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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런 대선을 만들었을까

박상훈 한국노총 정치자문위원장(정치발전소 학교장)

등록일 2021년12월02일 13시50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많은 이들이 이번 대선 경선 결과를 냉소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의미 있는 정책 경쟁은 없었다. 평균적인 서민의 도덕성에도 미치지 못하는 추문을 보며 최소한의 존경심도 가질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실종된 정치, 실패한 정당, 해체된 국민주권

 

첫째는, ‘정치의 실종’이다. ‘정치인의 패배’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주요 정당의 경선은 법률가 출신이 압도했다. 정치를 오래 한 정치인도, 당 대표나 국회의장, 국무총리 출신도 너무나 쉽게 무너졌다. 누가 승자가 되든 국회 경험이 없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의회정치 대신 조사와 처벌을 앞세우는 권력통치가 심화될 지도 모른다. 국회나 정당을 공격하며 국민여론에 직접 호소하는 대통령의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둘째는 ‘정당의 실패’다. 정당은 자신의 후보를 길러낼 능력을 상실했다. 그간 당을 주도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아웃사이더를 자당의 대통령 후보로 받아 안게 되었다. 정당이란 공직 후보자를 양성해 시민 총회에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이번 경선은 정당이 아니라 여론정치가 그 역할을 했다. 그 점에서 이번 경선은 정당 정치의 몰락을 상징한다.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패자 쪽이든 승자 쪽이든 당의 혼란과 분열이 예고되어 있는 상황이다.

 

셋째는 ‘대통령의 사인화’ 문제다. 대통령제의 제도 원리와 무관하게 후보 개인이 고립된 존재처럼 따로 존재한다. 이재명 후보를 보자. 자신의 승리를 수용하지 않는 민주당 내 친문 세력은 그에게 주머니 속 송곳 같은 존재다. 당 기반이 약한 자신의 입장에서 정당은 불편한 난제다.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책임을 둘러싼 파장은 개인 문제로 몰릴 것이다. 윤석열 후보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설령 집권에 성공한다 해도 당과의 관계 정립은 어렵다. 국회의 절대다수인 거대 야당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는 간단치 않은 문제다. 자칫 검찰 권력을 정치화하게 되면, 법과 정치는 물론 한국 사회를 소용돌이로 휘말리게 할 것이다. 누가 집권하든 대통령의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넷째는 ‘국민주권의 해체’ 문제다. 그간 정당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 드린다.”며 여론조사를 최대로 동원하고 국민선거인단을 대거 참여시키고자 했다. 민심이 모든 것인 양 주장하는, 이른바 ‘국민 직접 참여 민주주의론’이 정치를 지배했다. 수백만 명이 ‘국민의 이름’으로 이번 경선에 참여했는데, 논쟁의 질은 떨어지고 저질 말싸움과 품위 없는 행태만 많아졌다. 당의 경선이 당원에 의해서가 아닌 여론조사 민심에 이끌렸다. 국민참여는 최대가 되었는데, 그렇게 참여한 국민은 지지 후보를 중심으로 서로를 야유하고 증오하는 검투장의 관중 역할을 하고 말았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다섯째, ‘시민성의 퇴락’이다. 국민주권을 앞세우는 정치의 폐해는 그 이전부터 오래 누적되었다. 모두가 국민주권을 금과옥조로 삼는 동안 사회갈등은 더 격렬해졌다. 정상적인 정치과정은 작동하지 않았고, 시위와 직접 행동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사람들은 쉽게 화를 내고 쉽게 분노하고 더 성급해지고 더 조급해졌다. 절차와 과정보다 당장의 빠른 변화를 얻고자 하는 욕구만 커졌다. 모두가 안달하고 모두가 억울해 했다. 청와대와 국회 앞, 집권당 앞으로 달려갔지만 정작 해결되는 문제는 별로 없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광화문 집회 참가자와 검찰청 앞 집회 참가자가 서로 국민주권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하는 역설이 발생했다. 정당의 지도부가 정치를 버리고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겠다며 단식하고 농성하는 일도 많아졌다. 

