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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치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

정혜윤 한국노총중앙연구원 연구위원

등록일 2021년07월20일 08시3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날이 더워지면 2018년 어느 여름날 비보가 떠오른다. 한 정치인의 비극적 죽음에 며칠간 무겁고 복잡한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그를 추모하거나 그리워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노동운동이나 정치의 공간에서 노동자와 약자의 이해가 진전되도록 노력하겠다 다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대다수 노동자의 삶이 소외되는 언론 공간에서 하나라도 의미 있는 뉴스를 전하겠다 마음을 다잡는 기자들도 있으리라. 혹자는 그의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정치적 언어를 그리워할 수도 있겠다.

 


▲ ‘노동자의 벗, 노회찬 의원을 기억하겠습니다’ 한국노총 추모영상 갈무리


나는 그를 애도하는 방식 중 하나가 정치(인)와 ‘돈’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길이라 믿는다. 우리는 여전히 좋은 정치인을 돈 문제로 잃거나, 애초 정치에 진출하기 어려운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노동하는 시민들을 대표하는 정치인을 조직적으로 배출하기도 어렵다.

민주주의는 ‘1인 1표’라는 평등의 원리에 기초하지만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와 거대한 국가 관료제 시스템에서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자본주의에 내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정치의 방법’으로 수정하려면 개인이 아니라 단체나 집단으로 조직돼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특히 액수는 많지 않더라도 집단으로 돈을 걷어 그 힘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중요한 정치참여다. 지난 200년간 엄연히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조직을 통해 돈의 힘을 선용했기에 불평등도 개선하고 복지도 확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4년 개정된 정치자금법은 노동조합 등 법인과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노동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자신들을 대표하는 정치인을 만들어 내기는커녕 조직적 후원을 밝히기조차 어렵다. 2007년 노회찬 의원을 포함한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과 노동조합의 기부활동은 대대적인 수사 대상이 됐고, 2011년에도 한국노총을 비롯해 100여개 노동조합이 조사를 받으며 수년간 곤욕을 치른 이유도 정치자금법 때문이다. 한국처럼 자금모집에 관해 단체의 관여를 광범위하게 가로막는 민주주의 국가는 드물다. 시민들의 자유롭고 조직적인 정치참여 자체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조합원 중에는 노조 출신 정치인들의 실망스러운 행보나 선거 때만 노동존중을 내세우는 정당들 행태에 지쳐 노동조합의 정치참여 자체에 냉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한국의 정당들은 대다수 노동하는 시민 삶의 문제를 두고 경쟁하거나 해결하는 데 무관심하거나 무능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다만 노조 출신이거나 상대적으로 노동계에 친화적인 인사가 정당에 있어도 노동의 힘이 조직적이고 집단적 돈과 표로 증명되지 않는다면, 이들은 무정형의 변덕스러운 여론이나 공천권자 입맛에 맞춰지기 쉽다. 정치인과 정당이 지금보다 훨씬 일상적으로 노동을 대변할 수 있게 하려면 ‘조직’이나 ‘집단’의 꼬리표가 달린 자금과 표가 주어져야 영향력 행사가 용이하다. 문제는 노동자 조직이나 집단이 정치참여를 결의하고 후원금을 내고 싶어도 정치자금법 구조상 불법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단체나 기업의 정치헌금을 허용하면 재계나 보수쪽에만 돈이 모일 거라는 우려도 있다. 그런데 한국 재벌의 힘이 과도하게 막강한 이유가 공적 정치자금의 문제였던가. 사회경제적 강자일수록 평등한 시민권이 작용하거나 공적 내용이 오가는 정치적 영역에서 싸우려 하지 않는다. 정치 밖 사적 영역에서 개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야 더 유리해서다. 재벌은 이미 권력 집단과 밀착돼 사적 수단을 많이 가지고 있다. 오히려 단체와 기업의 정치자금을 허용해 어느 정당과 정치인이 누구의 자금으로 자신의 정치활동을 영위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는 편이 시민들의 정치적 선택과 판단을 명료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돈 안 드는 깨끗한 정치’를 앞세우는 이들이 있는데, 대중정치에 돈이 필요하다는 객관적 사실조차 부정할 수 없다.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부터 참여하고 조직하는 모든 정치 행위에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노동조합의 작은 조직도 선거를 준비하거나 대표 역할을 하려면 적지 않은 자금을 필요로 한다. 사실 사람을 수없이 만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일에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간혹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정치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SNS는 이미 조직된 사람들 간 연락이나 정보교환을 쉽게 해 줄 수는 있으나, 플랫폼 자체가 책임 있는 정치참여나 문제 해결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익명의 책임성 없는 정치참여가 동료 시민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과 혐오를 부추기거나 사회적 갈등을 증폭·재생산하는 광경을 심심찮게 목격한다.

지금처럼 검찰과 언론이 도덕주의적 태도를 동원해 ‘반부패’를 이유로 조직적으로 돈을 모으는 자체를 금지한다면 결국 그 최대 향유자는 애초부터 자금동원력이 막강한 강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자는 집단과 조직을 만들어 ‘수’의 힘으로 가진 자에 맞서야 할 보통의 시민들이고 노동자들이다. 정치와 돈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래야 고 노회찬 의원이 꿈꾸었던 노동자와 약자를 위한 정치가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윤・희의 넌 어때?' 코너에 공동 연재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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