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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여성문제 연구자로 살아가는 법

장진희 한국노총중앙연구원 연구위원

등록일 2021년12월28일 15시14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대학원 시절 나의 연구관심사는 오로지 ‘임금’이었다. 경제학에서도 노동경제학과 계량경제학을 전공한 이유 역시 우리의 임금수준은 어떠한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지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나의 관심사는 임금과 관련된 여러 영역 중에서도 ‘임금불평등’으로 옮겨 갔다. 왜냐하면 임금불평등은 사회적으로 개선해야 할 과제인데도, 우리 사회를 더 경쟁력 있게 만들 수도 있다는 이론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가령 토너먼트 이론에 따르면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생산성이 낮은 사람에게는 낮은 임금을 지급해 결국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이 더 열심히 일할 유인을 제공한다. 그래서 기업의 효율성이 올라가고 사회적으로 총 편익이 증대된다. 물론 상대적 박탈감 이론 등 토너먼트 이론을 반대하며 임금불평등은 결국 기업의 효율성을 낮춘다는 이론도 존재한다. 주류 경제학을 전공한 내 주변의 대다수는 토너먼트 이론을 지지하고 있으며,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얘기한다. 일을 잘하는 사람, 즉 생산성이 높은 사람에게 더 높은 임금을 주고, 생산성이 낮은 사람에게 더 낮은 임금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나의 여성연구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우리나라는 정말 개인의 생산성에 의해 임금이 결정될까? 남성과 여성의 생산성이 같다면 실제 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동일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내 여성연구의 첫 출발이다. 이는 이전 칼럼에서도 말했듯이 임금격차(wage gap)를 임금차별(discrimination)과 합리적 임금차이(difference)로 구분하는 분석 틀을 이용하는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여성이기에 받는 차별이 심각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별이 존재함을 알게 되니 이후의 관심사는 여성이 왜 차별받는가로 자연스럽게 확장됐고, 지금의 나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여성의 차별적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주장하는 수많은 여성문제 연구자 중 한 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문제 연구자로 활동한다는 것은 양날의 칼과 같다. 우선 남성이기에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여성이 여성을 얘기하는 것보다 남성이 여성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남성들을 설득하기 쉽다. 경험적으로 볼 때 남성연구자는 여성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객관화’가 된 중립적 존재로 분류된다. 흔히 여성이 여성차별을 주장하면 일순 ‘공격적이고 여성밖에 모르는, 대화가 불가능한 꼴페미’로 치부되지만, 남성이 여성차별 개선을 주장하면 그나마 상대적으로 덜 공격적이고 대화가 되는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모 부처의 한 회의에서 유명한 여성주의자 교수가 남성 기득권을 부숴야 여성계가 살아남을 수 있다며 중년남성의 지원은 필요가 없음을 아주 강하게 주장했고, 담당사무관은 나에게 중재를 요청하며 하소연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도 상대적으로 극렬한 여성주의자들보다 내가 더 온건하고 중립적이라 판단해서 그랬을 것이라 생각된다.

문제는 이처럼 온건한 혹은 중립적인 남성이 여성을 연구한다는 데에서 오는 불편함이다. 장점으로 여겼던 나름의 중립적 가치에 기초를 둔 나의 주장들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것이다. 오래전 한 단체의 회원이 토론회가 끝난 후 나에게 했던 “당신은 가짜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꽤나 긴 여운을 남겼다. 사실 맞는 말이다. 나는 여성 당사자가 아니기에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고, 여전히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여성이 차별받는 사회에 관심을 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차별개선을 주장하는 일개 여성문제 연구자에 불과하다.

그러면 나는 남성의 편일까. 칼럼을 쓰다 보면 여러 메일을 받는데 그 내용을 보면 나는 남성의 편도 아닌 듯싶다. 받은 메일은 나의 틀림을 지적하는 유익한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 메일 내용은 ‘남성이 여성을 대변하는 것에 대한 분노’ 혹은 ‘배신자에 대한 처단’에 가깝다. 특히 피아식별(彼我識別)을 똑바로 하라는 공격적인 메일은 나의 연구 정체성에 혼란을 가중한다. 이처럼 남성이면서 여성의 차별을 이야기하는 나는 여기저기에 끼지 못하는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과거 젠더를 연구하는 중년의 남성교수가 본인을 마법사와 마녀 사이에 낀 머글(muggle)이라고 표현했던 것이 이해가 되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태껏 그랬듯이 여성이 직면한 차별적 노동환경의 개선점을 나름의 중립성을 유지하며 주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이방인 취급을 받지만, 나는 나의 노력이 조금씩 사회를 차별이 없는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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