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처음 경험했던 차별(?)은 유모차를 야외에 최초로 끌고 나온 날 겪었다. 처음으로 유모차라는 것을 아이에게 경험시켜 주는 날이라 가볍게 동네 한 바퀴나 돌고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몇 십 미터를 채 못 가 유모차 운전이 쉬운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유모차가 편안하게 다니려면 보도블록이 끝나는 시점에는 턱이 없는 부분이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유모차가 크게 덜컹거리지 않고 지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런 길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턱이 없는 부분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상태가 엉망이라 지나다닐 때마다 유모차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그 때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휠체어를 타시는 분들은 그냥 길을 다니는 것조차 너무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아이를 키우다보면 집에서만 있을 수는 없다. 아이도 지루해하고 양육자인 부모도 지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마다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집에서 매우 가까운 곳이 아니라면 대형마트나 쇼핑몰 밖에는 갈 곳이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가면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오붓하고 호젓한 곳에 가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수유실이나 유아휴게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곳으로 가서 아이와 2시간 이상 보내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혹시 그런 공간이 없는 곳에서 뜻하지 않은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문제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가 조금 자라긴 했지만 위의 이야기들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우리 가족은 사람들이 좀 모여 있다 싶은 곳에 잘 가지도 않지만, 대중교통이라도 이용할라치면 1차적으로 주눅이 들어있다. 그뿐이겠는가? 몇 번 항의를 받았던 층간소음 때문에 집 안에서 냅다 달려대는 아이를 붙잡고 소리치고 하소연하는 건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미성숙한 존재인 아이가 주변에 미치는 이런 악영향(?)들에 우리 사회는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누구나 아이일 때가 있었고 그 때마다 부모를 포함한 주변에 어마어마한(?) 폐를 끼치며 성장했을 것이다. 상당수의 어마어마한 폐들은 배려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해결되었을 것 같은데, 지금도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은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세상이려나. 명확한 결론을 내지는 못하겠지만 후자에 마음이 기우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 하겠다.
사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은 중요도를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필수적인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누군가를 배제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 맞느냐이다. 각종 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언급되는 ‘아이 데리고 다녀 민폐 발생’이라는 사례가 우리 가족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긴장감을 솔직히 말해 항상 가지고 있다. 아무리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도 누군가에는 피해가 되고 그로 인해 우리 가족이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이 서글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것이 아이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차별받는 우리 사회의 많은 소수자들. 누구나 겪는 아이 시절을 보내는 것마저 이렇게나 눈치가 보이는데 작은 배려 아니 그저 배제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소수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 정말 바뀔 수 있을까?
* 이 글을 마지막으로 김용원의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는 마무리 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