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나치의 노동자 조직, 독일노동전선

등록일 2019년10월02일 09시26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글로벌노조 컨설턴트

 

1932년 11월 독일의회 선거에서 나치당이 승리했다. 1933년 1월 아돌프 히틀러가 수상이 되고, 1934년 8월 총통이 되었다. 권력을 잡은 나치당은 1933년 5월 10일 기존의 노동조합들을 해산하고 나치당의 하부 기관인 독일노동전선(Deutsche Arbeitsfront)으로 대체했다. 나치당은 로베르트 레이(1890~1945)를 독일노동전선 주석에 임명했다. 


나치당의 현장 노동자 조직은 1927년 베를린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이를 토대로 1928년 나치공장세포조직(NSBO)이 출범했다. 공장세포조직의 구호는 “공장 속으로”였다. 먼저 국민혁명을 일으키고 이어 사회혁명을 일으켜 기성 엘리트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1933년 5월 2일 나치 정권은 기성 노동조합들을 불법조직으로 선포하면서 나치공장세포조직은 유일한 공식 노동자 조직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일주일 후 출범한 독일노동전선에 흡수되어 1935년 완전히 사라졌다. 

 


 ▲독일노동전선(DAF)의 깃발


노동조합이 해산되면서 단체교섭도 사라졌다. 임금은 노동전선에서 결정했다. 나치당에 대한 충성을 대가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되고, 고용안정이 강화되고, 해고는 점차 어려워졌다. 사회보장이 개선되고 레저 문화가 도입되었다. ‘인민공동체(Volksgemeinschaft)’의 이념에 따라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 체육, 건강, 유흥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독일노동전선은 건강검진, 직업훈련, 법률지원을 제공했고, 스파와 리조트를 건설했으며, 노동자들의 해외여행경비까지 지원했다. 사업장 단위에는 노동자평의회를 설립하였다. 노동자 지원 사업의 경비를 대기 위해 독일노동전선은 독일노동은행을 운영했다. 


독일노동전선은 나치당 최대의 조직이 되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2차 대전이 막을 올린 1939년 무렵 노동전선은 3만5천 명의 상근자를 보유했다. 독일노동전선의 주석 로베르트 레이는 “전쟁을 위한 최고의 노력을 기울이기 위하여 지난 7년 동안 우리 나치주의자들은 모든 자원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고 연설했다. 레이는 “참으로 사회적이고 생산적인 공동체를 창조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를 위해 노동전선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매개체가 되어야 했다. 


개선된 노동조건과 사회보장을 누리는 대가로 노동자들은 나치 정권과 자본가에게 대항해선 안 되었다. 나치 이념에서 자본주의도 문제지만, 자유주의와 혁명도 문제가 되었다. 독일노동전선의 회원 자격은 형식상 자발성에 기초했으나, 사실 강제 가입이었다. 노동전선 회원증이 없으면 일자리를 얻기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1945년 5월 2일 소련 적군이 베를린을 점령했다. 그 직전 4월 30일 히틀러가 베를린의 벙커에서 자살했다. 나치 정권은 무너졌고, 나치당의 최대 조직이었던 노동전선도 해산되었다. 그해 10월 24일 전범재판 기소장을 받은 로베르트 레이는 감옥 화장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월간 한국노총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인터뷰 이슈 산별 칼럼

토크쇼

포토뉴스

인터뷰

기부뉴스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듭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