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노랗게 물든 은행잎 가지마다 아직은 빼곡히 붙었는데, 이것도 잠깐이다. 어느 날 나무가 노랗고 붉은 것을 보고 이제 가을이네 했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찬바람에 한 이틀 된통 떨고 나서야 옷장 구석진 곳을 뒤져 두툼한 점퍼를 꺼내 입었다. 겨울은 문턱도 없이 가까웠다. 좋은 날은 짧다. 훌쩍 빠르게도 지나간다. 마냥 귀엽기만 하던 아이는 훌쩍 자라 사사건건 말대꾸다.
산에 좀 올라보려니 부쩍 낡은 무릎이 등산로 초입부터 시큰거린다. 캠핑 좀 가보려니 한파란다. 통장을 스친 월급은 빠르게도 증발한다. 모처럼 늘어져 쉬는 날은 짧았고, 월요일이 성큼 빨랐다. 해가 짧다. 찬바람 깊숙이 파고든다. 넘어가는 햇볕에 반짝거려 예쁘던 저기 나뭇잎들도 곧 떨어지고, 겨울이 깊을 테다. 사람들은 침낭 같은 옷을 입고 번데기처럼 견딜 테다. 저기 흰 벽에 새긴 나무 그림만이 사철 푸른 잎을 지닌다. 살아있는 것들은 변해간다.
그 앞을 빠르게 지나던 오토바이 한 대가 나무 아래에 잠시 멈춰 쉬어간다. 그러고 보니 사진이란 게 죄다 멈춰선 풍경 아니던가. 좋은 날을 붙들고 늘어지고 싶은 마음 탓인지, 요즈음 길에서 온갖 것을 살피고 찍느라 멈춰서는 일이 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