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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존중사회’ 4년 6개월,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 ①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정치적 평가

등록일 2021년09월06일 10시13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조성주 한국노총 정치자문위원(정치발전소 대표)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라는 제법 철학적인 가치지향을 담은 슬로건과 정권 초기 파격적인 노동관련 행보들을 통해 노동계를 비롯하여 시민사회의 큰 기대를 모은 바 있다. 이전 10년간의 정부는 사실상 ‘노동배제적’ 통치로 일관해왔으며 이는 한국의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이에 반해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사회’라는 슬로건과 제시되었던 각종 노동 관련 정책들은 기존 정부들이 제시했던 노선과 정책에 비해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존중사회’ 라는 슬로건이 제시된지 4년 6개월. 이제는 기대보다는 결과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하여 돌아보면 기대만큼의 좋은 평가를 하는 사람은 많이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정치에서 좋은 의도는 늘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이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의지의 부족 문제가 아니다. 정치에서 순수하고 높은 의지는 오히려 현실의 초라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사회’라는 노동정책과 노선 역시 분명 좋은 의도와 의지로 읽혔지만, 정작 현실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와 각자의 의도들을 정치적으로 조율하고 타협하는 데 실패했다.

 

문제는 늘 ‘정치’에 있다. 달리 말하면 문재인 정부는 의도의 선함과 진정성만을 내세우는 것으로 정치 행위의 전부를 다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노동정책과 노선은 왜 정치적으로 효과적이지 못했을까?

 

정책 구호와 구체적 정치 행위의 과도한 일치

 

첫 번째, 문재인 정부는 정책의 목표를 상징하는 구호와 그것을 실현시키는 구체적인 정치행위를 과도하게 일치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최저임금 1만원 인상’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라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을 줄이는 정책의 방향은 옳다. 그러나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과감한 의지만을 내세운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구호와 정책은 다르다. 최저임금이 1만원 수준으로 인상되기 위해서는 먼저 각종 수당이 결합된 복잡한 임금구조, 영세자영업의 부담과 정치적 반발을 상쇄할 정책수단 등이 먼저 마련되어야 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 높은 최저임금 인상률로 의지를 보였을 뿐 실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적인 과정과 수단에 대한 준비는 부족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집권 초기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이라며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직접 방문하여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한 것은 정무적으로 큰 실책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수십여 개의 하청업체와 여러 개의 복수노조가 경합하고 정규직 비율이 극히 낮은 곳이다. 이런 구조의 사업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선한 의도보다 각 집단의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충돌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 할 수 있다.

 

한 번의 퍼포먼스와 메시지를 내기에는 좋은 곳이지만 정작 정책의 성과를 내기에는 어려운 곳이다. 이런 곳에서 대통령이 직접 높은 목표와 의지를 제시하는 퍼포먼스를 행한 것은 이후에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정규직화와 관련한 논란이 커지자 전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 부담이 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되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의지를 보인 곳이 무너지자 나머지는 예정되었던 것보다 더 후퇴하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노사, 노정관계도 조율이 필요한 정치적 관계인데...

 

두 번째, 노사관계 그리고 노정관계라는 것이 매우 정치적인 관계이자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간과했다. 기업집단도 노동조합도 정당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조직이다. 그리고 모든 조직은 내부에 정치적 구조가 자리 잡게 된다. 노동조합은 집행부를 중심으로 기업집단은 경영진을 중심으로 그리고 정당은 권력을 중심으로 그렇게 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때로 노동조합의 지도부 등이 내부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정치적 자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정부의 선한 의지만 보이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노동조합 지도부와 내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반대진영을 설득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치적 자원’을 놓고 구체적으로 ‘거래’하고 ‘타협’했어야 했다. ‘노사정 사회적대화’의 과정이 그러했고 ‘전교조 합법화’, ‘노동시간 단축’, ‘타임오프제도 개선’ 등이 그런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세밀한 조율과 거래가 필요한 결정적 순간에는 원칙적 입장만을 견지하면서 마주쳐야 하는 손바닥의 상대편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시혜적 관점의 좁은 의미의 노동존중... ‘ILO협약’이 실무적 법률개정만이 아닌 이유

 

세 번째는 ‘노동존중사회’에서 말하는 ‘존중’이 담고 있는 의미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했다.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노동’이 담지하고 있는 권리와 가치이지 ‘약자’로서의 노동이 아니다. ‘권리’는 약자이든 강자이든 때로 조직되어 있든 조직되어 있지 않든 보장되어야 하고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사회’에서 말하는 존중은 다분히 시혜적인 관점이 담겨져 있다. 비참하고 열악하며 미약한 무엇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노동하는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이 존중되고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사회’라는 정책의 가장 중심에는 최저임금이나 비정규직이라는 열악한 노동시장의 현상 문제보다 오히려 ‘보편적 결사의 권리’ 등이 담긴 ‘ILO협약’ 이행이라는 과제가 철학적으로 더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공동체의 다양한 동료시민들에게 ‘노동존중사회’의 철학적 가치를 보여주고 설득하는 과정이 될 수 있었던 ‘ILO협약 이행’의 문제는 아주 실무적인 법률 개정의 문제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아마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사회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그다지 깊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까 한다.

 

물론 ‘노동존중사회’는 정부 혼자서 만들어갈 수 없으며 노, 사, 정이 모두 함께 자신의 역할을 할 때 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해 노동운동이 문재인 정부 하에서 각 중요한 국면마다 어떤 정치적 고민과 실천을 했는지에 대한 평가도 함께 필요하다. 다음 글에서는 노동운동의 정치적 행위라는 측면에서 ‘노동존중사회’의 과정을 평가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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