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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어느 산재 사망자 이야기

박상훈 한국노총 정치자문위원장(정치발전소 학교장)

등록일 2021년03월04일 09시41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1.

누구든 늙고 병들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실존’의 고민을 숙명처럼 안고 사는 게 인간이다. ‘착하게 살자’라거나 ‘이웃을 사랑하라’ 같은 보편 윤리를 따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따라서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자신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독립된 개인’이 되어야 하며, 스스로에 대한 실존적 성찰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오랜 권고는 지금도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거기서 멈출 수 없는 존재다. 실존주의자들의 이상은 자유롭게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인간이 되는 데 있다. 하지만 그래서 타인의 절박한 요청에 응답할 도덕적 책무로부터 자유로워도 좋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럴 수 있다면 인간은 더이상 ‘사회적 동물’이 아닐 것이다.

 

개인이나 개성은 오로지 사회 속에서만 포착되는 인간 특성의 하나다. 실존적 개인은 사회 속에서만 실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실존에 대한 관념적 고민은 실존하는 자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후기 실존주의자들의 비판은 옳다. 타자에 대한 고려 없이 자신만의 자의식이 과도해지면 실존적 고민은 결국 더 불안하고 더 고독한 개인을 만들 뿐이다. 죽음의 문제와 마주하는 일 또한 공허하고 핏기없는 창백한 관념 속에서 허무하게 끝날 것이다.

 


△ 출처 = 광주글로벌모터스

 

2.

2021년 1월 23일은 토요일이었다. 그날 오후 2시 30분경, ‘광주형일자리’ 완성차 공장(GGM) 신축 공사현장에서 50대 중반의 남성 노동자가 추락했다. 지상 9미터 높이에서 용접작업을 하던 중에 일어난 일이다. 2시 33분에 119에 사고 신고가 접수되었고 병원 도착은 3시 40분이었다. 그리고 50분 후인 4시 30분에 사망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중대재해’가 발생했고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재해 유형인 “떨어짐”에 의한 것이었다.

 

사망한 노동자는 이른바 ‘하청의 하청’을 받은 업체 소속이었다. 원도급 업체는 서울에 소재지를 둔 ‘○○코리아’이고 하도급업체는 울산에 소재지를 둔 ‘△△테크’이며 이로부터 재하청을 받은 업체는 사망 노동자가 속한 ‘◇◇이엔씨’였다. 고용노동부 광주청 산재예방지도과가 2월 8일 강은미 의원실에 낸 답변자료에 따르면, 사건 발생 이틀 후인 1월 25일부터 3일간 근로감독을 했고 “관리감독자 안전보건 업무 소홀 등 11건에 대해 과태료 처분”과 “고소작업대 과상승 방지장치 미작동 등 법 위반사항 13건에 대해 사법 조치할 예정”이란다. 일견 철저한 조사와 강력한 대처가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태료 처분이 처음인지, 13건 이외에 법 위반 사항은 없었는지, 그간 어떤 개선조치가 취해졌는지 등에 대한 질문에는 답이 없다.

 

법적 처벌은 이루어질까? A4 반쪽짜리 답변자료는 “현재 수사 진행 중에 있어 세부 내역 제출이 어려움”으로 끝난다. 더 문의해도 답변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강은미 의원은 2월 16일 자 광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산재 사고 발생 뒤 진행된 근로감독과 올해 산재 사고로 인한 근로감독에서 지적사항이 같다.”며, “점검이 형식적이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는 의견을 말한 바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난해 산재 사고는 2020년 8월 후진하는 지게차에 60대 여성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을 가리킨다. 반년 만에 또 사고가 난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산재 사고에 대한 보상과 처벌 그리고 사후 개선조치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이에 대해서는 곧 답변하겠다는데, 언제 그 답변이 이루어질지도 알 수 없다.

 

사건 발생 후 열흘 정도 지난 시점인 2021년 2월 9일,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이라도 본사와 원청 등의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하겠다며 ’2021년 산업안전보건감독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도급 관계에서 본사나 원청의 책임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특히 2년 연속으로 중대 재해가 발생한 건설업체에 대해서는 본사와 전국 현장 감독을 병행해 실시할 방침이란다. 하지만 이번 광주형일자리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해 고용노동부의 이 방침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또한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번 사고는 전형적인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이다. 하도급업체의 사고라 할지라도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조항도 있다. 그렇다면 1년 뒤 시행될 이 법을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2021년 1월 26일 자 방영된 광주MBC뉴스에 따르면, GGM의 박광태 대표에게 책임을 묻고자 해도, 실제로는 “실질적 지배, 운영, 관리 책임이 없다는 이유로 책임을 묻지 못할 수” 있단다. 한마디로 말해 기존의 근로감독도, 고용노동부의 새 방침도 나아가 내년에 실시될 중대재해처벌법으로도 변화는 없을지 모른다는 뜻이다.

