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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이 꽃뱀에게 당했다고요?

박신영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 <제가 왜 참아야 하죠?> 저자

등록일 2021년05월06일 17시46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이번에는 남의 오빠 이야기. 작가가 되기 전에 직장성폭력 사건으로 싸운 적이 있다. 남자 사장이 여자 직원 5명을 연쇄 성추행한 사건인데, 피해 사례 중에는 강간 미수까지 있었다. 당시 나는 대표 고소인이었다. 가해자 측의 협박도 대표로 받았다. 가해자가 조폭까지 동원해서 협박하면 그때마다 녹취하고 동영상을 찍어서 제출했다. 그 결과, 경찰 조사가 끝나고 검찰에 송치될 때 가해자는 구속되었다.

 

재판을 준비하던 어느 날, 가해자의 형이 연락했다. 동생 대신 용서를 빌겠으니 합의해달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우리는 만나보기로 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너무나 지쳤기에 합의해 주고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해자는 가난한 부모 아래 장남으로 태어나서 동생들을 챙긴 큰형님을 존경한다고 종종 말했다. 고위 공무원이 된 형님이 얼마나 이성적인 사람인지, 그의 머리가 얼마나 비상한지를 자랑했다. 그래서 나는 조폭들과 달리 말이 통할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에 짙은 색 정장 차림으로 나온 그는 호통을 쳤다. “겨우 어깨 두드린 정도 가지고 감히 여자들이 남자의 인생을 망치려 드느냐? 얼른 합의해라. 얼마를 원하냐? 너희들 꽃뱀이지?” 협상은 결렬되었다. 스트레스 받은 우리는 음식과 술을 주문했다. 다른 테이블로 물러나 앉은 그를 외면하고 맹렬하게 먹고 마셨다.

 


<EBS1 ‘까칠남녀’ 캡쳐>

 

이후 형사와 민사 재판이 이어졌다. 우리는 모두 이겼다. 가해자는 징역 6개월 실형을, 피해자인 우리는 위자료 5백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꽃뱀’이라니, 웃긴다. 2년 고생해서 겨우 5백만원을 벌었다. 그 기간 동안 직장 다니면 열 배 이상 버는데, 겨우 돈이 목적이라면 왜 고소를 하겠는가? 이런 현실을 모르고 가해자의 형은 그런 망언을 해서 합의를 망친 것이다. 처음부터 범죄를 안 저지르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나마 가해자 입장에서 차선인 해결 방안은 고소 전에, 늦어도 1심 판결 나오기 전에 합의하는 것인데도.

 

내 오빠나 가해자의 형이나, 동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지극할 것이다. 그런데도 가해자의 형은 합의를 망쳐서 동생을 감옥살이 하게 만들었다. 동생의 말을 너무 믿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범죄자는 주위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범죄를 축소해서 말하기 마련이므로.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겨우 어깨 정도 두드렸으면 구속당하지도 않았다.

 

고시에 붙어서 고위 공무원이 된 사람이 이 정도를 모를 리는 없다. 아마 그는 ‘여자가 성폭력범이라고 지적만 하면 무고한 남자의 일생이 망가진다.’, ‘대부분 여성들은 성폭력 피해를 수치스럽게 생각해서 피해를 당해도 조용히 사라진다. 고소하고 강하게 대응하는 여성은 전문 꽃뱀뿐이다.’라는 편견대로 말한 것은 아니었을까. 동생을 위하여 협상하러 나온 자리인데도 우리에게 반말로 소리친 것은 이상하다. 명백히 잘못을 했는데도 상대가 여성이라면 잘못을 인정하는 일 자체를 못하는 남성들이 많은데, 이 경우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가해자의 형은 자기 잘못을 모르고 미투 고발 뉴스를 접할 때마다 피해 여성들을 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겪어봤는데, 여자들이 거짓말을 해서 내 동생 인생이 망했거든, 쟤네들 다 꽃뱀이야,,, 이렇게. 이런 말을 듣고 다른 남성들이 악영향을 받으면 또 어쩌나. 나는 걱정이 된다. 그래서 이 지면을 빌어 말한다. 성폭력범이라고 신고만 하면 경찰과 검사가 여자 말만 믿기 때문에 무고한 남성이 유죄판결을 받는 일은 없다. 남성의 인생을 망치는 것은 꽃뱀이 아니라 성차별 성폭력 사회에 만연한 편견이다. 실수로 스쳤거나 말실수 정도 했는데 성범죄자로 몰렸다면 바로 사실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된다. 그러면 고소 없이 그 단계에서 끝난다. 힘든 고소와 재판 과정을 감수하면서 겨우 몇 백만원 벌자고 무고하는 일반 여성은 없다.

 

나중에 보니 가해자의 형은 우리 테이블까지 미리 계산하고 갔다. 그러니까 그는 남자의 ‘가오’를 쓸데없는 데에서 잡고 실속은 챙기지 못한 것이다. 꽃뱀인데 먹이는 왜 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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