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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효도 대리 우애는 이제 그만

박신영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 <제가 왜 참아야 하죠?> 저자

등록일 2021년10월07일 08시5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여보세요? 지금 바빠? 통화 가능해?” “네, 마님~ 말씀하세요.” 5년 전 추석 때 일이다. 민족의 노동절을 앞두고 올케 언니가 전화를 했다. “아니, 글쎄, 오빠가 말이야,,,” 씩씩, 언니의 숨소리가 거칠다. 사연을 들어보니, 오빠가 또 망언을 한 것 아닌가. 글쎄, 언니에게 명절이니 불쌍한 누이동생(그러니까 나)에게 먹을 것 좀 해서 갖다 주라고 시켰단다.

 

응, 언니,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봐. 또 돌아왔다. 오빠를 키울 시간이. 설이나 추석 즈음이면 나는 평소보다 바쁘다. 올케언니의 시어머니(그러니까 나의 엄마)와 남편(그러니까 나의 오빠) 단속하느라.

 


(출처 = 이미지투데이)

 

오빠에게 바로 전화했다. 건조하게 진실만을 말했다. 오빠, 잘 들어. 본인 동생이 명절 음식 못 먹어서 마음 아프면, 본인이 장 봐 와서 직접 요리를 해서 동생 집으로 갖다 주는 거야. 다른 사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언더스탠? 오빠는 나름 애틋하게 답한다. 나는 그냥 네가 신경 쓰여서, 내가 음식할 줄 몰라서 그렇게 말했을 뿐인데? 나는 말한다. 그렇다면 조용히 카드나 주셔. 계좌 이체도 환영이야. 내가 알아서 배불리 사 먹을게. 자, 이쁜 동생은 바빠서 이만.

 

전화를 끊고 나니 한숨이 나왔다. 아아, 오빠여! 한국 남자 중 한 남자여! 본인의 원가족에게 애정을 표현하고 싶으면 본인이 직접 할 일이지 왜 아내를 이용하여 대리 효도나 대리 우애를 행하려 하는가? 그대는 반 백살이나 먹었는데도 왜 모르는가? 결혼한 여성은 남자 집안의 여종이 아닌 것을!

 

역사를 공부하다가 보면 이상한 점이 보인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신분제는 사라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1894년 갑오개혁 때 신분제도가 철폐되었다고 배웠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성은 일상생활 속에서 여전히 남성보다 아래 신분의 인간으로 차별받고 있다. 이런 말을 하면 남성들은 본인이 얼마나 어머니와 아내와 딸과 누이를 사랑하는가를 내세우며 반박하곤 한다.

 

그렇지 않다. 남성들은 가족인 여성조차 같은 인간이 아니라 노예집단 소속원으로 여긴다. 어머니나 누이에게 잘해주고 싶으면 본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 시키는 것이 그 증거다. 어머니나 누이는 남성인 본인보다 하급 인간이니까 본인 스스로 일해서 잘해줄 생각이 아예 들지 않는 것이다. 반면, 시집온 타성의 여성은 본가 여성들보다 아래 계급 인간이다. 그래서 아내를 시켜서 효도나 우애를 실행하려 든다.

 

생각해보라. 명절 때 과로하시는 어머니 앞에서 소파에 누워 티비 보는 아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엄마, 이담에 내가 며느리 데려와 엄마를 쉬게 해 드릴게.’ 당장 본인이 대신 일할 생각은 못한다. 매우 이상한 현상이다. 그렇게나 사랑한다는 어머니조차 종년으로 여기고 있지 않다면야. 물론, 남성들이 마트 따라가서 무거운 시장 보따리를 들어 나르기는 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 즉 하등한 인간이 하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할 생각을 안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맥락에서 원가족에 대한 돌봄 노동 역시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본인이 하지 않고 아내에게 전가하기 마련이다.

 

쯧쯧, 혼자 닭다리 먹고 대우받은 오빠는 차별받고 하녀 취급받으며 자란 여동생(그러니까 나)에게 하녀(그러니까 올케 언니)를 붙여 주는 것이 우애 표현이라고 생각하나? 그러면 상대적으로 본인의 신분이 올라간다고 여동생이 좋아할 줄 알았나? 그렇게나 동생을 모르는가. 혼자 분노하고 있는데 언니가 다시 전화했다. 목소리가 아까보다 밝다. 오빠가 준 카드로 안주 사서 놀러올 테니 맥주만 사 놓으랍신다. 넵, 마님! 순순히 답하고 맥주 사러 나섰다. 올, 오빠가 이번에는 빨리 배웠는걸?

 

실은 아까 전화 끊기 전에 다정하게 협박했다. “자, 이쁜 동생은 바빠서 이만. 그리고 나는 하나도 안 불쌍해. 알아?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불쌍해지는 건 아저씨라고. 이런 사고 방식으로 집안 여자들을 대하다가는 부인과 딸과 여동생에게 늙어서 버림받을 테니까!” 아름다운 추석이었다.

박신영(작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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