

 

한편 아파트는 언제나 사람의 소유물로만 여겨져 왔다.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아파트의 주인이 꼭 사람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넌지시 말하는 듯하다. 단지 내 도로가 일반 도로보다 넓을 정도로 광활한 부지를 자랑하는 둔촌주공아파트는 단지 내에 언덕배기나 녹지 같은 자연의 모습을 고스란히 품은 독특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당연히 여기 사는 게 인간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는 고양이를 주로 다루며 종종 새도 보여주지만, 그보다 더 작은 소동물, 곤충과 벌레, 심지어 미생물까지 아파트의 거주자는 훨씬 다양하리라. 아마 그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오만함은 조금 줄어들지 모른다.

 

영화가 담고 있는 모임은 ‘둔촌주공아파트 동네 고양이의 행복한 이주를 준비하는 모임’, 줄여서 ‘둔촌냥이’ 모임이다. 여러 이유로 아파트에 둥지를 틀거나 아파트와 인연을 맺어왔으며, 재건축을 앞두고 고양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이 주축이 됐다. 여기서 말하는 동네 고양이는 일반적인 의미의 길고양이는 아니다. 아파트 단지와 상가 등을 터전 삼아 10여 년 이상을 주민들과 함께 거주한 이웃이다. ‘캣맘’, ‘둔촌맘’ 등 그간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준 이들은 이주를 앞두고 걱정이 많아졌다. 한편 ‘둔촌냥이’ 모임에서는 고양이 구조 작업을 병행하면서, 고양이 이주에 대한 대책을 모색한다. 둔촌맘은 동시에 둔촌냥이 활동가일 수 있지만, 꼭 둘이 같지 않을 수도 있다. 이들 사이엔 자연스레 갈등이 피어나기도 한다.

 


출처 : 다음 영화

 

영화 속 누군가는 ‘둔촌냥이’의 결정엔 10년 넘게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준 캣맘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하며 불만을 표한다. 영화에 필요 이상으로 묘사돼 있진 않지만, 감독의 말을 빌리면 이 갈등은 선택의 문제와 연관되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구조하거나 보호소에 보내야 할 고양이는 누구인지 선택하고 합의하는 과정처럼 ‘한정된 자원 안에서’ 돌봄의 분배가 문제가 된다. 이는 결국 개개인의 선의에 의존하지 않고도 우리 주변의 돌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향한다. 위기상황에서 모정과 같은 감정은 비할 데 없는 힘을 발휘하겠지만, 결국엔 그것을 넘어선 시스템의 구축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서로의 입장을 두고 갈등할 뿐 아니라, 자신도 흔들린다. 활동가들은 공사가 시작되면 갈 곳을 잃은 고양이들이 별다른 대책도 없이 죽게 될까 봐 ‘둔촌냥이’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개인이 감당할 몫이 늘어나면서 그들도 점차 지쳐간다. 출구를 찾지 못해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런 중에서도 가장 큰 우려는 이것이 고양이가 행복해지는 길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참 내 맘 같지 않네요. 고양이는.” 고양이를 구조하고 순화 작업을 하는 한 활동가는 쓸쓸한 얼굴로 말한다. 그는 고양이와 점차 친해지는 건 좋지만, 고양이 정말 행복한 건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는, 고양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인간의 마음은 대체 무엇이며 또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출처 : 다음 영화

 

고양이가 독립적인 개체임을 상기하고, ‘내 고양이’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는 또 다른 활동가의 말은 어렴풋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는 고양이를 돌보고 보살피는 것이 인간인 내가 행복해지자고 하는 일이라는 걸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이것이 결국 사람에 대한 사랑과 사회에 대한 기여의 확장이라고도 이야기한다. 자기 옆의 존재를 돌아보고, 사회 속의 나를 확인하며, 동등한 생명체들 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활동이라는 뜻이겠다.

 

한편 고양이를 돌본다는 것은 제법 무거운 일이기도 하다. 밥을 준다는 건 결국 개입했다는 뜻이며,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거라고, 어떤 이는 말한다. 그는 아파트 인근으로 흩어진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줄 때, 퇴근하는 사람들이 전부 쳐다보는 것이 두려웠다고 이야기한다. 도시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종과 함께 살며, 나보다 약한 존재를 보살핀다는 것은 이토록 복잡한 일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활동가들의 다양한 말은 하나로 정돈되지 않기에 오히려 귀하다. 그들은 고양이를 독립된 개체로, 나와 동등한 타자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도시에서는 고양이가 인간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 또한 이야기한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강하고 고양이는 약하다. 이러한 이중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돌봄의 사회적 의미를 성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말하게 되지 않을까.

 

한편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정재은 감독의 작품세계 안에서 이해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방법이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의 부서지는 집과 친구들, <아파트 생태계>(2017)에서 돌아본 아파트 콘크리트의 생애주기 등을 통해 거주와 관계의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정재은 감독은 이외에도 <말하는 건축가>(2011), <말하는 건축 시티:홀>(2013) 등 건축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다.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2017년부터 2년 반 가량 촬영됐고, 뒤늦게 개봉해 관객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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