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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본소득, 노동자를 위한 제도가 아니다

양재진(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등록일 2020년08월11일 16시33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기본소득이 여야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유력한 대선주자가 기본소득으로 지지율을 올리니, 다른 정치인들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끌려들어가는 형국이다. 기본소득의 정당화 논리는 여러 가지다. 토지, 데이터 같은 공유자산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주장부터, 소비를 늘려주는 경제정책이라는 논리까지 다양하다. 이 중에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사각지대 해소와 소득보장 강화 논리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특고, 프리랜서는 물론 배달원, 크라우드 워커 같은 다양한 형태의 플랫폼 노동의 비중이 늘고 있다. 이들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빠질 확률이 크다. 다른 근로자와 달리 사회보험료를 따박따박 원천징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안정된 고용을 전제로 하는 사회보험이 제 역할을 못하니, 기본소득을 지급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소득보장을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산은 무한정이 아니다

 

기본소득이 사각지대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그럴듯한 주장이나, 실효성이 없다. 사각지대에 빠진 노동자를 위해 기본소득을 주자면서, 사각지대 밖의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똑같이 나눠 주기 때문이다. 예산은 무한정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부터 재벌총수, 공무원·교사, 대기업 직원, 전업주부, 학생에 백수건달까지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기본소득을 주자니, 진짜 도움이 필요한 노동자에게 돌아갈 몫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번 코로나19 경제위기에서 사각지대에 놓여 소득이 상실되어도 도움받지 못하는 노동자 수는 얼마나 될까? 2020년 5월 현재 실업자 수가 127만 명이고, 56만 명이 고용보험의 구직급여를 받고 있으니, 71만 명으로 추산해 볼 수 있다. 71만 명을 위해 약 5,200만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주자는 것인데, 과연 얼마씩 지급할 수 있을까? 월 1만 원 짜리 기본소득이면 연 6.2조 원이 소요된다. 2만 원씩이면 12.5조 원이, 10만 원씩이면 62.4조 원이 든다. 2017년에 국민연금, 기초연금, 아동수당, 생계급여, 근로장려금, 실업급여 등 모든 현금성 복지지출의 합이 약 73조 원이었다. 올해 국방비가 총 50조 원이다. 월 10만 원 정도하는 기본소득은 실현 불가능하다 이재명 지사 주장대로, 연 15조 원 정도 들여서 약 2만 여원짜리 기본소득을 주는 정도가 그나마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무슨 소득보장이 되겠나?

 

2019년에 실업급여로 약 90만 명에게 총 9.3조 원을 지출했다. 사각지대에 빠져 도움을 받지 못하는 71만 명을 위해 7조 원 정도 예산을 마련했다고 가정하자. 이를 기본소득방식으로 지급하면 월 1만5천 원이 된다. 그런데 만약 현행 고용보험 방식대로 하면 최소 160만 원에서 최대 198만 원을 지급해 줄 수 있다. 기본소득방식은 너무나도 가성비가 떨어진다.

 

n이 많으니, 1인이 받는 급여가 푼돈이 될 수밖에

 

고용보험을 사각지대에 적용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독일처럼 고용보험료 납부 여부와 상관없이 일반조세로 운영하는 실업부조제도를 통해서 급여를 주면 된다. 내년에 시행하는 국민취업지원제도가 바로 독일형 실업부조제도다. 50만 원씩 6개월을 지급할 예정이다. 외양은 독일형 실업부조이나 수급요건이나 급여액과 지급기간이 사실 많이 뒤진다. 실업부조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좀 더 완화하고, 급여액과 지급기간을 좀 더 늘이는 방향으로 개선하면, 사각지대에 빠진 노동자에게 훨씬 실효성 있는 소득보장을 해 줄 수 있다.

 

자영업자나 특고,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들은 실업 보다는 저소득인 것이 문제일 수 있다. 물론 모든 자영업자나 플랫폼 노동자들이 저소득은 아니다. 변호사, 의사도 자영업자이고 맛집 사장님도 자영업자다. 지식기반 플랫폼 노동자들 중에는 고학력의 고임 노동자도 많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들은 소득이 불안정한 특징을 지닌다. 기본소득론자들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으로 기초소득을 깔자는 것이다. 또 말은 그럴듯하지만, 실효성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현실적으로 1~2만 원씩 깔아 주는 것일텐데, 무슨 큰 도움이 되겠나?

