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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7)

영화라는 비밀

등록일 2021년07월29일 13시14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우에다 신이치로, 2017)는 무더위에 잘 어울리는 영화다. 포털 사이트에는 이 영화의 장르가 공포, 코미디로 등록되어 있지만,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 촬영 현장의 뒷면을 보여주는 가슴 짠한 코미디’ 정도의 표현으로도 이 영화가 안겨주는 시원한 웃음과 놀라움을 근사하게 담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영화는 크게 2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객에게 아무런 준비도 시키지 않고 다짜고짜 시작하는 1부는 37분가량의 좀비물이다.

 

한적한 시골의 폐공장, 이곳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좀비 영화를 찍기 위해 모인 감독, 스태프, 배우들이 전부다. 그런데 분위기가 제법 험악하다. 감독은 여자 배우의 연기가 좀처럼 맘에 들지 않는지 매몰차게 윽박지르고, 남자 배우에게도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고 타박한다. 잠시 촬영을 쉬어가는 사이, 젊은 남녀 배우와 분장사가 한숨 돌리며 시답잖은 농담을 이어간다. 이것이 영화 촬영 현장을 보여주는 흔한 영상인가 싶은 그때 갑자기 진짜 좀비가 등장해 촬영장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설상가상으로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뛰어 들어와 희열에 찬 얼굴로 이 상황을 촬영한다. 세 사람은 온갖 촬영 소품을 들고 좀비에 맞서기도 하고, 죽기 살기로 도망치기도 한다. 좀비에 물려 좀비가 되거나 좀비를 도끼로 내려치거나, 말 그대로 목숨을 건 현장이 되어버린 이곳. 피가 튀기는 살육전 끝에 홀로 남은 여자 배우, 그녀의 모습 위로 크레딧이 오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1부를 짧게 요약해보면 이렇다. 이 짤막한 영화는 클리셰투성이에다, 실은 조악하기 짝이 없는 B급 좀비물이다. 페인트 티가 물씬 나는 피에 배우들의 연기는 때로 너무나 엉성하고, 각각의 상황은 매끄럽게 잘 이어지기보다는 툭툭 끊기거나 지나치게 잉여적이다. 그 와중에 눈에 들어오는 건 전체 러닝타임인 37분이 원테이크로 촬영되었다는 점. 작정하고 무섭지도 그렇다고 눈물 나게 웃기지도 않은 영화가 끝난 자리에서, 2부라고 할 수 있는 또 다른 영화가 시작된다. (아래 내용은 영화를 먼저 관람하지 않았다면 관점에 따라 중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출처 : 다음 영화)

 

1부로 인해 이미 눈에 익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2부는 ‘한 달 전’이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빠르고 싸고 품질은 그럭저럭”을 모토로 예능 프로의 재연 연상이나 노래방 영상 등을 만드는 감독 타카유키는 케이블 좀비 전문 채널의 개국 기념 스페셜 드라마 연출을 제안받는다. 생중계, 그리고 원 테이크 촬영이 그에게 주어진 과제. 그렇게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는 제목의 (우리가 1부에서 본 바로 그) 영화 준비가 시작된다.

 

그런데 대본 리딩부터 난항이다. 주연 남자 배우는 좀비가 도끼를 쓰는 설정이 이상하지 않냐며 깊은 생각에 잠기고, 아이돌 출신 여자 배우는 토사물을 뒤집어쓰는 장면은 촬영하기 어렵겠다며 수정을 요구한다. 그뿐인가 촬영감독 역의 배우는 알코올 중독이고, 음향기사 역의 배우는 장이 민감하다며 물을 따로 준비해달라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리허설을 마치고 실제 촬영이 이루어지는 날에는 분장사 역의 배우와 감독 역의 배우가 촬영장으로 오던 도중에 가벼운 접촉사고를 당하는데, 그새 둘이 부적절한 관계로 발전한 탓에 출연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린다.

 

어떻게 보아도 방송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건만, 나름대로 임기응변에 단련된 감독은 직접 감독 역할을 맡겠다고 나서며 촬영을 준비한다. 분장사 역에는 현장에 놀러 온 전직 배우 출신의 감독 아내가 나선다. 현장에 따라온 딸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상황. TV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혹은 작품의 마무리를 위해서, 나름의 자존심을 위해서, 어찌 됐든 카메라는 돌아간다. 이처럼 2부의 후반부는 우리가 1부에서 보았던 영화가 어떻게 찍혔는지, 카메라의 뒤편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의도와 계획, 변수와 돌발 사이에서, 지금 막 생중계되고 있는 이 영화를 도중에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한 분투가 펼쳐진다. 여기서 우리는 영화 만들기의 두 측면을 본다.

