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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들은 주인으로, 딸은 종으로 키웠을까

박신영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 작가

등록일 2020년11월18일 13시52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신영아, 이 빵 먹어.”

 

아빠 장례식장에서였다. 오빠는 자꾸 나를 구석으로 데려가서 빵을 먹였다. 벌써 세 번째다. 오빠의 헐렁한 상복 도포 품 안에서는 계속 빵이 나왔다. 이 빵들은 다 어디서 생겼을까. 오빠가 낳는 것인가. 둘 다 10대 나이인데, 나름 오빠랍시고 어린 동생을 챙겨야겠다 싶어서 이러는구나. 그 마음이 애틋해 목이 메었다. 입맛은 없었으나 오물오물 빵을 씹어 삼켰다. 내가 먹는 것을 지켜보던 오빠가 갑자기 흐느끼며 말했다. “나는 형이 있었으면 좋겠어.” 올려다봤다. 눈이 빨갰다. 순간, 나는 결심했다. 평생 오빠의 든든한 동생이 되기로.

 

아빠는 오빠의 대학 입학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돌아가셨다. 오빠는 장렬히 시험을 말아먹고 재수도 포기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었다. 1, 2년 후, 자리에 누워 울기만 하던 엄마가 외출을 시작하셨다. 학교가 끝난 후 돌아와 보면 집에 아무도 없을 때가 많았다. 아빠 돌아가신 집에 혼자 있는 것은 무서웠으나 이해했다. 집에만 계시면 우울하실 테니까.

 

엄마가 여행을 가서 집을 비우면 오빠의 친구들이 집에 몰려 왔다. 군대 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어서 시간은 많은데 돈은 없고, 결정적으로 늘 배가 고픈 청춘들. 그들이 며칠 합숙을 하면 집에 있던 모든 음식들이 사라졌고, 찬장에 있던 모든 식기들이 동원되었다. 라면은 끓여도 설거지는 절대 하지 않던 1970년생 개띠 남자들. 나는 빈 냉장고와 잔뜩 쌓인 설거지 거리를 목격하고 주기적으로 경악했다. 엄마를 위해 설거지를 해 놓기는 했다. 여행 다녀와 좋아진 기분 망치지 마시라고.

 

그러던 어느 날, 빈집에 들어온 나는 놀라운 물체를 목격하게 된다. 설거지의 산 정상에 얹힌 냄비. 그 냄비에 담긴 라면 국물에 반신욕하고 있던 나무젓가락들. 그 개띠 일당들은 깨끗한 수저가 없어지자, 나무젓가락을 사 와서 쓴 것이었다. 한 번 쓴 쇠젓가락을 설거지해서 쓴 것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 앞 가게에 뛰어가 나무젓가락을 사오는 것이 설거지하는 것보다 더 힘들고 돈도 드는데 왜들 이럴까? 그동안 쌓인 분노가 폭발했다. 자신들은 남자라고 설거지를 할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것일까?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밤 11시에 지쳐서 집에 오는 고3 동생에게 일거리를 남겨 두는 것이 오빠는 미안하지도 않나? 오빠를 붙들고 설거지하라고 시켰다. 그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여자인 니가 하라고 뇌맑게 답했다. 오냐, 한번 혼나봐라. 나는 내가 쓴 수저와 그릇만 설거지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엄마는 매섭게 야단쳤다. 누구를? 나를! 사연을 이야기했으나 엄마는 당연히 여동생인 내가 설거지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같은 자식인데 왜 아들은 주인으로 키우고 딸은 아들의 종으로 키우는 걸까? 아들을 이렇게 키우니 오빠가 저 지경이 되었잖은가.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젓가락들 앞에서 나는 또 결심했다. 엄마 대신 내가 오빠를 잘 키우기로. 저렇게 크다가는 늙어서 처자식에게 버림받기 딱 좋지 않겠는가. 나는 오빠를 사랑하는 동생이니 절대 그렇게 놔둘 수 없지. 바탕은 선량하고 마음이 여린 남자니까 키울만 할 것이다.

 


어떤 가족 사진. 출처 인터넷

 

삼십 년이 흘렀다. 나는 결심한 것을 지켰다. 그동안 집안에 큰 돈 드는 일이 생기면 반을 부담했고 엄마 간병을 도왔다. 오빠는 물론 올케언니에게도 든든한 동생 노릇을 했다고 자부한다. 거기에 더해, 오빠 결혼 후 지금까지 하는 일이 있다. 나는 오빠네 부부가 말다툼을 할 때면, 실탄 대신 말을 장전하고 기회를 엿본다. 결정적 순간이 오면 사랑하는 오빠를 위해 지원 사격을 한다. 

 

물론, 오빠를 쏜다.

 
박신영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 작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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