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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잠]선배 노동자의 희망은 여전히 싸워 얻어야 할 희망

민정연(꽃다지 기획자)

등록일 2020년08월20일 11시13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어린 시절 우리 집 뒤쪽 언덕에는 의류공장이 있었습니다. 퇴근 시간이 되면 공장에서 일하는 언니들이 우리 집 구멍가게에 들러 주전부리를 사 먹으며 수다를 떨곤 했습니다. 나의 하루를 흥미진진하게 하던 언니들의 수다는 거의 잊었지만 ‘하루 결근하면 3일 치 일당을 제한다. 그래서 아파도 결근을 할 수 없다’라고 푸념을 늘어놓던 언니들의 모습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이던 저와 몇 살 차이나지 않는 언니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때 그 언니들의 삶을 담은 노래가 있으니 ‘깜박 잠’이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60~70년대 ‘시다’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쩌면 내 추억 속의 언니들도 ‘깜박 잠’ 노래 속의 시다와 비슷했을 겁니다.

 


 

1960년대 산업화 더불어 성인뿐만 아니라 10대의 청소년들도 도시로 이주하여 공장에 취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삼시 세끼 챙겨 먹기도 힘들던 시절 도시로 나가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매우 달콤한 희망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희망은 시궁창 같은 현실에 버려지기 일쑤였지요.

 

‘깜박잠’의 주인공은 ‘시다’입니다. 그녀는 아마도 의류공장에 취직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의류공장은 재단사-미싱사-시다의 도제식 시스템으로 시다에게는 딱히 정해진 월급이 없었습니다. 사장이 재단사와 옷 한 벌의 공임단가를 협의하면 재단사가 미싱사에게 돈을 주고 시다의 월급은 미싱사의 월급에서 지급하는 ‘객공’이라는 방식이어서 시다는 미싱사의 눈치를 봐야만 했습니다. 강압적일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서 하루 14~16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도 일당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하루 일당이 커피 한 잔 값인 50원이었다고 하니 궁핍한 생활이었을 텐데 그마저도 일부는 고향 집에 보내야 했습니다. ‘잠 깨지 말았으면 이젠 돈 벌 수 있는데’라는 가사가 그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게다가 의류공장의 먼지 구덩이에서 일하다 보니 폐병에 걸리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합니다. 제대로 치료도 못 하고 허망하게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많았지요.

 

이렇게 가혹한 노동조건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고 아등바등하던 전태일은 결국 죽음으로 항거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의 죽음으로 평화시장에서는 청계피복노조가 만들어져 노동자로서 각성하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초기 활동 중에 ‘이름 부르기 운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싱마다 번호를 매겨놓고 ‘1번 미싱사’, ‘1번 시다’로 부르던 것을 각자의 이름으로 부르자는 것은 ‘우리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라는 선언이었을 겁니다.

 


 

노래 ‘깜박 잠’의 소녀의 소박한 희망을 통해 열악한 노동 현실과 60~70년대 어린 청소년들이 도시로 나가 공순이, 공돌이가 되어야 했던 사회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거창한 선언이나 다짐이 없지만, 소녀의 희망만큼이나 소박하고 간결한 멜로디의 여운은 길게 남아 사람답게 일하고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이 노래는 화려한 반주도 필요 없습니다. 간결한 연주가 오히려 노래를 돋보이게 하는 노래입니다. 공식적으로 작자 미상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린이예술단 ‘아름나라’를 창단하여 활동하고 계신 고승하 선생이 작곡했다는 분도 있습니다. 이후 확인을 거쳐 정확한 정보를 전하겠습니다.

 

1번 시다가 아니라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썼던 선배 노동자의 희망은 여전히 싸워 얻어야 할 희망입니다. 내 옆의 동료를 한 번 더 돌아봤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깜박 잠’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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