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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노조위원장에게 전문성이란

정혜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등록일 2021년10월12일 10시27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정치 밖 전문가일 때는 괜찮았는데 정치권에 들어가니 사람이 이상해졌다는 세간의 평가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진보적인 학자가 장관이 됐는데 기대 같지 않다는 이야기도 노동계에서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정치는 쇄신과 물갈이를 이유로 법률가나 학자, 시민운동가나 언론인 및 고학력 운동권까지 각 분야 전문가들이 꾸준히 유입됐고 정당에서 최대 집단을 이루게 됐다. 노동운동 진영도 법률가나 전문가들의 자문을 비롯해 각종 용역연구, 토론회 등을 통해 접촉량이 상당하다. 그런데 왜 기대한 정책은 잘 실현되지 않고 변화는 쉽지 않을까.

그간 정치나 노동운동에 진보적 공약이나 구체적인 정책 같은 전문지식 투입이 적어 변화가 어려웠다고 여긴다면,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사람, 선출직 자체가 전문직이라는 이해와 존중이 부족한 것도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정치는 전문지식이 많다거나 규범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앞세우거나 선의가 있다고 해서 성과를 내기 어려운 분야다. 정치인은 내부의 다양한 유권자들이나 각종 민원 및 요구를 조정하거나 통합하고, 이해관계나 생각이 상반된 대표자들을 설득해 조금이라도 진전 가능성을 찾아가는 실력이 필요하다.

전문지식인의 정치 유입 그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정치 밖 전문가가 곧바로 정치에서 필요한 역할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당의 의사결정 구조를 이해해야 조직 내에서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켜 당에서 힘 있는 정책으로 만들 수 있다. 상임위원회 활동을 성실하게 하면서 나와 다른 이해와 지향을 가진 의원과 정당들을 설득하고 조정할 수 있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수없이 찾아오는 민원인과 이익집단 사이에 어떤 요구를 우선 해결하고 통합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때로 비판과 비난을 퍼붓는 시민들이나 정치세력, 언론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정치적 언어도 훈련돼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해 집권했을 때 국가와 사회를 운영할 종합적 실력을 갖출 수 있다.

 


△출처 = 이미지투데이


노동운동의 선출직도 마찬가지다. 규모나 대표하는 집단에서 차이가 있지만 민주주의이론에서 노동조합과 정당만큼 유사한 조직이 없다. 선거를 통해 유권자나 조합원들이 대표에게 그 권한을 위임한다는 점이 비슷해서다.

나같이 노조가 무엇인지 ‘글로만’ 배운 사람이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활동가들이 겪는 어려움은 단순히 사측이나 정부와 부딪히는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노조를 찾는 이는 선량한 권리를 침해당한 노동자만은 아니다. 부서에서 ‘빌런’이라 불릴 정도로 동료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오히려 직장내 괴롭힘을 해결해 달라고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수많은 민원을 수용하고 조정하고 통합하면서도, 때로는 적절하지 않은 요구라 해도 마냥 무시하거나 규범적 판단만 앞세울 수 없다.

 

노동 관련 이론이나 노동법에 정통해서 대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지식을 적절히 이용하고 판단해 조합원의 이해를 잘 대표하는 것이 선출직의 역할이다.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이상한 이를 만나고 때로 욕을 먹어도 내적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품성도 필요하다. 그런데 만약 노동조합 쇄신을 꾀하겠다고 외부에서 ‘노동 전공 박사’나 ‘노동 전문 변호사’를 데려와 바로 위원장이나 지부장에 앉히면 어떨까. 잠시 화제성은 있을지 몰라도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보수와 진보, 기업과 노동자, 노동자 내부에도 추구하는 가치와 이해관계가 다르기에 갈등은 불가피하다. 그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 선출직이자 대표다. 차이 속에 일치의 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반대편을 설득하고 내부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도 좀 더 나은 결과를 만들도록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기 힘들다. 가끔 민중의 의지나 시대정신을 앞세우는 이들이 있는데, 나의 올바름을 내세워 상대를 존중하지 않으면 진전은커녕 대화 자체도 불가능하다. 민주주의는 무엇이 옳은지를 확신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위에 서 있는 체제로, 누구의 의견도 틀릴 수 있다고 가정하지 않으면 존립하기 어렵다.

해당 전문지식을 조금 더 아는 사람을 현장에 바로 투입하거나 그럴듯한 담론의 몇 가지 내용을 주장한다 해서 세상이 바뀌거나 조직이 좋아지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진짜 대안이 되려면 선출직이 내부에서 이해관계와 이견을 잘 통합할 뿐 아니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정치과정에 대한 논의까지 필요로 한다. 또한 이를 잘 실현할 수 있도록 선출직들이 조직에서 성장할 토대도 중요할 것이다. 그 모든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선명한 주장이나 선한 의지만 내세우며 변화를 말해 봐야 우리는 기대와 실망만 반복하지 않을지, 어쩐지 염려되는 요즘이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윤·희의 넌 어때?' 코너에 공동 연재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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