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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빠진 정치기사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등록일 2022년01월04일 08시06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매일 정치기사가 쏟아지지만 이것이 정치의 전부일까 의문이다. 선거가 가까울수록 후보자 검증과 정치세력의 대응 보도가 늘어나는 부분은 피할 수 없으리라. 다만 선거가 중요한 이유는 예산과 법률을 다루는 국회의원이나 행정권의 수장을 선출하기 때문이지, 권력 쟁취 그 자체만이 목적일 수 없다. 그런데 정작 대표 선출 이후 입법과 예산이나 집행에 관한, 정치 과정을 다룬 보도는 찾기 어렵다. 그보다 정당이나 정치인 간 설전이나 태도 논란, 권력투쟁, 이에 대한 해석과 논평기사가 압도적이다.

정치란 공동체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고, 그 주요 공간 중 하나는 예산과 법률을 결정하는 국회다. 국회에는 17개의 상임위원회와 5개의 특별위원회, 61개의 소위원회가 있는데, 노동계 현안은 대부분 환경노동위원회에서도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에서 다뤄진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상임위 전체회의나 본회의 이전 소위에서 법률 내용의 상당 부분이 결정된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정기국회에서만 12번의 회의가 열렸고, 이것으로 부족해 다시 12월부터 임시국회가 열리며 ‘공무원·교원 타임오프 보장’을 비롯해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등 중요 논의가 진행 중이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소위에서는 전문위원이 발의 법안의 취지와 쟁점을 설명한 후, 국회의원 간 본인이나 정당의 입장에 따라 첨예한 입장 차이와 개별 쟁점에 대한 논의가 오간다. 이견이 조정되는 가장 중요한 정치 과정이기에, 정당과 의원의 정치성향도 법안을 다루는 실력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조정이 잘 되지 않을 때 잠시 정회 후 의원들 간 비공식 논의를 통해 중요 협상이 이뤄지기도 한다. 회의 속기록이 공개되지만 한 번에 두세 시간을 훌쩍 넘기는 방대한 양일 뿐 아니라, 내용도 전문적 법률용어라 일반 시민은 물론 연구자도 파악하기 쉽지 않다. 나아가 의원들의 발언이나 침묵 등의 동조, 의사방해 등 모두 고도의 정치적 행위가 포함돼 있어 해석이 필요한 영역이다.

언론의 정치보도는 일반 시민이 파악하기 어려운 법적 쟁점을 설명하고 의원들의 속내나 정치적 의도까지 취재해 제공하는 데에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노동법안을 사회면이 아니라 정치-국회란에, 지면까지 할애해 다루는 언론사는 매일노동뉴스를 제외하고 많지 않다. 사실 노동 법안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삶을 다루는 수많은 법률과 예산안이 17개 상임위와 5개 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되고 관련 감사도 이뤄진다. 그것이 국회의 일상이자 가장 중요한 정치행위지만 정작 각 상임위의 치열한 정치 과정은 보도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

정치란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의원과 정당 간 말싸움이고 비정한 권력투쟁이다. 원래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고 구경꾼도 그 흥분에 전염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치를 오직 지고 이기는 게임처럼 다루는 보도는 법안과 예산을 다루는 활동 자체를 생략할 뿐 아니라, 조정과 합의라는 정치의 특성을 배제한다. 사실 국회 절차에서 그 어느 단계도 완전한 승리도 패배도 있을 수 없다. 상임위 구성부터 안건을 조정하고 법안을 논의해 ‘소위-상임위-법사위-본회의’까지 가는 길목 하나하나에서 구성원 간 합의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사회 변화에 빠른 대응을 바라는 이들에게는 다소 답답할 수 있겠으나, 국회가 고도의 조정을 중시하는 이유는 다양한 시민들을 대표하는 조직이어서다. 법률이 개정되면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는 근거이자 무기가 될 수 있으나, 다른 이에게는 생업을 접어야 하는 큰 타격이 되는 규제일 수 있으며, 새로운 시장개척의 기회를 얻는 자도 있다. 그러니 가능한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는 대안을 찾으면서도, 특정 집단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하고 대책을 찾고자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이들 간 논의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치를 과도하게 상대를 적대하고 제거하려는 싸움에만 초점을 맞추면, 이들을 지지하는 동료 시민끼리도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불필요한 갈등만 동원하게 된다. 이런 풍토에서는 정작 우리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상임위에서 열심히 법안을 다듬고 동료 의원을 설득하는 정치인은 관심도 인기도 얻지 못한다. 그보다 강한 지지자 집단의 지지를 얻고 상대진영을 자극하는 거친 언사를 과시하는 이들이 보도량도 많아지고 주목도 받는다. 결국 ‘정치가 우리 삶과 무관한 싸움뿐’이라는 시민들의 정치혐오와 환멸을 부추긴다.

뉴미디어 등 정치채널이 늘어났지만 인상평보다 취재나 조사에 기반을 둔 보도나, 특정 진영에서 듣고 싶어 하는 정보 공급만을 집중하지 않는 콘텐츠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일본 노동입법 과정에 관한 학위논문을 쓰며 노사정협의체나 국회 기록만으로는 용어나 맥락을 파악하느라 애를 먹었다. 당시 아사히신문의 기사를 읽으며 여느 연구나 정부 자료보다 쉽고 친절한 해석이 큰 도움이 됐다.

개탄과 야유, 냉소를 자아내는 기사는 정치를 온전히 보여주지 못할 뿐 아니라. 시민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해 정치를 기성세력의 독점물로 방치하게 만든다. 대다수 노동하는 시민의 정치를 위해 의견보다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건조한 보도를 많이 볼 수 있기 희망한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윤·희의 넌 어때?' 코너에 공동 연재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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