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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예찬도 여성 혐오다

박신영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 <제가 왜 참아야 하죠?> 저자

등록일 2021년03월30일 13시18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조카들 어릴 적, 올케 언니는 직장에서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다시 출근하여 애들 봐 주시던 어머니와 교대했다. 주말에도 아이들을 돌보며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쉬지 못했다. 오빠는 달랐다. 주중에는 퇴근 후 약간 돕고 주말에는 혼자 놀러 다녔다. 어려서 구슬치기, 축구, 농구에 빠졌던 오빠는 커서는 당구와 테니스를 거쳐 사회인 야구까지 즐겼다. 무슨 인간이 평생 공놀이에 진심인지, 원. “글쎄, 오빠가 자기는 주중에 힘들게 돈 벌었으니 주말에는 쉬고 놀아야 한 대. 나도 출근하고 돈 버는데 말이야.” 언니가 전화로 하소연하면 나는 맥주와 조카들 간식을 사들고 오빠 AS하러 출동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오빠네 부부싸움에도 많이 참전했다. 한번은 ‘주말에 내가 집안일 하는 동안 애들이라도 봐 달라.’는 언니의 말에 오빠가 이렇게 답하는 것이 아닌가. “왜 내가 애를 봐야 해? 애는 원래 엄마가 키우는 거야.” 아아, 부끄러움은 왜 듣는 여동생의 몫인가. 오빠는 이어서 말했다. “나는 좋은 남편이라구. 내가 돈을 안 벌어 오냐? 너를 때리냐? 바람을 피우냐?” 언니는 폭발했다. “그럼 나는? 나도 그런 짓 안하는데?” 오빠가 뇌맑게 답했다. “너는 여자잖아. 남자랑 같냐?” 드디어 왔도다. 내가 참전할 타이밍이. “와, 난 오빠가 이렇게나 여성혐오자인줄 몰랐네?” 오빠는 발끈했다. 이하는 내가 설명한 내용이다.

 


tvN 월화드라마 ‘산후조리원’.

 

여성혐오(女性嫌惡)는 여성을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전문용어 미소지니(Misogyny)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다. 여성혐오란, 여성을 남성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아서 생기는 각종 성차별적 사회 시스템, 사고방식, 문화를 말한다. 여성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너무 좋아하고 필요해서 남성에게 유리한 방법으로 이용하려다 보니 생기는 문제가 여성혐오다.

 

일단, 남자니까 육아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오빠의 말은 틀리다. 맞벌이니까 남자도 해야 한다는 언니의 말도 틀리다. 누가 돈을 얼마나 벌어오는가에 육아 의무가 더하고 덜하지 않는다. 양육자들은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며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어야 한다. 그 의무는 부모만 지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 살아서 자주 만나는 고모인 내게도 있다. 그런데 ‘애는 원래 엄마가 키우는 것’이라니? ‘내 자식이어도 애보기 싫다. 나가서 친구들과 놀고 싶다.’라고 말하면 본인이 나쁜 사람이 되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아내를 엄마의 의무를 지기 싫어하는 모성애 없는 나쁜 여자로 몰아서, 할 수 없이 독박육아를 하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여성 혐오다. 여성 혐오는 여성을 창녀, 마녀 등 나쁜 여자로 만드는 방법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모성예찬 같은 숭배의 방법으로도 움직인다. 어머니/여성의 희생과 노동을 찬양하여 여성 스스로 알아서 남성 편의를 위해 일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다음, 생활비 벌고, 때리지 않고, 바람피우지 않으면 좋은 남편이라는 말도 틀렸다. 그것은 결혼 계약을 맺은 시민의 기본 덕목이다. 남편은 마이너스가 되는 일을 하지 않고 기본만 유지하면 훌륭한 배우자인데 아내는 왜 기본은 당연히 지키고 거기에 플러스를 더 해야하는가?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인간으로 보니까 그렇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의 몇 배로 일하고 노력해야 겨우 인간으로 인정받는다. 이렇게 본인과 아내를 같은 급의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이 오빠의 기본 문제다. 그것이 여성혐오다. 지금 언니가 겨우 청소기 한 번 돌리는 문제로 화를 내는 것 같은가? 아니다. 친구나 직장 동료 등 다른 남성들은 존중할 줄 아는 멀쩡한 시민이 아내인 본인에게만 함부로 대하는 것에 절망하는 것이다. 조심해라. 조카들이 보고 있다. 한국의 아버지들이 괜히 늙어서 처자식에게 버림받는 것이 아니다.

 

이후 오빠는 전보다는 말조심을 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여전히 주말에는 혼자 각종 공놀이를 하러 다녔다. 어쩌다 집에 있어도 늘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있었다. 마치 소파 살 때 사은품으로 받아온 남자 같았다. 어느 날, 큰조카가 첫 어버이날 카드를 써서 내밀었다. “엄마,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 키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충격받은 허수애비는 변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다. 작년 가을에 오빠네는 이사했다. 올케언니는 헌 소파는 버리고 오빠는 데려갔다.

박신영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 작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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