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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론 열광이 우려스러운 이유

장진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등록일 2021년12월20일 10시5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최근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설거지론이 뜨겁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설거지란 ‘먹고 난 뒤의 그릇을 씻어 정리하는 일’로 정의되는데, 설거지론은 열심히 노력해 좋은 직장에 다니는 남성이 젊은 시절 자유분방하게 연애를 즐기던, 능력 없는 여성을 결혼으로 ‘깨끗이 씻어 과거를 정리했다’는 점에 비유한 표현이다. 이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현금지급기 취급을 당하며 집안일까지 한다는 의미에서 ‘퐁퐁남’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으며, 퐁퐁남 여부를 판별하는 알고리즘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30대 신혼부부들의 분포 비중이 높은 신도시를 ‘퐁퐁시티’라 칭하는 수준이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이러한 설거지론은 ‘된장녀’ ‘여자와 북어는 3일에 한 번씩 패야 맛이 좋아진다’ 같은 과거 여성혐오적 표현의 연장이면서도 여성을 직접 겨냥해 비하한 기존 여성혐오와 구분된다. 설거지론을 언뜻 들으면 이 단어가 여성혐오적이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혼 30~40대 남성을 대상으로 ‘퐁퐁남’으로 혐오하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져 설거지론을 세대갈등적 표현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설카포’(서울대·카이스트·포스텍) 졸업의 질 좋은 직장을 가진 30~40대 남성을 설거지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설거지론에 대한 반론을 펼쳐 봤자 ‘네다퐁’(네 다음 퐁퐁이), ‘고성능 식세기(식기세척기) 오셨습니까?’ 등의 조롱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처럼 설거지론은 마치 비혼의 청년남성과 기혼 30~40대 남성의 세대 간 갈등으로 표면화된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기혼 30~40대 남성을 대상화하지만, 내포된 의미를 생각해 보면 이는 명백히 여성혐오적 표현이다. 쉽게 말해 설거지론은 더러운(처녀성을 잃은) 그릇(여성)을 능력 있고 순진한 남성(퐁퐁)이 깨끗하게 닦았다(결혼했다)는 의미로 여성을 그릇에 비유하고, 연애경험을 ‘문란’하다고 주장하며, 혼전순결 내지는 처녀성 프레임을 강요하는 여성혐오적 표현인 것이다. 특히 문제는 가정마다 특수한 상황이 있음에도 대다수 전업주부를 설거지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설거지론은 여성혐오의 방식이 과거의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에서 이제는 간접적으로 우회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설거지론에 의해 ‘결혼한 모든 여성은 꽃뱀이고 결혼한 모든 남성은 퐁퐁남’이라는 주장은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남성혐오만큼이나 황당하다. 그럼에도 상당수 청년 남성들이 설거지론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청년 남성을 중심으로 여성을 사회적 경쟁자로 적대시함과 동시에 남성 스스로를 피해자라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특히 가부장적 문화에서 성장했음에도, 사회분위기가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아버지 세대가 누렸던 가부장적 권력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다는 사회적 불만에서 설거지론이 출발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또한 높은 집값 등으로 인해 결혼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기인한 박탈감을 기혼남성세대의 혐오와 여성혐오로 표출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비자발적 순결주의자, 또는 비자발적 독신주의자를 일컫는 신조어로 인셀(Involuntary Celibate; Incel)이 주목받았다. 인셀은 연애 또는 성관계를 하고 싶어함에도 전혀 하지 못하는 남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의 남자 사용자를 의미하는데 인셀 커뮤니티가 활발해지면서 점차 극단성을 띠고, 반사회적·여성혐오적 성향을 드러내며 범죄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됐다. 실제 2014년 여성을 비하하는 영상을 온라인에 올린 뒤 무차별 테러를 일으켜 6명이 사망했으며, 2018년 역시 2014년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총기를 난사해 17명이 사망했다. 우리나라 역시 결혼을 거부하는 혹은 결혼을 포기한 청년 남성들이 설거지론에 기대어 기혼남성들에 대한 공격과 동시에 여성혐오적 성향을 보이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물론 아직 미국과 같이 실제 범죄로까지 이어졌다는 보고는 없으나, 설거지론에 대한 열광을 보고 있자면 여성혐오적 사건이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다.

설거지론을 비롯한 남녀대립적이고 혐오적 표현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요인이 얽혀 있어 무엇이 우선순위라고 말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은 성평등 사회 구현을 위한 노력일 것이다. 노동조합은 이를 개인 차원의 문제로 치부하기보다 노동조합 차원에서 성평등 환경조성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며 개인은 개인 차원에서, 각자 위치에서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성평등한 인식이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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