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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빠가 조폭을 물리쳤어요

박신영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 <제가 왜 참아야 하죠?> 저자

등록일 2021년12월02일 10시12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직장 성폭력사건을 겪은 적이 있다. 가해자는 사장. 피해 직원은 나포함 총 5명. 우리는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약속만 하면 사과 받고 덮기로 했다. 송사가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 성폭력 피해 여성에게 세상이 어떻게 낙인을 찍는지를 잘 알아서였다. 가해자는 범죄를 시인하고 사죄문을 써 주었다.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부인이 알게 되자 결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꽃뱀으로 몰아 우리를 해고했다. 우리는 그제서야 고소했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가해자는 갈수록 뻔뻔해졌다. 밤낮으로 협박 전화를 걸어댔다. 경찰서 대질신문이나 재판 때에 ‘아는 형님’이라며 폭력배들을 동원하여 우리를 위협했다. 이때 알았다. 조폭을 왜 ‘깍두기 형님’이라고 부르는지를. 정말 깍두기처럼 네모난 남자들이었다. 상자 모양으로 짧게 다듬은 헤어스타일, 주사위처럼 다부지게 각 잡힌 체격. 눈만 독사처럼 세모였다. ‘아는 형님’은 네모난 얼굴을 험악하게 구기고 주먹을 들이대며 내게 말했다. “감히 여자가 한 남자의 인생을 망치려 드느냐? 밤길 조심해라.” 여보시오, 깍두기 양반. 감히 남자가 다섯 여자의 인생을 망치려 드는 것은 괜찮소? 질 수 없지. 내게도 ‘아는 형님’이 있다. 오빠에게 부탁했다. 오빠는 키가 크고 근육질이다. 눈썹이 굵고 진하며 만만찮게 인상이 험악하다.

 

오빠의 팔짱을 끼고 나타나자, 검은 정장을 후줄근하게 입은 폭력배들은 입을 닫고 눈을 내리깔았다. 은갈치 정장을 날 세워 차려입은 오빠가 싸늘하게 웃으며 하얀 붕대가 감긴 주먹을 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빠는 재판에 따라다니며 깍두기 형님들을 물리쳤다. 가해자가 구속되어 조폭들이 더 이상 안 나타날 때까지.

 

오빠가 처음부터 완벽한 내 편은 아니었다. 사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대뜸 한 말은 이랬다. “그러게, 네가 잘못했네. 왜 태워준다고 그 남자 차를 탔어?” 타인도 아닌 친오빠가 2차 가해를 하다니! 소리질렀다. “어떻게 무려 성폭력 사건인데 내 편이 아니라 가해자 입장에서 말할 수 있어? 여동생보다 오빠가 속한 남성 집단의 이익이 먼저야?” 오빠는 자신이 한 말에 스스로 놀라 아무 말도 못했다.

 

이후 오빠는 달라졌다. 재판에 따라다니며, 10여 년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나를 보며. 현재 오빠는 성폭력 사건 뉴스를 접하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덕분에 또래 중년 남성들에 비해 오빠는 성평등 의식이 있는 편이라고 올케언니는 내게 고마워한다. “내가 오빠를 잘 키워서 그래!” 나는 웃으며 으스댄다. 하지만 잊지 못한다. 오빠가 “그러게, 네가 잘못했네.”라고 말하던 순간을. 나이는 많지만 나는야 고아 소녀. 오빠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고 염려하는 혈친 남자 아닌가. 내게 그렇게도 애틋한 오빠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오래오래 화가 났다. 배신감을 느꼈다. 세상이 무섭기도 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우리는 평소 성차별적 사회 문화 속에 살고 있다. 그러기에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뜸 하는 말은 사건 자체에 대한 말이 아니라 자신이 평소 보고 들은 편견이기 쉽다. 진심으로 가해자편을 들기 위한 의도는 아니며, 단지 몰라서 그런다고. 어머니와 아내와 딸과 여자형제를 사랑하는 선량한 남성이라면 사실을 알려주면 고칠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인류애를 포기하지 않고 오빠를 비롯한 주위 남성들과 대화하며 내 경험과 생각을 전하는 글을 나는 쓰려 한다. 아아, 무려 제 1야당 대선 후보의 ‘양성평등 공약’으로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가 나오는 현실이라니. 더욱 분발해야겠다. 내 사건의 가해자가 유죄판결을 받고 6개월 실형을 살고 나오자마자 무고죄로 나를 역고소하는 것을 목격한 나의 오빠는 이런 공약과 성폭력 무고죄 운운하는 무리들에게 콧방귀를 뀐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겠다.

 

아, 그 붕대의 내력이다. 평생 공놀이에 진심인 나의 오빠. 내 재판 즈음해서는 마흔 다 된 나이에 사회인 야구단에 가입해 활동 중이었다. 몸은 굳었지만 마음은 메이저리거이다 보니 오빠는 자주 부상당했다. 그러니까 단지 야구하다 손을 다쳐서 붕대를 감고 나타났는데, 가해자 측 잔챙이 조폭들은 오빠를 보고 겁먹은 것이었다.

박신영(작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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