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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임원할당제와 남성중심적 조직문화

장진희 한국노총중앙연구원 연구위원

등록일 2021년07월20일 10시02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최근 들어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안티페미니즘이 빠르게 확산하고 여성할당제 논의가 다시금 대두됨에 따라 젠더 갈등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젠더 갈등을 야기하는 원인에는 여러 요인이 존재하겠지만,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여성할당제 개념에 대한 남성과 여성 혹은 계층 간의 상이함을 들 수 있다. 사실 국내 학자들의 상당수는 분석층위가 사뭇 다른 ‘여성할당제(Quotas for Women)’와 ‘젠더할당제(Gender Quotas)’를 대부분 여성할당제로 기술하거나 번역하는 경향을 보인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그러나 이론적 관점에서 전자는 생물학적 여성에게 일시적으로 혹은 잠정적으로 특혜를 제공하는 ‘차별정책’으로서 적극적 조치를 의미하지만, 후자는 논의 맥락에 따라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을 각각 혹은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정책’으로서 적극적 조치를 의미한다. 즉 여성할당제를 사회구조의 불균형 해소 내지는 젠더균형적인 참여와 대표성 성취를 위한 보편적 정책으로 받아들이는 계층과, 생물학적 여성만을 취약계층으로 정의해 이들만을 위한 특혜를 베푸는 차별적 우대정책으로 여기는 계층으로 구분된다. 여성할당제가 결국 젠더 갈등의 기제로 작동된다. 그럼에도 합의된 개념이 자리 잡기도 전에 여성할당제가 논의됨에 따라 논란이 생산되고 있다.

2003년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까지 여성임원할당제가 법제화되며 여성임원할당제는 세계적인 흐름임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역시 2019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개정됨에 따라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주권상장기업은 이사회 이사 전원을 특정 성으로 구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여성임원할당제가 도입됐다. 해당 규정은 올해 10월21일 시행한다. 그 결과 자산총액 2조원 이상 법인의 여성이사는 2019년 31명에서 불과 1년 만에 1.71배 증가한 53명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 실제 여성 사내이사는 1명 증가에 그쳤고, 대다수는 거수기 역할에 불과한 사외이사나 비상임이사에 여성이 할당되는 현실이다.

 

특히 여성 사외이사는 그 수가 크게 늘었으나 대부분 법조인이나 대학교수, 전직 관료 등 이미 사회 기득권층으로 구조화된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할당제 취지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이는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할당제가 보편적 젠더정책보다는 차별적 우대정책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이처럼 사회적·개념적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 도입은 미봉책에 불과할 뿐 아니라 여성노동의 평가절하, 전방위적 여성혐오 등 더욱 심각한 젠더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필자는 여성임원할당제 도입의 본질인 남성중심적 조직문화에 주목한다. 최근 사회가 변화하고 경쟁이 심화함에 따라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조직문화 역시 급변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수직적이고 권위적이며, 가부장적 조직문화가 우리를 지배한다. 가령 구시대적인 상명하복 조직문화나 상사가 퇴근하기 전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는 비상식적인 장시간 노동 문화, 그리고 업무시간 후 이어지는 업무지시에 대한 응대와 네트워크, 강제적인 회식참석 등과 같은 비공식적인 규범들이 여전히 조직문화에 고착화해 있다. 이 때문에 가구 내 가사와 양육부담을 지고 있는 여성은 조직의 비공식적 규범에 벗어나고, 업무역량과 별개로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낮은 혹은 조직에 우선적이지 않은 부적합자로 분류된다.

특히 비공식적 규범은 업무역량과 충성도를 대변하는 지표가 아님에도 개인의 평가 잣대로 활용되면 여성은 더욱 취약해진다. 실제로 업무역량이 뛰어나고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음에도, 은연중 혹은 의도적으로 비공식적 규범이 개인평가에 반영된다면 일과 가정 간 상충관계에 놓인 여성은 직장내 약자에 위치하게 된다. 즉 조직 우선주의하에서 일과 가정 가운데 있는 여성을 ‘이상적인 노동자규범’에 어긋나는 존재로 평가하고 이를 공식적·비공식적 평가에 반영함으로써 여성노동의 가치는 절하된다. 2020년 우리나라 200대 기업 중 여성 등기임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곳이 73%인 현실에 비춰 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조직문화가 이러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다 보니 미봉책에 불과할지라도 여성임원할당제 도입이 필요하다 싶으면서도, 우리나라 기업들의 행태를 봤을 때 현재의 여성임원할당제는 큰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여성임원할당제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 우대정책이 아니라 당연히 사라져야 했던 이유 없는 차별을 해소해 나가는 과정이고 구조화된 불평등 개선과 젠더균형 등 여러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이 제도가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지 않았다. 이에 비공식적 규범이 당연하게 요구되는 조직문화가 개선돼야 한다. 적어도 남성과 동일한 업무능력을 가진 여성이라면 남성만큼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특히 비공식적 규범을 잣대로 불합리한 업무배치와 개인평가가 이루어지는 현장에서는 객관적 지표가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만 보편적 정책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 법적으로 여성의 노동가치가 인정받고 보상받을 수 있도록, 향후 내부승진을 보장하는 법적 토대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윤·희의 넌 어때?' 코너에 공동 연재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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