 


(출처 : 다음 영화)

 

하나는 말 그대로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카메라와 연관된 것이다. 카메라에 담기는 것이 곧 영화가 된다. 2부 후반부의 좌충우돌은 일차적으로 그 유쾌하고 짜릿한 소동을 묘사하며 재미를 준다. 영화는 관객에게 전달되는 사각형의 화면을 만들어내기 위한 여러 노력을 드러낸다. 내내 카메라를 들고 달리는 촬영감독의 뒤편, 혹은 카메라 앵글의 바깥에는 피를 만들어 뿌리고 우왕좌왕하는 배우들의 동선을 맞추기 위한 스태프들의 고생이 널려있다. 이들은 하나의 허구적 세계를 성립시키도록 하기 위해 술 취해 잠든 배우를 깨우고, 화장실 문제로 이탈하려는 배우를 데려와 카메라 앞에 세운다.

 

대본을 벗어나는 내용을 어떻게든 연결하기 위해 즉석에서 설정과 대사를 만들기도 한다. 영화를 만드는 일은 이처럼 인물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설정의 구멍을 메우며 가상의 세계를 끝까지 지탱하는 일이다. 일반적인 극영화에서는 허구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 관객을 몰입하도록 하기 위해 갖가지 촬영과 편집 기법이 두루 쓰이지만, 여기서는 원테이크 촬영이라는 특수한 설정이 그 관습을 자유로이 혹은 위태롭게 가로지른다.

 

이와 관련된 두 번째 측면은 이런 것이다. 영화는 현실과 가상, 실재와 허구의 절묘한 조합을 통해 완성된다. 현장은 이토록 아수라장이지만, 중계화면을 보고 있는 방송국 관계자들은 “저 친구 연기에는 거짓이 없다니까!”, “이 장면은 꽤 리얼한걸?”이라며 감탄한다. 실제 카메라 안팎에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건 말건, 카메라에 담기는 모습만을 최종적으로 접하는 관객에게 그것은 대체로 알 바가 아니다. 감독과 분장사 역의 배우가 바뀌고, 대본이 마구잡이로 변형되어도 결국 완성된 영화는 완성된 영화일 뿐이다. 우리는 운 좋게도 이 독창적인 구성의 영화를 통해 카메라 뒤편의 혼란 혹은 비밀을 볼 수 있다.

 

가령 생각지도 못한 감독의 감정적 애드리브에 눈물을 쏙 빼는 여자 배우의 얼굴, 역할에 몰입해 폭주하는 배우를 막으라며 그 앞에 내던져진 좀비(배우)들, 정신없이 현장을 담는 카메라 렌즈에 튄 피, 뛰다가 넘어져 버린 촬영감독과 함께 바닥에 팽개쳐진 카메라와 같은 것들은 엄밀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장면이 아니다. 여기엔 우연과 돌발이 마구잡이로 개입되어 있다.

 


(출처 : 다음 영화)

 

1부와의 비교를 통해 2부를 감상할 때 발생하는 일차적 재미는 ‘이 장면이 실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엿볼 수 있는 일종의 숨은그림찾기 같은 알아채기에 있다. 그런데 ‘리얼!’, ‘진짜 눈물!’과 같은 구호들과 관련해 생각해볼 만한 측면들이 또 다른 재미를 만든다. 여기엔 겹겹의 진짜와 가짜들이 있다. 1부에서 갑자기 좀비가 습격한 일은 허구적 세계 속에서 리얼이다. 그 1부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진 갖가지 소동은 2부라는 허구적 세계 속에서 역시 리얼이다.

 

그리고 2부가 막을 내리고 이 영화의 진짜 크레딧이 펼쳐질 때 함께 등장하는 1부의 진짜 메이킹 영상이 있다. 이 마지막 겹에 이르러 우리는 정밀하게 계산된 카메라 워킹과 설정을 마주하지만, 실은 그걸 맞춰보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흥미로운 건 리얼과 허구, 진짜와 가짜를 무 자르듯 구분하기 어렵다는 사실일 것이다. 대부분의 소동은 미리 계획된 전체 각본 속에 들어 있는 것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카메라 렌즈에 튄 피는 현장에서 우연히 발생한 일이라는 뒷이야기처럼 말이다. 영화는 언제나 그러한 비밀을 품고 오늘도 새로운 관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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