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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준연동형비례대표제는 한국정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정혜윤(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등록일 2020년03월05일 10시26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① 과도한 제도주의를 경계한다 
②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이다(3월 2주)  

 

 다가오는 4.15 총선은 준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새로운 제도로 실시된다. 투표 방식은 1인2표(지역구투표·정당투표)로 이전과 같지만, 의석 배분방식에서 비례성이 보다 강화되었다. 이에 21대 국회에는 노동자·여성·소수자·생태주의자 등 사회의 다양한 이익을 반영하는 정당들이 의석을 확보해, 거대 양당 중심의 경쟁구도도 변화의 계기가 될 거란 기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 미래한국당, 비례민주당 창당 논의가 활발해지며, 사회의 다원적 이익이 정치에 반영되길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가 펼쳐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지난 20대 총선 때만 해도 영남은 보수정당, 호남은 민주당계 정당이라는 등식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는 오히려 특정 지역에서 양당의 독점은 심화되고, 제3-4당의 선전도 그리 크지 않을 거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왜 제도는 변화했는데, 기대하는 결과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을까? 

 


 

선거제도의 규정력은 한정적   

 소위 민주·진보 진영은 물론 노동계도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는 것이 한국 정치가 좋아지는 길이라는 주장을 보편타당한 명제처럼 받아들여 왔다. 물론 선거제도는 양당제·다당제와 같은 정당들의 숫자, 정당 간 경쟁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가령 영미권 국가들은 한 선거구에서 1명의 최다득표자를 선출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양대 정당을 중심으로 정치가 움직인다.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및 서유럽 국가들은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를 채택해 다양한 정당들이 경쟁하며 영미권보다 노동자들의 시민권이 보호되고 보편 복지가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반면,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를 채택했더라도 프랑스 제3~4공화국,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은 여러 정당의 분열과 난립, 불안정한 내각의 잦은 교체 등 극심한 정치혼란을 경험했다. 남미 국가들 역시 독일처럼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선택했지만 민주주의가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즉 선거제도는 조금 더 나은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많은 고려 사항 중 하나가 될 수는 있지만, 제도가 곧 노동이나 여성의 이익을 실현하는 교두보라거나 필수조건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제도란 힘 관계의 산물 

 나아가 제도 설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제도가 만들어지는 절차와 과정이다. 미래한국당 같이 제도 취지에서 벗어나는 정치행위가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국회의 주요 정치세력이 이 제도에 합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행위가 꼼수인지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정치행보인지는 이후 선거를 통해 입증될 것이다. 문제는 설령 <좋은> 제도, <진보적> 가치가 구현되는 법안이라 해도 다수결의 힘으로 통과시켜도 되는가이다. 특히 선거제도처럼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중대법안을 말이다. 
민주주의는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 따라 보이는 세계와 가지는 이익이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진보>가 상대에게는 다를 수 있다.  

 

 물론 여러 해 동안 비례대표제도를 주장했던 이들에게, 거대정당의 이점만 누리려는 정당과 합의했어야한다는 주장은 다소 답답한 주장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도란 원래 힘 관계의 산물이다. 정파나 정당을 초월해 허공에서 순수하게 탄생하는 <이상적 제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울러 강한 힘을 가진 세력이 합의하지 않은 제도는 이번처럼 취지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방지할 수 없다. 나아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사회 진보는 효율적 제도 설계가 아니라, 느린 합의 과정에서 도출
 민주주의란 단기적 관점에서는 진보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과 세력 간 이해관계를 조정해야하기에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한 만들어진 결과는 합의와 타협의 산물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백퍼센트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해가 다른 세력들이 최소 수준의 합의를 만드는 느린 과정이, 결국 장기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앞서 제시한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를 채택한 서유럽·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노동자들의 시민권이나 복지가 확대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국가에서 진보세력이나 노동정당이 압도적으로 강해서 다수결로 보수를 누르고, 노동과 복지를 강화시킨 것이 아니다. 또한 여러 정당들이 난립하며 대립하기만 했다면 정치적 혼란만 가중되었을 것이다. 좌우파 다양한 정당들이 연립정부를 구성하거나 국회에서 폭넓게 합의하며 천천히 변화를 만드는 합의형 민주주의 국가였기에, 노동권과 시민권이 확장되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즉 이상적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도를 만드는 과정이다. 

 

 선거제도는 사회 진보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가져오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인간행위의 자율성과 정치적 상상력을 빼앗는 과도한 제도주의를 경계한다. 그렇다면 제도보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4.15총선 결과는 어떤 점이 좌우하게 될까. 바로 강한 정당이고 조직력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조직>이 제도보다 왜 훨씬 중요한지 다음 편에 자세히 제시하고자 한다. 

 

 정혜윤(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비례한국당 #비례민주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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