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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은 왜 정치에 관여해야 하는가

정혜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등록일 2021년09월14일 10시57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누구나 낯선 사회에 들어가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다. 개인적 경험이지만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에 입사한 뒤 예상 밖으로 토론회나 회의체 등을 통해 많은 사회과학자를 접하거나 본다. 단, 정치학자는 제외하고.

 

입사 초 한 연구자가 “지금까지 경제·경영·법·여성·행정·사회복지·사회학 등 여러 사회과학자를 만났으나, 정치학 전공자는 처음 봤다. 정치학은 무얼 하는 학문인가?” 하고 물어와 순간 당황한 적이 있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노동 관련 국책연구기관에도 전공 분야가 다양한 정규직 박사만 80명이 넘지만 정치학자는 한 명도 없다 하니 그런 질문도 무리는 아니다.

 

학문은 공급만이 아니라 수요도 중요하며 사회과학은 더욱 그렇다. 노동계는 정치와 접촉면이 넓고 현실적 필요에도 공감한다. 그런데 정치를 위험하고 더러운 ‘필요악’ 정도로 여겨서인지 관여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다루는 경우는 드물다. 여러 전문가를 불러 정책 의견을 듣고, 용역 연구를 발주하고 암암리에 전문가리스트를 관리할 정도지만 정작 그 정책이 이뤄지는 ‘정치’ 과정, 예산과 권한을 다루는 ‘국회’나 ‘행정부’가 권력을 집행하는 방법은 상세히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하다.

 


△ 7월 1일 한국노총에서 진행된 노동존중 지역정치학교

 

그런데 사실 노동계처럼 정치와 거리가 가까운 곳도 드물다. 특정 정당에 대한 호불호나 지지 여부를 떠나 조직된 노동자의 크고 작은 단위부터 미조직 노동자나 다양한 형태로 노동을 제공하는 시민들까지 의원실과 정당을 찾는 경우는 빈번하다. 이유는 명확하다.

 

국회가 입법과 예산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이익을 진전시킬 수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그 힘을 노동계에 있는 사람치고 경험적으로 모르지 않는다. 아니, 모를 수가 없다. 일하다 억울한 경우를 당했을 때 최종 판단은 법원이 하지만, 바로 그 법을 만드는 이들은 국회의원이다. 국정감사를 통해 무소불위의 탈법적 권력을 휘두르던 사주를 몇 시간이고 기다리게 만들고, 평생 들어보지 못한 의원들의 질타를 통해 ‘시민들이 선출한다’는 것의 무거움이 무엇인지 알게 할 수 있다.

 

공무원의 고압적 태도에 지쳐 억울함에 한 맺힌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장관을 직접 불러 문제 해결을 압박할 수 있는 곳이 국회이기도 하다. 그러니 노동계는 온갖 심각하고 급박한 사안부터 작은 민원, 공적 사안까지 국회의 문을 두드린다. 시위를 국회 앞에서 하고, 정당과 행정부 수장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것도 그래서다. 중앙정치만이 아니다. 기초의원 한 명이라도 알아 두는 게 현안 해결에 큰 힘이 된다.

 

이제 노동운동이 정치를 현실의 필요악 정도가 아니라, 정치를 잘 다루고 통치 권력의 일부가 돼야 대다수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치란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노사 간 분배를 비롯한 불평등 문제와 같은 중요 갈등 해결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지난 200년간 노동운동이 정치에 참여하고 권력을 추구했기에 일하는 사람들 삶의 여러 갈등이 제대로 다뤄지고 개선될 수 있었다. 결국 불평등 문제를 제대로 다루는지가 노동운동이 정치를 다루는 실력이자 그 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이기도 하다.

 

가끔 노동운동을 하는 이들 중 정치를 회피하고 공장과 거리에서 비타협적 투쟁만 하면 운동의 순수성이 유지될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 현실에서 이런 접근은 일회성 투쟁과 행사 위주 활동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설령 현안이 해결된다 해도 그 혜택은 사업장 담벼락을 넘어서기 어렵다.

 

정치는 민주주의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갈등’을 ‘공적’으로 다루는 것이 그 본질이다. 기업이나 힘 있는 이들은 사적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기에 정치 혐오를 더 자극하곤 한다. 반면 노동자나 약자일수록 숫자의 힘으로 조직해 공적으로 싸워야 하기에 정치가 더 필요하다.

 

가끔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독트린 때문에 전 세계 노동자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사태의 절반만 보는 것이다. 국가별로 정치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지난 40년간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제어하고 완화하는 데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가 작다고 보는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직면한 삶의 구체적 현실을 거대한 구호나 주장 속의 소모품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궁금할 때가 있다.

 

노동과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좌절된 꿈이나 진보정당의 분열상을 듣곤 한다. 현실을 모르지 않지만 민주주의자는 냉소보다 ‘현실적 최선’을 위해 한계를 확장하고자 열정과 책임을 다하는 이에 가깝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시대정신’ 같은 ‘완전한 대안’은 있을 수 없으며, 상대를 완전히 제압해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하나의 옳음’도 불가능하다. 노동운동이 더 실력 있게 민주주의의 문법을 받아들이고 정치를 다루는 세상을 꿈꾼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윤·희의 넌 어때?' 코너에 공동 연재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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