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인 조치원의 한 PC방에서 옆자리의 20살 남짓 된 아이들이 열렬히 코인 얘기를 하는 것을 들을 때, 나는 언론과 인터넷에서만 접하던 암호화폐 열풍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얘기는 내가 평소 접하던 암호화폐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암호화폐의 기술적 기반인 블록체인 이야기를 포함해서, 기술과 금융에 대한 어떤 언급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의 암호화폐 얘기는 게임 얘기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었다. 언제 들어갔다가 언제 나와야 하는지, ‘감’을 믿어야 하는 때는 언제인지, 무엇이 입소문을 타고 있는지 등. 이처럼 화려한 기술적 어휘와 가능성을 논하는 접근법과 게임, 혹은 도박을 즐기는 듯한 접근법은 ‘코인판’을 구성하는 아주 양면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사회의 공식적 부문과 중산층 이상의 교육 수준과 문화를 갖춘 사람들을 대변하고, 후자는 사회에서 잘 조명받지 못하는 부문과, 기술과 금융에 대한 개념에 진지한 관심이 없는 이들을 대변한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그러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코인에 몰두하는 2030 세대는 모종의 정서를 강하게 공유하고 있다. 먼저 미시적 차원에서, 코인은 즉각적인 효능감을 참여자에게 제공한다.
이는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즐겼던 컴퓨터 게임과 정확히 같은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행동이 즉각즉각 반영되어 보상 혹은 손해를 주며, 수치로 자신의 성취가 나타난다. 게다가 그 수치는 게임의 사이버 돈이나 능력치와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 현실의 돈이었다. 주식도 이와 유사하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만 할 수 있는 데다가 상하한가라는 제약이 있는 주식은 코인에 비해서는 약한 자극을 줄 수밖에 없었다.
2030세대가 코인에 빠져드는 이유는 공부와 노동처럼 진득하게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서 차근차근 성취를 쌓아가는 것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해서다. 대신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즐겨 익숙한 게임의 논리를 현실에 대입한 코인은 ‘하기에 따라서’ 즉각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한국 경제의 풍요로운 부문에 들어가기가 더욱 어려워짐에 따라 현실에서의 보상은 멀어졌고, 심리적 차원에서 보상을 바라는 시간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어 빠른 ‘한방 역전’의 유혹이 강해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 잘 나타내는 단어가 코인판에서 쓰이는 용어인 ‘졸업’이다. 졸업은 코인판에서 승리하여 수십억의 돈을 챙겨 나오는 것을 뜻한다. 졸업이라는 단어에는 이제는 암호화폐 같은 위험한 일 대신에 서울에 부동산을 사 사회의 안정적인 상층부에 자리하고, 고된 노동의 압박에서 해방되는 것까지 암시되어 있다. 이 역시 청년층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과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부동산이 폭등하는 와중에 성실한 노동을 통해서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는 것은 멀어져가고 있으며, 그런 노동 수익이라도 올릴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가는 경쟁은 격화되었다. SNS에는 같은 청년인데도 노동에서 해방되어 인생을 즐기는 것 같은 이들이 넘쳐나면서 좌절심을 더욱 심어주었다. 이렇게 해방된 이들이 코인을 통해 ‘졸업’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꿈을 한켠에 품고 재미로라도 코인을 시작하게 되고, 코인이 주는 즉각적 보상과 강렬한 자극에 중독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따라서 청년층의 코인 열풍은 최근 2010년대에 불거진 전반적인 한탕주의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코인판은 양지로는 주식과 그 세계를 공유하며, 음지로는 불법 스포츠도박과 세계를 공유한다. 즉, 한탕을 노리는 청년들에게 불법토토와 암호화폐와 주식은 하나의 스펙트럼을 구성한다.
소수는 연구를 하고 전략을 짜고 들어가고, 다수는 밴드왜건을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그들을 움직이는 심리는 같다. 노동을 통한 성장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즉각적 자극에서 쾌감을 느끼며, 언젠가는 고된 경쟁에서 해방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코인장의 등락과 별개로, 이 끓어오르는 욕망은 계속해서 배출구를 찾아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