 

이상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그동안 필자가 찾고 구할 수 있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곳저곳 묻고 문의해봤지만, 더 진전된 답변은 아직 들을 수가 없다. 앞으로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듯싶다. 곧 보상금 합의가 될 것이고 그러면 위법 사안에 대한 조사와 조치는 사건을 마무리하는 쪽으로 진행될 것이다. 혹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는 사람들이 지금 사건 조사와 처리의 책임을 맡고 있는지 모른다. 아무 일도 없는 듯 침묵으로 일관하는 박광태 대표는 물론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업적으로 홍보해 온 청와대도 다를 바 없다.

 

자료를 찾고 문의를 하는 과정에서 이번 사건의 ‘실존자’인 그 노동자와 가족이 처한 상황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알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이야기해준 사람은 박미정 광주광역시 시의원이었다. 박의원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빈소를 찾았다는데, 가보니 조문객도 없는 썰렁한 빈소를 두 딸과 아내가 지키고 있더란다. 남겨진 이 노동자 가족은 누구에게 무엇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이에 응답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산재 사망 사건에 대한 정보는 알기 어렵고, 산재 사망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는 더더욱 듣기 어려운 것 같다.

 

3.

2020년 1월 20일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로 2021년 2월 18일 현재 1,544명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고용노동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산재 사고·질병 사망자가 2017년 1,957명, 2018년 2,142명, 2019년 2,020명이었다. 고용노동부 장관 말에 따르면 2020년에는 2019년에 비해 사고 사망자만 27명 늘었다고 하니 최소 2,047명 이상이 지난해 산재로 사망했다. 여기에 과로사나 직업병으로 죽은 사람을 합하면 훨씬 많을 것이고, 계약직 일자리부터 희생시킨 코로나19 사태 동안 20대 자살이 크게 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의 노동자 상황은 훨씬 심각해 보인다. 그런데도 다른 죽음보다 노동자의 죽음은 그에 합당한 관심이 기울여지지 않는 듯하다. 최악의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는 나라에서 볼 수 있는 현상치고는 좀 이상하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1995년 전국조선업종노동조합협의회 소속 노동자 60여 명은 서울로 상경해 시위를 벌였다. “주의해서 일하자!”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와 기업의 “무재해운동”에 항변하는 한편, 산재와 직업병을 줄이기 위한 노사특별기구를 마련할 것을 촉구하는 시위였다. 일주일에 한 명꼴로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는 조선업 노동자와 하루 9명 사망, 하루 240명 부상, 하루 4명 직업병, 하루 1명 과로사하는 전체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대변하고자 했던 그때 그들이 외친 것은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당시 조선노협 선전부장이었던 손낙구 보좌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지금 우리 현실이 그때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아직 우리는 산재 사망을 노동자의 부주의 때문이라 질책하는 사람이 건설 분야를 총괄하는 국토부 장관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건 발생과 비슷한 시기인 1월 20일 자 언론들은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게 2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된 것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응답자 가운데 판결이 ‘과하다’는 의견은 ‘적당하다’는 의견 21.7%의 두 배가 넘는 46.0%였다. 경제를 생각하면 기업가의 불법쯤은 봐줘야 하고 그게 국익을 위한 것이라 보는 시대 같다. 최대 생산자 집단인 노동자들이 처한 산재 상황은 경제 문제와 무관하다는 걸까? 그래서 정부는 경제 상황이 안 좋아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혁신경제, 선도경제, 평화경제, 포용경제를 앞세워 여전히 기업가 집단을 환대하는 걸까?

 

때만 되면 국민통합을 외치는데, 정작 통합될 그 국민이 대체 누구를 말하고, 그들의 직업 현장은 어떤 상황이고, 그들의 절박한 요청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적어도 산재 문제를 놓고 말한다면, 한국 민주주의에서 노동자들의 시민권은 “군부 권위주의 시대 산업역군”의 단계에서 멈칫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도 경제발전을 그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심리가, “그래 보상은 하겠다, 돈은 낸다, 하지만 공장을 멈출 수는 없다, 안전장치 강화? 차차 그렇게 해나가겠다, 하지만 지금 그럴 시간은 없다, 공사 기간 연장은 안 된다. 공장이 굴러가야 일자리도, 기업도, 경제도 산다, 청와대가 기다리고 있는 노사 상생의 광주형일자리 공장 완공부터 하고 보자.”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누리는 경제성장의 혜택이 한 해 2천 명의 노동자 산재 사망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우리들의 삶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죽지 않고 일할 권리’에 대한 보장만큼은 책임지려 노력해야 민주정치 아닐까? 그게 아니면 왜 민주화를 했겠는가? 적법하게 주권을 위임받은 정부, 정당, 정치인들의 분투 노력을 진심으로 바라고 또 촉구한다.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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