 

현재 자영업자, 아르바이트 근로자, 특고, 플랫폼 노동자 등을 가리지 않고 저소득 근로자는 근로장려금(EITC)을 받을 수 있다. 외벌이가구 중 연소득 3,000만 원 이하, 맞벌이 가구는 4,000만 원 이하면 연 300만 원까지 받는다. 자녀가 둘이면 140만 원이 추가된다. 2,000만 원 이하 1인 단독가구도 최대 150만 원을 받는다. 정부는 2019년 근로장려금으로 약 4조 원을 지출했다. 왜 EITC는 4조 원으로 1인가구면 150만 원, 4인가구면 최대 440만 원까지 줄 수 있는데, 기본소득은 6조 원을 넘게 들여도 1만 원짜리 기본소득, 즉 1년에 12만 원을 주는 데 그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EITC는 적게라도 노동해야 받을 수 있지만, 기본소득은 노동하지 않는 사람도 다 주기 때문이다. 기존의 복지급여는 노동자 소득보장을 위해 경제활동인구를 대상으로 만들어져 있다. 반면에 기본소득은 노동과 급여의 관계성을 단절시키고, 전업주부, 학생, 백수 등 비경제활동인구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으로 급여를 지급한다. 그리고 복지급여는 노동자 중 실업, 은퇴 등으로 소득이 격감한 자나, 열심히 일해도 소득이 얼마 안 되는 근로빈곤층을 대상으로 한다. 자립할 정도로 소득을 올리는 대다수 근로계층은 당장 복지급여의 대상이 아니다. 어려움에 처할 때만 급여를 받는다. 모든 소득자가 사회보험료나 세금을 내지만, 당장에 복지급여를 받는 사람은 그래서 언제나 소수이다. 그러하기에 필요한 사람에게 보다 후한 급여를 지급할 수 있다. 모두가 자동차보험료 조금씩 내고, 사고난 사람이 보상을 많이 받는 이유와 같다.

 

반면에 기본소득은 실업당했다고 극빈층이라고 더 주지 않는다. 소득활동을 하고 있고 또 많이 버는 사람에게도 기본소득을 준다. 여기에 수많은 비경제활동인구에 대해서도 급여가 나간다, n이 많으니, 1인이 받는 급여가 푼돈이 될 수밖에 없다. 사각지대 노동자를 위해서 기본소득을 준다지만, 소득보장 수준이 높을 수가 없다.

 

사회보장 강화가 더 나은 대안이다

 

사각지대의 노동자를 위한 소득보장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가성비 낮은 기본소득으로는 소득보장이 어렵다. 사각지대 문제는 건강보험방식으로 풀 수 있다. 건강보험료 납부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반재정에서 보험료와 본인부담금을 부담해주는 의료급여를 실시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문제는 월 25~30만 원씩 기초연금을 주어 해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는 실업부조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와 더불어 다른 복지국가에 비해 낮은 급여상한을 높여, 노동에 대한 대가를 크게 해야 한다. 현행 실업급여(구직수당) 소득대체율이 60%라지만, 최고로 받을 수 있는 액수는 198만 원에 묶여 있다. 최저임금 수준이다. 300만 원까지 상한을 올려야 한다. 그래야 중산층 노동자가 실직해도 몰락하지 않는다. 육아휴직급여의 낮은 소득대체율(40%)와 급여상한(120만 원)도 60%와 300만 원까지 올려야 한다. 여기에 10조도 안들 것이다. 1만5천 원짜리 기본소득 하는 돈이면 가능하다.

 

가성비가 낮은 기본소득으로 막대한 재정이 낭비되면, 실효성 있는 사각지대 해소도 소득보장 강화도 어려워진다. 기본소득론자들은 둘 다 잘 하자지만, 우리네 가정살림도 그렇듯이 한쪽에서 큰 돈이 들어가면, 다른 쪽이 압박을 받기 마련이다. 피땀 흘려 일하는 사람을 위해, 이제 노동계가 무분별한 기본소득 주장에 선을 긋고, 사회보장 강화에 앞장서 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기본소득 #반대 #양재진

양재진(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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