 

여섯째, ‘언론의 실패’도 문제다. 그들은 정치의 역할을 존중하지 않는다. 반정치주의야말로 우리 언론의 정체성이다. 그들은 가장 파당적인 견해를 가장 초당적인 자세로 말한다.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고, 자신들 의견을 앞세우고, 더 많은 피드백을 받고자 경쟁하는 존재들이다. 그 점에서 우리 언론은 정당에 가깝다. 때로는 권력기관 역할을 한다. 취재는 없고 주장만 있다. 유력인의 SNS를 증폭해 전달하는 저질 기사를 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여론조사의 과도한 동원도 문제다. 여론조사 기관마다 편차가 큰 조사 결과가 공론장에 미치는 혼란과 폐해에는 관심이 없다. 최고 권력의 향배에 관심이 큰 독자들의 약한 마음을 악용하는 것을 절제하지 못한다. 대통령 권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그들의 무의식이 이런 일을 하게 만들고 있다.

 

일곱번째, 결국 ‘한국 민주주의의 실패’다. 민심이 주권이고, 국민의 뜻이 곧 민주주의 아니냐며 당심과 달리 민심이 중요하고 여론조사로 민심을 알 수 있다는 식의 민주주의론은 해악적이다. 이를 국민주권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그건 민주주의보다 전체주의에 가까워진다. 국민주권은 시민이 자신들의 적법한 대표를 선출할 최종적 권리를 갖는다는 원론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뿐, 그것이 일상의 정치과정을 지배하면 안 된다. 국민주권이 민주정치를 탄생시킨 부모 같은 원리라 할지라도, 우리가 일단 성인이 되면 아주 가끔 급한 상황에서만 부모를 찾아야 하듯, 일상의 민주주의 운영은 정치나 정치가에 맡겨야 한다. 적법하게 선출된 시민 대표에게 정치가로서 자율적인 역할을 할 기회와 권한을 주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제 일을 할 수가 없다.

 

대선 경선은 여론 동원 정치

 

국민이 직접 참여하고 결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이 많아지면 사람들 사이에 적대와 대립, 증오와 배제의 문화는 커질 수밖에 없다. 좋은 정치가는 성장할 수 없고, 정치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승자가 된다. 적대와 증오를 동원하는 그들은 정치만 망치는 게 아니고, 사회도 분열시키고, 시민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정치가의 역할과 시민의 역할이 서로 존중되어야 민주주의는 사회를 통합하는 좋은 역할을 한다. 그렇지 않고 시민이 정치가의 역할을 대체하려 하면 할수록 민주주의는 사회를 해체하는 역할을 한다. 조합장을 조합원이 아니라 국민이 결정하게 한다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노동조합이 될까? 그 반대다. 노조를 싫어하는 반노동적 주장이 더 격렬하게 동원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민주주의란 시민이 적법한 대표에게 일정 기간 일을 맡기고, 그 결과에 따라 일을 계속 맡길지 아니면 다른 시민 대표를 고용할지를 결정하는 체제다. 좋은 냉장고를 쓰고 싶은데 냉장고 회사들이 우릴 속일지 모른다며 우리 스스로 냉장고 만드는 법을 배우자고 해서 소비자주권이 실현될까? 그 일은 냉장고 회사에 맡기되 질 낮은 냉장고를 만드는 회사를 망하게 하는 최종 결정권자 역할을 하는 게 훨씬 더 주권자답다. 그렇듯 정당들은 자신의 후보를 스스로 길러내야 한다.

 

공직 후보자 지명을 민심에 맡기는 것은 국민주권이 아니라 국민동원일 뿐이다. 공직 후보자를 제대로 공천한 정당에게 다시 일을 맡기고 그렇지 않은 정당을 처벌하는 최종 결정자 역할을 해야 국민주권이 온전해진다. 노동조합이 할 일을 조합과 조합원 스스로 하듯, 정당도 그 역할을 스스로 해야 한다. 왜 그 일에 국민주권을 허비하게 해서 정치도 망하게 하고 사회도 분열시키는가. 왜 스스로 책임져야 할 자당의 경선에 국민을 연루시켜 공범자로 만들고 누구 탓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가?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게 운영되어야 한다. 필자의 눈에 이번 대선 경선은 민주주의와는 무관한, 여론 동원 정치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박상훈(학교장)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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