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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용’에 대한 소고(小考)

정혜윤 한국노총중앙연구원 연구위원

등록일 2021년07월20일 09시52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어용(御用). 사전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부나 그밖의 권력 기관에 영합해 자주성 없이 행동함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나는 한국노총이 대한노총에서 출발한 어두운 역사와, 민주노조 운동으로 민주노총이 만들어지고 한국 노동운동이 일정 정도 좋아졌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전근대적 사용자가 노조 파괴 공작을 펼치며 형해화한 노조를 만드는 방식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다만 언어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행동을 제약한다. 때로 민주적 행위조차 혹시 ‘어용’에 가까운가 싶어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부분도 있는 듯하다. 중요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어용’이란 용어에 가두지 말 것을 제안하고자, 이익·타협·권력이란 세 가지 차원에 주목하려 한다. 미리 밝히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꿈꾸는 혁명 좌파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다.

첫째, 현대 민주주의에서 ‘노동자 집단’이 중요한 행위자인 이유는 이들이 주요 생산자집단이기 때문이지,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단일한’ 역사적 주체여서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지배를 목표로 하지만, 이 다수는 다종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소수들로 구성된다. 각자 갈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노사 간에는 생산의 결과를 둘러싸고 분배 갈등을 피할 수 없다. 같은 노동자 간에도 일하는 업종에 따라,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 소규모 자영업자부터 대기업을 운영하는 사업주까지 각기 다른 이익추구가 인정되는 것이 민주주의다. 각자의 사익을 존중하고 조정해 공익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지, 처음부터 정해진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평범하면서도 각자의 욕망을 가지고 불완전한 인간들이 서로 싸우고 적대할 수밖에 없는 ‘갈등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다만 집단 간 ‘갈등’을 ‘조정’해 ‘이상’은 아닐지라도 ‘현실적 최선’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정치체제다. 오히려 민족공동체의 이상, 노동자계급의 단일한 승리, 역사발전의 최종목적지 같은 ‘옮음의 전체주의’를 추구했던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는 실현되지도 살아남지도 못했다.

다양하게 발생하는 노·노 간 파열음과 갈등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를 ‘조직 이기주의’나 ‘연대의식 결여’로 꾸짖는 방식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신의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는 ‘논평가’보다는, 저마다 추구하는 ‘올바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 갈등을 조정해 좀 더 나은 결과로 이끄는 이가 훨씬 민주주의자에 가깝다.

둘째,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경쟁하는 한 노동운동하는 이들의 ‘타협’은 ‘현실 영합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필수 절차이자 실천 행위다. 특히 한국 자본주의는 압축적 발전을 겪은 만큼, 노동운동이 다뤄야 하는 문제도 그 수준이 균질하지 않다. 아직 19세기인가 싶게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받기 위해 거세게 싸워야 하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화내고 소리치며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 부족한 경우도 있다. 노조가 좀 더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 정부나 기업 같은 상대를 치밀하게 설득하고 ‘협상’해야 하는 영역들도 공존한다. 오히려 비난받을 것이 두려워 ‘선명함’을 내세우기만 하고 작은 변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얼핏 정의로워 보일 수는 있어도 진짜 변화를 만들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셋째, 가끔 노동운동 진영 내 운동과 투쟁의 순수성만 강조하며 권력과 정치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야유하거나 경원시하는 태도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에서 가져온 놀라운 역사를 무시하는 일이다. 평등한 선거권이나 국가복지 혜택처럼 현재 우리가 시민으로서 누리는 여러 가지 권리들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노동자들이 지난 200년간 노조를 만들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을 통해 정부와 제도에 참여하는 적극적 ‘권력 추구’ 덕에 성취할 수 있었다. 현재 조직의 대표나 정치인들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권력’이나 ‘정치’를 멀리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주어진 권력을 좋은 일에 알맞게 쓸 수 있는지 고민할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좀 더 나은 대표를 선출하고 보다 책임을 지울 방법을 찾는 것이 다소 불만족스러워도 ‘현실의 최선’이 될 수 있다.

권력에 굴종하는 어용이라면 회피해야 한다. 하지만 관념이 아닌 실체로서의 노동운동을 하기 때문에 어용이란 비난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으니, 그때는 오히려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윤·희의 넌 어때?' 코너에 공동 연재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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