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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의식은 제사장 계급의 권력 유지와 강화에 기여한다

박신영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 <제가 왜 참아야 하죠?> 저자

등록일 2021년01월20일 12시5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5년 전 일이다. 2달 전에 아버님을 여읜 올케언니는 설이 다가오자 혼자 첫 제사를 준비하실 친정어머님 생각에 가슴아파했다. 나는 제안했다. “미리 가서 도와드리고 제사 지내고 오셔. 어차피 우리집엔 제사 없잖아.” 언니는 반가워하면서도 걱정했다. “그래도 될까? 어머님 명절 아침 상 차려드려야 하는데.” 답했다. “내가 하면 되지. 엄마에게 내가 허락받을게. 앞으로 명절마다 친정 먼저 갔다가 오셔.”

 

나의 친가는 기독교 집안이고 외가는 불교 집안이다. 제사는 외가만 지낸다. 오빠가 결혼하기 전까지 우리 가족은 명절이면 큰외삼촌댁에 갔다.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친가든 외가든 제사 있는 집으로 가서 명절 풍습과 전통을 보고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그랬기에 나는 엄마가 흔쾌히 올케언니와 조카들을 보낼 줄 알았다. 뜻밖에 엄마는 마지못해 허락했다. 오빠는 남았다.

 


△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설날 아침이 되었다. 미리 준비한 음식을 들고 엄마집으로 갔다. 떡국과 잡채와 전을 데우고 갈비를 익혔다. 엄마는 옆에 서서 내 일손이 느려서 오빠 배고프겠다고 다그치고 명절에 친정부터 갔다고 언니 흉을 봤다. 아들을 내세워 딸과 며느리를 다스리려는 모습이 낯설었다. 식탁에 앉았다. 엄마와 오빠는 음식이 맛없다고 투덜댔다. 수고했다는 말은 없었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 놓고 집을 나왔다.

 

화가 났다. 속 좁은 시어머니/남편으로 보일까봐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엄마와 오빠는 며느리/아내가 명절날에 자신들에게 상 차려 바치지 않고 친정 제사상 차리러 가서 기분이 나쁜 것이다. 내가 한 음식이 맛없는 것은 솔직히 인정. 그러면 이들은 맛없는 음식 자체가 싫은가? 아니다. 내가 싫은 거다. 자신들이 대접받을 기회를 내가 없애버린 것이 언짢은 것이다. 과격하게 말해서, 일 못하는 외거 노비가 주인집 솔거 노비를 해방시켰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그날 이후 나는 명절에 엄마집에 가지 않았다. 오빠에게 음식해서 엄마 상 차려 드리고 두 분이 오붓하게 보내라고 말했다.

 

엄마는 딸인 내가 오지 않는 것보다 며느리인 언니가 친정 가고 없는 것이 더 불만이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남의 조상 제사 지내러 간다고 조카들을 야단쳤다. 출가외인인데 남의 집에 간다고 언니에게 화를 냈다. 며느리가 시어미를 무시한다고 오빠에게 하소연했다. 제보 전화가 내게 빗발쳤다. 금일봉을 휘두르며 출동해서 엄마를 달랬지만 통하지 않았다. “원래 명절은 남자 쪽 집에서 보내는 거다. 지금 네 올케가 시어미 무시하고 있어. 네 아버지 추도 예배도 참석 안하고.” 엄마의 말에 깜짝 놀랐다. 전에 엄마가 하던 말과 반대였다. 며느리와 손주들을 거느린 엄마는 외할아버지처럼 권력을 행사하고 싶어했다. 대비마마로서 가부장 권력을, 추도 예배 핑계로 제사장 권력을. 제천의식은 제사장과 지배 계급의 권력 유지와 강화에 기여한다는 것을 역사책을 읽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몸으로 깨우치게 될 줄이야.

 

엄마가 제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종가집에서 성장해서 그렇다면, 제사가 그렇게나 중요하다면, 부계든 모계든 명절에 제사 지내는 집으로 가는 것이 옳다. 엄마가 만든 우리 집 전통은 명절을 외가에서 보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명절에 조카들이 외가에 가서 외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는 것은 완벽한 전통의 계승이다. 나는 오빠에게 처신 잘 하라고 충고했다. 조카들의 외할아버지는 남이 아니라 오빠에게도 아버지라고 말했다. 오빠는 동의하고 엄마의 심술을 막아냈다.

 

“엄마 제사는 어떡하지?” 3년 후, 엄마 장례식장을 나서면서 오빠가 물었다. 답했다. “엄마는 교회 다니셨잖아. 제사 지내달라는 말씀도 없었고. 하지만 오빠가 굳이 제사 지내겠다면 안 말릴게. 단, 언니 일 시키지는 마. 나도 안 해. 나는 명절과 제사는 여성을 차별하고 남성을 높이기 위해 있다는 것을 엄마 덕분에 깨달았거든. ”

 

지금 오빠네 가족은 명절을 조카들 외가에서 보낸다. 언니 말에 의하면, 오빠가 장인어른 제사상에 올릴 전을 그렇게나 조신하게 잘 부친다고 한다.

박신영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 작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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