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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갈등이란 없다

박신영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 <제가 왜 참아야 하죠?> 저자

등록일 2021년09월01일 17시11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1970년대에 태어났다.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초중등 학교에 다녔다. 폭력이 일상인 시대였다. 부모는 “내 새끼 내 맘대로 못 때리냐!”며 자녀를 때렸고, 선생님들은 ‘사랑의 매’라며 학생들을 때렸다. 안 때리는 어른들도 많았지만 상황은 불가피한 랜덤이기에 맞는 입장에서는 의미 없다. 아동 학대도 학생 인권도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내 경우는 어떠했나. 집에서는 부모와 오빠가 때렸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과 남자아이들이 때렸다. 세상에 맞을 짓이라고는 없지만, 눈에 띄지 않으려고 조용히 책 읽고 있어도 맞았다. 계집애가 책 읽고 있어서 재수없다는 이유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는 맞으려고 태어났나? 그냥 죽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소리 지르고 따졌다. 부모님이나 선생님께는 저항을 해도 소용없었다. 어른에게 대드는 나쁜 아이라고 더 맞았다. 오빠나 남자애들에게 맞을 때는 어른들에게 호소해 보기도 했다. 답변은 이랬다. “남매니까 우애 있게 지내라.” “반 친구끼리 싸우다니 둘 다 나쁘다. 사이좋게 지내도록 해라.”

 


△ 출처 = 이미지투데이

 

이상했다. 동등한 싸움이 아니라 한쪽이 일방적으로 맞는 상황이다. 그런데 사이좋게 지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해결할 능력을 가진 어른들이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처음부터 어른들 잘못이 아닌가? 아빠가 오빠를 때리고 나면 오빠는 분풀이로 나를 때렸다. 선생님이 단체 체벌을 하면 남자애들은 키 작은 여자애들을 때렸다. 잘못은 어른들이 했는데 왜 보복은 약한 여자아이가 당해야 하는가? 다짐했다. 커서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나는 이 폭력을 다 기억하리라.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된다. 현재 나는 중년 나이의 작가. 세상은 여전히 이상하고, 어릴 적에 다짐한 것을 잊지 않았기에 나는 쓴다. 내가 겪은 이상한 세상에 대해, 여전한 성차별과 폭력에 대해. 내가 쓴 칼럼에 달린 댓글을 읽으며 좋은 의견에 고개 끄덕여 배우고 응원 말씀에 힘을 얻는다.

 

한편 ‘피해의식으로 남녀 성별 대립과 갈등을 조장한다.’ ‘지금이 쌍팔년도냐? 성차별이 어디 있냐? 우리 엄마 세대에나 있었다.’는 댓글을 접하면 한숨이 나온다. 댓글 쓴 이가 10대에서 20대라면 아마 나는 그분의 엄마 또래 나이일 것이다. 그분은 알까? ‘엄마 세대’인 내가 10대였던 1988년에도 현실을 고발하면 ‘요즘 시대에는 성차별이 없고 우리 엄마 세대에나 있었다. 너는 피해의식이 많구나.’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을.

 

도대체 이 현실은 언제 인정받는 것일까? 차별은 늘 있는데 늘 없다고 여겨지며, 피해 경험을 고발하는 사람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나쁜 쪽이 된다. 손가락 그림에도 상처받는 한쪽은 배려해 주면서 말이다. 제대로 보자. ‘남녀 갈등’이란 없다. 갈등이란 동등한 두 상대 사이에서나 가능하다. ‘자본가와 노동자 갈등’이란 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는 남녀가 절대 동등하지 않기에 이 상황은 갈등이 아니다. 이를 인정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폭력을 막을 수 있다.

 

이따금 오빠네 부부가 조카 남매를 차별대우하는 모습이 보인다. 말해주면 오빠는 부정한다. “나는 아들 딸 차별한 적 없어. 그렇게 보인다면 너의 피해 의식 때문이야.” 정정해 준다. “아니, 오빠. 이건 피해 의식이 아니야. 피해 경험이야. 나는 내 경험에 비추어 말하는 거야.” 이 말에 오빠는 조심한다. 다행히, 오빠와는 좀 말이 통한다.

 

중학교 때 생각이 난다. 선생님이 단체 체벌에서 여학생들을 빼 주려고 하면 남학생들은 외치곤 했다. “왜 여자애들은 안 때려요? 남녀평등인데.” 아아, 예나 지금이나 어떤 남자들은 “여자도 때리지 말고 우리도 때리지 말아요.”라고 외칠 줄은 왜 모르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쓴다. 내 오빠만 열심히 키워서는 세상이 빨리 바뀌지 않기에.

박신영(작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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