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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2016)

무너지는 벽과 침입자들

등록일 2021년09월01일 16시54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세일즈맨>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영화다. 이란과 유럽을 오가며 작업하는 아스가르 파르하디의 2016년 작인 이 영화는 이란의 테헤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기이하고도 현실적인 드라마를 담고 있다. 감독은 영화제 등에서 크게 호평받은 <사막의 춤>(2003)을 시작으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2013) 등에서 가족을 비롯한 인간관계 사이의 갈등과 삶의 딜레마를 풀어내 왔다.

 

<세일즈맨>은 이란의 현재를 구체적인 이야기 속에 담아내고 있지만, 그 방식은 노골적이지 않다. 영화엔 주인공인 예술가 부부를 기준점으로 이란 사회의 계층과 차별 등이 세밀하게 담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현실 고발극이 아니다. 영화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보다 근본적인 삶의 문제에 맞춰져 있다.

 

내가 맞닥뜨린 폭력의 상황은 어디서부터 얽혀온 것인가, 그때 나의 행동은 얼마나 많은 거미줄이 교차한 결과인가, 그 모든 것들을 어렴풋이 직감하게 될 때 우리는 결국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영화는 그에 대한 답을 섣불리 내어놓지 않는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상황의 불편함을 그대로 감수하며 생각에 잠기게 할 뿐이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주인공은 에마드(샤하브 호세이니)와 라나(타라네흐 알리두스티) 부부다. 이들은 극단에서 활동하는 연극배우이며, 에마드는 학교에서 교사로도 일하고 있다. 영화는 극장의 텅 빈 무대와 이들의 실거주지인 아파트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두 개의 집, 혹은 두 개의 무대라는 문제를 슬그머니 일러주며 문을 여는 것이다. 가족이 머무는 공간, 무척이나 내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그곳이 실은 무대라는 것일까.

 

<세일즈맨>은 이 문제를 차분히 곱씹을만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 집은 곧장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야심한 밤, 무리한 도시 공사로 인해 부부가 사는 아파트는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고 벽에는 온통 금이 간다. 한순간에 거리로 나앉게 된 에마드와 라나는 극단 동료인 바바크(바바크 카리미)의 소개로 좀 더 낡은 집에 임시로 거주하게 된다. 그런데 전 세입자가 문제다. 작은 방 하나에 온갖 짐을 다 남겨둔 채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다음 집을 구하기 전까지 짐을 버리지 말아 달라는 부탁만을 남겼다.

 

하지만 바바크 일행은 억지로 문을 뜯고 짐을 현관 밖에 내놓는다. 에마드와 라나 부부는 새집에서 다시 일상을 만들고, 연극 연습과 공연도 재개한다. 별일 없는 나날이 지나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침입한 괴한에 의해 라나가 심하게 다치는 일이 벌어진다. 이제 아무 일도 없던 평온한 날들은 사라진다.

 

사건 이후 에마드의 주요 관심사는 괴한의 정체를 밝히는 쪽으로 흘러간다. 이웃들은 그 괴한이 아마도 전 세입자의 고객 중 하나일 것이라고 중얼댄다. 전에 살던 여자가 ‘집에 드나드는 남자가 많았고 문란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게다가 라나는 귀가 후 샤워 중에 봉변을 당했다. 벨을 누른 사람을 남편으로 착각했기에 문도 열어주었다. 이제 에마드에게 이 사건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된다. 그는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 괴한을 잡아내서 사적 복수를 하는 것이 과연 그에 적합한 일일까?

 

애초에 에마드를 움직이는 동기는 무엇일까? 영화 밖의 우리라면 그것을 차분히 따져볼 법하지만, 복잡한 감정의 흐름 속에서 에마드에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 것 같다. 또한 라나는 자신의 표현처럼 홀로 ‘지옥’을 겪는다. 최초의 물리적인 폭력과 함께 불안정한 심리상태, 혼자 있는 것의 두려움, 사람들의 시선 등이 그녀를 지독하게 괴롭힌다. 둘에게 치유는 먼일이고, 둘은 각자의 고통으로 힘겨워한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한편 이들이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연습하는 극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이는 1940년대 뉴욕, 대공황으로 사회의 도덕과 가치가 한순간에 뒤바뀌는 시기를 겪어내는 나이 든 세일즈맨이 주인공인 극이다. 이러한 배경과 내용은 물론 현대 이란의 상황과 겹쳐질 여지가 있지만, <세일즈맨>에서 연극이라는 소재는 그러한 비유와 비교의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일상보다 더 크게 감정을 터뜨리고 들여다볼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무대 위에서, 라나는 공포를 다시 마주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에마드는 전 세입자에 대한 정보를 숨겼던 동료에게 분노하며 화를 쏟아낸다.

 

그리고 무대의 특징이 영화 전반에 퍼진다. 마침내 괴한의 정체를 밝혀내고, 그를 무너져가는 옛집에 초대하는 후반부에 이르면, 등장인물들은 모두 부조리극의 흐름에 속절없이 붙들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누구도 생각과 행동의 주체로 바로 서지 못하며, 아무도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 우리 삶의 이야기를 쓰는 자는 누구일까? 우리 인생의 극작가는 어쩌면 이리도 복잡하게 모든 것을 얽어놓았을까?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마침내 에마드 앞에 나타난 괴한은 너무나 초라하다. 마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끝내 죽음을 맞는 그 세일즈맨과도 같은 모습이다. 복수심을 불태우며 여기까지 달려왔건만, 복수는 그저 말끔한 복수로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다시 타인의 삶을 상처 입히고, 가족을 찢어버리는 선택이 될 것이다. 더구나 라나는 그건 복수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며 행위를 당장 멈출 것을 에마드에게 단호하게 요구한다. 보복의 열망과 도덕적 선택, 개인의 자존심과 명예의 문제가 부딪친다.

 

<세일즈맨>은 서사의 큰 줄기만을 따라가더라도 묵직한 딜레마에 부딪히는 잘 짜인 이야기와 정교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점은 영화 구석구석에서 시선과 침범의 문제들이 불쑥불쑥 출몰한다는 데 있다. 그것이 영화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정답이 없는 고민 속에 관객을 밀어 넣는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벽이 없는 연극 무대, 그리고 벽이 무너지는 아파트의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됐다는 점을 떠올려볼 때, 경계를 넘어서는 침입과 침범의 문제는 영화 전반을 설명하는 주제일 수 있다. 어쩌면 영화가 바라보는 이란 사회, 혹은 현대 사회가 바로 사적인 것들의 뒤엉킴으로 특징지어지는 건 아닐까. 영화의 전반부, 거처를 옮긴 부부와 그들의 친구는 닫힌 문을 억지로 떼어내 여자의 사적 공간을 침범한다. 어쩌면 그로부터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이 문제는 내내 영화를 부유한다. 라나는 관객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폭력은 언제나 문과 창문을 넘어 타인의 공간으로 스며든다. <세일즈맨>은 프라이버시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대신, 이미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폭력이 개인의 자존과 공간을 헤집어버렸다고, 이미 벽은 무너져 내렸다고 말하는 영화다. 괴한이 라나와 마침내 대면하는 영화의 후반부, 그처럼 벽이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가 간신히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사적 장소란 얼굴이라고, <세일즈맨>은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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